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아띠에터 박정기]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악어컴퍼니의 마누엘 푸익(Manuel Puig) 작, 문삼화 번역 연출의 <거미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를 관람했다.

마누엘 푸익(Juan Manuel Puig Delledonne, 1932~1990)은 아르헨티나의 헤네랄 비예가스에서 태어나 중등 교육을 받기 위해 혼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갔다. 1950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 입학해 건축을 공부하다가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으나, 1956년 이탈리아 협회의 장학금을 받아 1956년 로마의 치네치타 실험영화센터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다수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으나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후 소설을 쓰기 시작해 1965년 뉴욕에서 처녀작 『리타 헤이워즈의 배신』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르몽드》지(1968~1969)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1969년 두 번째 소설 『조그만 입술(Boquitas Pintadas)』을, 1973년 세 번째 소설 『부에노스아이레스 어페어(The Buenos Aires Affair)』를 출판했으나,

후앙 페론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와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로 역시 아르헨티나에서 판금 조치되었다. 그러나 1997년 왕가위 감독에 의해 〈해피투게더〉로 영화화되면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그 후 마누엘 푸익 최고의 작품이란 찬사를 받고 있다.

1976년에는 그의 가장 대중적인 작품인 『거미 여인의 키스』를 출간했으며, 이 작품은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어 그에게 전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다. 동성애자이자 망명 작가이고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 광적으로 매료되었으며 스스로 영화 감독이 되고 싶어했던 그는

1990년 7월 22일, 아홉 번째 소설 『상대적인 습기』를 끝마치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 밖의 작품들로는 대표작 『천사의 음부』,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열대의 밤이 질 때』 등이 있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1976년 스페인에서 발표되었다. 전체 16장으로 구성된 장편소설로, 비야 데보토라는 형무소에 수감되어 한 감방을 쓰게 된 두 죄수의 대화로 진행되는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이며, 성의 정체성과 사회혁명이라는 정치적 화두를 소재로 삼아 사회비판의식을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담았다.

배경은 인권탄압이 자행되는 남미 독재국가의 교도소 감방이다.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된 동성애자 몰리나의 감방에 게릴라활동을 하다가 검거된 신참내기 정치범 발렌틴이 들어온다. 처음 이들의 동거는 몰리나가 자신의 빠른 가석방을 위해서 발렌틴으로부터 반정부조직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침투하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발렌틴은 동성애자인데다 잡범으로 들어온 몰리나의 소극성과 현실도피주의를 경멸한다. 몰리나 역시 발렌틴의 경직성과 맹목적인 투쟁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감옥생활의 따분함을 견디기 위해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영화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서로의 허위의식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관점에서 존경과 애정을 나누게 된다.

몰리나는 발렌틴에게 6편의 영화를 이야기해주고, 발렌틴은 그에 대한 평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 속의 주인공들의 모습은 소설의 두 주인공인 몰리나와 발렌틴과 동일관계를 이루며 소설의 진행을 암시해준다.

이처럼 독특하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몰리나는 발렌틴으로부터 인간이란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발렌틴은 환상적인 영화이야기 속에 은유되는 몰리나의 이타적인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들은 몰리나가 다섯 번째 영화를 들려주던 중 마침내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발렌틴으로부터 육체적 사랑을 넘어서 한 인격체로 존중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 몰리나에게 의식의 전환이 찾아온다. 마침내 가석방으로 풀려나게 된 몰리나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발렌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반정부조직과의 접선은 실패로 끝나고, 스스로 거미여인이기를 원했던 몰리나는 발렌틴의 동료로부터 총을 맞고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의 마지막은 기관원으로부터 전기고문을 당한 발렌틴이 형무소 의무실에 누워 모르핀을 맞고 몽롱한 의식 속에서 몰리나라는 거미여인을 꿈꾸면서 끝을 맺는다.

국가권력과 사회적 관습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억압당하는 게릴라와 동성애자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자연스럽게 당시의 억압적인 사회상을 고발한다. 특히 소설 속에 영화라는 대중문화 요소를 도입해, 대중문화와 정치적·사회적 주제를 역설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진지한 예술의 가식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몰리나와 발렌틴의 육체적 결합은 상반되는 두 세력, 즉 부르주아지의 성해방주의자와 극단적인 좌익주의자의 정신적 유대를 상징한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발렌틴은 사회적·정치적 평등을 추구하여 반정부활동에 가담한 게릴라이지만 사실은 그 자신이 사회적·도덕적 관습에 엄청난 편견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작가는 소설 속에 영화라는 대중문화요소를 끌어들여, 동성애자인 몰리나가 게릴라처럼 정치적 폭력에 희생당하게 되고, 게릴라인 발렌틴은 동성애자처럼 대중영화를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결말을 이끌어냈다.

