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탑아트스틸러] 12. 향기를 듬뿍 머금은 한 송이의 꽃, 매혹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집시'
[대한민국 탑아트스틸러] 12. 향기를 듬뿍 머금은 한 송이의 꽃, 매혹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집시'
  • 문화뉴스 김소이
  • 승인 2016.02.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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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집시 인터뷰

[문화뉴스] '씬 스틸러(Scene Stealer)'.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장면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배우들을 말한다. 이들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연처럼 주목받는 조연배우들이다. 문화뉴스의 [대한민국 탑 아트스틸러]는 대중적인 주류는 아니더라도 각자의 분야에서 큰 인정을 받으며 My way'를 걷고 있는, 우리 문화예술계를 빛내고 있는 소중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구태여 벌을 부르지 않아도 꿀을 가득 머금어 절로 벌이 날아드는, 향기로운 꽃이 되고 싶어요."

날씨가 더운지 옷깃을 추슬러 올린 여인. 고운 머릿결과 매혹적인 눈빛, 강렬한 입술이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섹슈얼하고 매혹적이라는 표현이 절로 나오지만, 그 말만으로 끝내기엔 아쉬운 작품이다. 관능적이면서도 우아한 매력 때문에 한 번 보고 쉽게 지나칠 수 없다. 단순히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외로움, 열망 등 다양한 감정을 녹여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며 최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만큼이나 달콤하고 섹시한 일러스트레이터 집시를 만났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ㄴ 현명한 쾌락주의를 지향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본명은 양세은이고 '집시'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판, 광고, 제품디자인, 강의 등 그림과 관련된 일은 무엇이든 다 하고 있는 그림쟁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며, 감정과잉을 주체하지 못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집시'라는 예명은 어떻게 짓게 됐나.
ㄴ 예명 '집시'에는 내가 온전히 나인 채로 존재하고 싶다는 뜻이 담겨있다. 롤모델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의 집시 '에스메랄다'와 '포카혼타스'의 여주인공인 인디언 '포카혼타스'다. 이들은 모두 부유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정의롭게 살아간다. 그렇기에 섹시하고 매력적이다. 이들처럼 긍지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살고 싶어 지은 예명이다.

   
▲ 책 '백산의 연인' 표지로 사용된 일러스트.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ㄴ 4살 때 할머니와 살았다. 손녀가 심심할까봐 베르사유의 장미, 들장미 소녀 캔디 같은 소녀만화 비디오를 빌려오셨는데 그걸 보면서 내가 열심히 따라 그리더란다.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세일러문, 웨딩피치, 천사소녀 네티 등 이런저런 소녀만화 캐릭터를 그려주니 친구들이 좋아했다. 그때 처음으로 그림을 통해 인정받는 데서 오는 기쁨과 희열을 느꼈다. 동시에 잘 그리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다. 그림 그리는 재능을 살리고 싶어 대학 진로를 고민하다, 내게 큰 영향을 끼친 스승님의 조언으로 세종대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공부해보니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나랑 맞지 않더라. 적성을 고민하던 중 예전에 낙서해둔 그림을 보정해서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작품을 좋아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림을 통해 희열을 느꼈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렇게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됐다. 대학교 3학년 때 출판사에서 외주를 받으면서 그림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생계형 일러스트레이터'로 사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ㄴ 일러스트를 시작하고 나서 5년 정도는 계속 불규칙한 수입에 허덕이며 살았다.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고정수입을 벌기 위해 노력했다. 미술학원 강사도 했고 남성복 회사도 다녔다. 지금은 개인레슨과 외부 강의를 하고 있다. 외주에만 의존할 수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안정적인 수입이 어느 정도 있어야 작업도 수월하게 할 수 있더라.

   
▲ '#접촉 02 - 연민'

평소 작업방식은 어떤가.
ㄴ 먼저 머릿속에 생각해둔 이미지와 글을 가지고 러프하게 스케치를 한다. 그 다음 작업대로 옮겨서 깔끔하게 다시 스케치한다. 이걸 스캔한 뒤, 포토샵으로 디지털 작업을 해서 완성한다.

작품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는지.
ㄴ 연애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연애하면서 느끼는 생각들을 항상 기록해둔다.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풀어내야 진정성이 있고 더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 같다. 연애를 비롯한 나의 경험,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드는 편이다.

사람, 특히 여성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ㄴ 작품의 모티브를 여성에게서 많이 받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정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결핍되어 있어 이를 해소하길 원한다. 그중에서도 여성이 이러한 결핍과 욕망을 감추는 데서 오는 모순이 내게 와 닿았다. 한 여성이 결핍의 상태에서 뭔가를 갈망하는 모습, 그때의 욕망하는 눈빛이나 거기서 느껴지는 애처로움이 좋다. 그런 욕망은 섬세하게 관찰해야만 알아낼 수 있다. 마치 애완동물이 눈빛이나 제스쳐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주인이 알아채는 것처럼 말이다.

   
▲ '여인도'

어떤 여성을 그리는 걸 좋아하는가.
ㄴ 섹시하고 몸선이 고운 여성이다. 마른 여자를 그릴 때도 있고 통통한 여자를 그릴 때도 있지만 내 그림 속의 여성은 모두 섹슈얼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둥근 얼굴형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걸 미화시키게 되더라. 둥글둥글한 선에 살짝 색기가 묻어나는 여성을 많이 그린다.

