행복을 찾아 떠난 청춘들의 핀란드 여행 ②

 
[글] 아티스트에디터 메리청춘 pon310@mhns.co.kr핀란드를 '공짜로' 여행했다. 학기 중에 떠나는 여행이 제일 재미있는 여행이며 남의 돈으로 떠나는 여행이 진짜배기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행복을 찾아 (남의 돈으로) 떠난 청춘들.

[문화뉴스] 10시간여의 비행 끝에 우리는 무사히 헬싱키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와 버스를 타러 밖으로 나와보니 북유럽 특유의 차가운 공기가 콧등을 스쳤다. 아직 북유럽에 온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던 터인데, 이 스침은 곧 우리가 핀란드에 왔음을 깨닫게 했다.

공항에서 우리의 숙소가 있는 헬싱키 중앙역 부근까지는 30분이 걸렸다. 가는 내내 버스 창밖을 통해서 스산하게 서 있는 자작나무들을 구경했다.

헬싱키 도심에 도착하니 깔끔하게 정돈된 도시라는 인상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재영이는 이를 두고 깔끔한 모스크바 느낌이 나는 도시라고 칭했다.

   
▲ 헬싱키 공항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 드디어 도착한 헬싱키 시내!

우리의 숙소는 중앙역에서 어느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였으므로 칼바람을 뚫고 한 손에는 커다란 캐리어를 질질 끈 채로 하염없이 걸었다. 우리 숙소가 있는 골목의 건물들은 쌍둥이처럼 비슷하게 생겼었는데, 이 건물이 그 건물 같고 그 건물이 이 건물 같았기 때문에 코앞에 우리 숙소를 둔 채로 30분 넘게 헤맸다. 그리고 겨우 찾은 그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공사 중이었으며, 결국 우리의 숙소인 5층까지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노트북으로 근처 식당을 검색했는데 우연히 핀란드 가정식 뷔페를 발견했다. 'Konstan molja'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앤틱한 분위기의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천장에는 연어잡이 그물이 장식되어있고 공간 곳곳에는 여행을 사랑하시는 주인아주머니의 수집품이 가득했다.

   
▲ 아주머니의 따뜻한 정이 느껴지던 핀란드 가정식 뷔페 레스토랑, Konstan molja

뷔페임에도 많지 않은 가짓수와 일일이 요리의 재료와 맛을 설명해주시는 아주머니 덕에 집밥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전에 서울을 찾은 경험이 있다는 주인아주머니는 우리가 내일 밤에 오로라를 보러 '사리셀카'로 떠난다는 말에 주방으로 불러들여 친히 본인의 정보통을 가동하사 "오로라를 볼 확률이 99% 이상이다"라는 말과 함께 우리의 앞날에 행운을 빌어주시기도 했다. 식당 벽에 장식된 수많은 국가의 화폐 중 유독 한국의 1,000원권이 친근하게 느껴진 이유는 아주머니의 친절 때문이었을지도. 핀란드에서 처음 느낀 '정'이었다.

맛있게 저녁식사를 먹고서는 시내로 향했다.

트램과 차로 가득한 북유럽의 밤거리를 거니는 기분이란 꽤 낭만적이었다. 헬싱키는 매우 작은 도시였기에 2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캄피 광장과 무민샵과 식품점을 비롯한 지역 상권까지 꼼꼼히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잠시나마 교류한 아이스크림 가게 청년의 수줍음, 잔돈이 없는 한국 청년들을 위해 무료로 비닐 봉투를 내어 준 마트 아주머니의 배려, 그리고 혹시나 스푼을 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새 스푼 묶음을 뜯어 무상으로 제공한 뒤 좋은 밤 보내라며 인사해준 편의점 청년의 친절을 경험했다. 식당의 아주머니로부터 시작된 친절함은 '情'이라는 것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 헬싱키의 밤거리를 거닐며

 

   
▲ 반짝반짝 빛나던 헬싱키의 야경

사실 도착한 지 아홉 시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 도시를 정의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특히나 해가 오후 5시면 자취를 감추는 헬싱키 같은 도시는 더더욱 말이다. 그럼에도, 오늘 느꼈던 따뜻한 마음들은 헬싱키가 왜 행복의 도시라는 별명을 지녔는지를 어렴풋이 알게 했다…(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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