1985년 아르헨티나 출생의 브라질 감독 헥토르 바벤코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어 더욱 널리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1992년 캐나다 토론토의 세인트로렌스극장에서 처음 공연해 크게 호평받았다. 이어 1993년 뉴욕의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토니상 7개부문을 석권하는 등 작가 사후에도 여전히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문삼화는 2003년 연극 <사마귀>로 공식 데뷔하여 10년 넘게 연출가로 살아온 베테랑이며 공상집단 뚱딴지의 대표를 맡고 있다. 연출작품은 <소나기 마차> <지상 최후의 농담>, <슬루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잘자요 엄마> <뽕짝> <바람직한 청소년> <뮤지컬 균> <세자매> <일곱집매> <언니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너 때문에 산다> <쿠킹 위드 엘비스> <백중사 이야기> <Getting Out> <라이방> <사마귀>를 연출했다.

2003평론가협회선정 올해의 베스트3, 2004밀양 여름공연예술축제 제3회 젊은 연출가전 최우수작품, 2005 서울연극제 연기상, 신인연기상, 2006 거창 국제공연 예술제 남자연기상, 2008 서울문화재단 젊은 예술가 지원사업(Nart)선정, 2008대한민국연극대상여자연기상, 2009대한민국연극대상희곡상,

2013 서울연극제 우수작품상, 여자연기상, 2013한국연극BEST7, 2013제1회 이 데일리 문화대상 연극부문최우수상, 2013대한민국연극대상여자연기상, 2014제16회 김상열 연극상, 2017년 '제3회 올해의 연출가상' 등을 수상한 미모의 연출가다. 그동안 19편의 외국 희곡을 번역하면서 그중 11편을 본인이 직접 연출하며 번역과 연출을 겸했다.

무대는 2인이 수감된 감방이다. 중앙에 감방 문이 있고, 철창 안에 침대 두 개가 무대 좌우에 각기 가로로 세로로 놓이고, 낮은 장형태의 입체로 된 사각의 조형물이 배치되고 장면변화에 따라 이동배치되기도 한다. 낮은 장 위에는 책이나 잡동사니를 올려놓았다.

철창에 선반이 달려 시계와 식기, 컵이 놓이고, 액자 없는 그림이 휘장위로 걸려있고, 휘장 뒤쪽으로 화장실과 세면대가 있다.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피아노 연주소리가 관객의 감성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의상은 죄수복을 입고 출연한다.

연극은 원작의 내용대로 전개된다. 교도관의 음성은 녹음으로 처리되고, 배경에 분무로 안개가 깔린다. 발렌틴 역과 몰리나 역의 남성 2인의 연기가 대조적이고 탁월한 기량으로 연기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모습까지 대조적인 미남인지라, 객석에 자리한 대부분의 여성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공감대까지 형성시켜, 2시간의 공연시간동안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극에 몰입을 시키고 말미에 우레와 같은 갈채를 이끌어 낸다.

이명행, 이이림, 김주헌, 김호영, 송용진, 박정복, 문태유, 김성호 등이 교대로 출연해 성격설정은 물론 호연과 열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프로듀서 손형민, 무대 소품디자인 황수연, 조명디자인 원유섭, 의상디자인 한정임, 음악 음향 류승현 박지혜, 무대감독 송희정, 분장디자인 김영아, 조연출 양지모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악어컴퍼니의 마누엘 푸익(Manuel Puig) 작, 문삼화 번역 연출의 <거미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공연메모
주 악어컴퍼니의 마누엘 푸익 작 문삼화 번역 연출의 거미여인의 키스
- 공연명 거미여인의 키스
- 공연단체 ㈜악어컴퍼니
- 작가 마누엘 푸익
- 번역 연출 문삼화
- 공연기간 2017년 12월 5일~2018년 2월 25일
- 공연장소 아트원씨어터 2관
- 관람일시 1월 4일 오후 8시

 

 

[글] 아티스트에디터 박정기(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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