작품 속 인물들이 매력을 넘어 특유의 매혹적인 분위기가 있다.
ㄴ 인물을 그릴 때 눈빛을 가장 유념에 둔다. 평범하게 잘 그린 눈이 예쁠 순 있지만 거기서 그 이상의 매력을 느낄 순 없다. 눈꼬리의 각도, 동공의 위치, 눈과 눈썹 사이의 간격 등 세부적인 요소들의 조합에 따라 전혀 다른 눈빛이 나온다. 매력적인 눈빛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조합을 만들어본다. 또한, 인물의 입술과 머리카락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작품 속의 배경이나 패턴에도 세세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ㄴ 패턴이나 무늬는 주로 구글링을 통해 찾은 자료를 참고해 나만의 것으로 재창조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주로 선택하는 촘촘하고 세밀한 패턴들을 그리려면 반복 작업을 해야 한다. 하나하나 그리다 보면 이걸 왜 하고 있나 싶다가도 완성하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나 자신을 이긴 것 같은 기분도 들고(웃음).

   
▲ 'Clash of Clans'. 해외의 유명 SNS계정에 소개되면서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집시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
ㄴ 섹슈얼한 요소다. 나는 대놓고 드러내는 것을 지양한다. 보일 듯 말듯, 닿을 듯 말듯 경계를 넘나들며 오묘한 느낌을 주는 것을 지향한다. 다 보여주진 않지만,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선에서 작품을 만든다. 내 작품을 보는 분들이 그런 면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작품을 하는 데 있어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ㄴ 나의 그림 스타일은 항상 바뀌어왔는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내 그림에서 동양적인 느낌이 난다고 하더라. 나는 동양화를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작품의 색감 때문인지, 아니면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꽃 때문인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문득 동양적인 느낌을 강조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수묵화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좋아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지금은 동양화를 보면서 기법, 재료 등 다양한 측면에서 많이 연구하는 중이다. 하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바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집시만의 방법은 무엇인가.
ㄴ 일상을 탈피한다. 제일 자주 가는 곳은 파주의 출판단지다. 외주작업 때문에 우연히 갔다가 반해버린 곳이다. 산은 낮고 하늘은 높으며 버드나무가 가득하다. 도서관의 통유리창 너머로도 이처럼 깔끔한 자연 풍경을 한눈에 만날 수 있다. 거기서 예술 서적을 계속 보면서 자료를 찾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슬럼프가 가라앉고 의욕이 생긴다. 아카시아나 라일락 향기가 가득할 때 한 번쯤 방문하길 추천한다.

SNS에 작품이나 근황을 올리는 등 팬들과 많은 소통을 하고 있다.
ㄴ SNS는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세 가지를 하고 있다. SNS를 하는 이유는 당연히 내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네이버 블로그는 검색유입이 많고, 페이스북은 좋아요를 통한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인스타그램은 요즘 인기가 많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이제 팔로워 수가 페이스북이랑 거의 비슷하다. 약간의 필터링을 거쳐서 작품이나 작업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주로 올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분과 소통하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다(웃음).

음주도 무척 좋아한다고 들었다.
ㄴ 원래 나는 육회와 소주, 혹은 꼼장어와 소주 파였다. 그런데 2년 전 유럽에서 각국의 맥주를 맛보면서 수제 맥주의 매력에 빠졌다. 소규모 양조장만의 독특한 풍미가 매력적이었는데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맥주들이 많이 들어왔더라. 개인적으로는 미켈러(Mikkeller)와 이블트윈(Eviltwin)을 가장 좋아한다.

   
▲ 책 '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 일러스트.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ㄴ 나는 김선우 시인의 굉장한 팬이다. 어느 날 그분 낭송회에서 사인을 받으면서 내 일러스트 엽서와 명함을 드렸는데, 딱 일 년 후에 책 작업을 같이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스타에게 응답받은 기분으로 책 '바리공주'의 삽화 작업을 함께했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강풀 작가님이 가수 이승환 콘서트 포스터 작업에 나를 추천해주셨던 일, 영화 '오늘의 연애'의 박진표 감독님이 예전에 그려뒀던 그림을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로 사용하셨던 일, 영화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님이 내 그림을 소장하고 싶다고 연락해주셨던 일도 인상 깊다. 그림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인연이 닿았던 경험들이 소중하고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일러스트레이터 집시에게 2015년은 어떤 해였는지?
ㄴ 2015년은 정말 쉴 새 없이 일했다. 그 결과물로 작업실도 얻고 사업자 등록을 하기도 했다. 외부 강의도 1년 동안 꾸준히 하면서 노하우도 생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혼자 작업을 하다 보면 외로워질 때가 많은데 작년은 많은 사람을 만나서 즐거운 한 해를 보냈다.

 

   
 

2016년의 계획은 어떤가.
ㄴ 일단 작년에 얻은 작업실을 유지하고 싶다. 그리고 일이 얼마나 들어오는지에 구애받지 않고 즐겁게 그림을 그릴 것이다.

아직 개인전 계획은 없다. 내가 올해로 스물아홉인데, 최소한 서른은 넘어야 자신이 생길 것 같다. 지금은 전시 욕심보단 일 욕심이 많다.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저을 것이다(웃음).

일러스트레이터 집시의 꿈은?
ㄴ 평생 그림 그리는 것이다. 2년 전 유럽으로 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그려주며 다녔는데 그게 무척 즐거웠다. 할머니가 돼서도 방방곡곡 여행 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그림 그리고 싶다.

집시의 작품을 보는 분들에게 한 마디.
ㄴ 요즘 들어 들어오는 일도 많아지고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졌다. 손바닥도 맞장구를 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내 작품을 보고 반응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용기를 충전하며 더욱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좋아해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린다.
 

문화뉴스 김소이 기자 lemipasolla@mhns.co.kr

    문화뉴스 김소이 | lemipasolla@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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