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生] "약빤 '데드풀' 번역가가 누구냐고요?"
  • 문화뉴스 양미르
  • 승인 2016.02.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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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캐롤' 번역가 황석희 인터뷰

   
 

[문화뉴스] 영화 커뮤니티에서 '데드풀'에 대한 감상평을 볼 때마다 한 번쯤은 나오는 말이 있다. "정말 찰지게 번역했더라고요."

'데드풀'이 17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들과 다르게 '19금'으로 개봉하는 '데드풀'은 그야말로 "애들은 가라"의 내용을 선보이고 있다. 피가 튀기는 액션과 성인이 즐길 수 있는 드립들이 넘쳐난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 이런 드립들이 순화되어서 개봉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우려가 섞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데드풀' 개봉 후 관람객들의 반응은 신선했다를 넘어서고 있다. 그야말로 기사엔 담을 수 없는 욕들이 쏟아져나오기 때문이다.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영화식 표현대로 "X나게 멋있는 번역"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황석희 번역가다. 그는 2013년 '웜 바디스'로 본격적인 영화 번역가의 길로 걸어간 10년 차 번역가다.

30대 후반의 젊은 번역가인 그가 작업한 주요 작품만 읊어도 꽤나 무게가 나가는 작품들이 많다. '인사이드 르윈', '노예 12년', '아메리칸 허슬', '아메리칸 셰프', '폭스캐처', '셀마',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등과 같은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수상작들을 비롯해 이병헌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레드: 더 레전드', '폼페이: 최후의 날', '다이버전트' 등과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 작업도 진행했다.

그런 그에게 최근 주목을 받는 두 작품이 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데드풀'이며, 다른 하나는 '아트버스터'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캐롤'이다. 두 영화 모두 서로 다른 특색이 있는 '19금' 영화다. '데드풀'은 엉뚱한 면이 많은 슈퍼히어로 영화이며, '캐롤'은 두 여인의 사랑을 다룬 로맨스 영화다. 과연 이 작품의 번역을 맡은 황석희 번역가는 두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일산의 모처에서 그를 만났다. 그 역시 '데드풀' 번역을 두고 "우리나라 외화 역사상 가장 센세이셔널하다"고 이야기했다.

 

   
 

'데드풀' 작품에 비속어가 상당히 많다. 작품 의뢰가 오면서 어떻게 번역해야겠다고 생각했나?

ㄴ 처음 작품을 받았을 땐, 다른 번역가가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한테 왔을 때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미 '19금 개막장' 캐릭터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영화가 어떻게 나올 것은 짐작했다. 번역이라는 것이 혼자 다 하는 것이 아니다. 배급사인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분들과도 논의하면서, 자를 것은 자르고, 여러 번의 피드백을 받고, 자르고, 수정해서 나간다. '데드풀'도 이런 과정이 매우 길었다. 처음 번역할 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일단 다 지르는 마음으로 번역했다. 영화 보면 "X발, X됐네, 썅" 이런 거 잔뜩 나온다.

아마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에서 배급한 영화 중 유례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이렇게 적나라하게 나간 영화가 내가 볼 땐 한 편도 없었다. 처음엔 다자를 줄 알았는데, 다 살려주셨다. 어떤 영화든 개봉을 하든 간에 내 의견을 많이 받아주면 90% 이상이 나가고, 10%는 수정해서 나간다. '데드풀'도 그 정도 될 줄 알았는데, 더 많게 내 자막대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이번에 작정을 한 것 같다. 캐릭터에 맞춰서 자막을 세게 나가자는 방향성이 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번역하기는 편했다. 이런 작품을 언제 또 번역할지 모르겠지만, 이번 기회로 표현 수위가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과한 영화는 과하게 가야 한다.

'데드풀'과 같은 영화를 좋아하나?

ㄴ 이런 영화 매우 좋아한다. 지금까지 잔잔하고 예술성 있는 영화들을 위주로 번역했다. 어떤 분들은 영화 번역계의 '안테나뮤직'이라고 부르기도 하셨다. 조금 규모가 작은 영화 위주로 많이 작업했지만, '데드풀' 같은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3월 개봉 예정인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오 마이 그랜파' 번역도 진행했는데, 대사만으로 치면 '데드풀'보다 훨씬 재밌고, 막장 섹드립이 난무한다. 마블 캐릭터들을 원래부터 좋아하는 편인데, '데드풀'은 더 특이해서 애정이 갔다.

 

   
▲ 영화 '데드풀'의 한 장면

지금까지 미국 코미디 영화를 한국 사람들이 잘 웃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식 말개그가 제대로 우리에게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국화된 의역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자신만의 해결책이 있었다면?

ㄴ '데드풀'에 나간 고유명사는 '그래도 이만하면 알겠지'하는 유명한 것들만 나갔다. 한국 사람들이 알게끔 바꾼 것들이다. 이 작품엔 말개그가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대중들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교묘하게 넘어간다. 하지만 작품에 나오는 림프 비즈킷을 마룬파이브로 번역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이다. 그런 사례의 선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 번역가가 그 선을 어디로 결정하느냐에선 문제로 삼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선이 조금씩 관객 쪽으로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 관객들은 전보다 미국 문화에 훨씬 가깝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한국화했을 것이 당연히 미국 것으로 간다. 판단 실수를 해서 그 선을 넘어가면 욕을 먹는 것인데, 정해진 안전선이 없어서 무섭다. 안 쓰면 욕을 먹을 것 같고, 안 쓰면 아무도 모를 것 같다. 진짜 예전엔 정치인, 코미디언 이야기할 때 정주영, 최불암이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다. 지금은 사회가 많이 달라졌다.

제일 번역하기 힘든 것이 언어유희 같다. 작품에도 많이 나온다.

ㄴ 머릿속에서 번쩍번쩍 나오면 좋겠지만, 아내도 번역작가여서 아내와 논의할 때가 가장 많다. 그게 아니면 친한 번역가들 카카오톡으로 다 모아놓고 의견을 물어본다. 별짓을 다한다. 인터넷 국어사전 띄워놓고, 그 글자로 시작하는 비슷한 자음을 가진 단어를 다 찾아보기도 한다. 평소에는 그런 말장난을 위해서 이것저것 많이 읽고 만화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본다.

번역가가 추천하는 '데드풀' 관람 포인트가 있는가?

ㄴ 아주 간단한 포인트 몇 개만 알고 가도 빵 터지는 포인트가 있다. 스포일러를 하지 않는 선에서 2~3분 내에 읽을 수 있는 것을 블로그에 써놨다. 남들은 웃는데 자기가 못 웃는 포인트에 같이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이 웃으면 좋겠다. 세세한 포인트를 다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고, 이 부분은 꼭 알아야 한다는 것을 영화 작업하고 나면 항상 블로그에 자막 A/S를 여러 번 쓴다. 관객분들이 이런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 영화 '데드풀' 스팟 영상. 황석희 번역가는 예고편 자막 번역 작업엔 참여하지 않았다. ⓒ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공식 유튜브

'데드풀'을 번역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ㄴ 오프닝 크레딧도 정말 재밌다. 작업할 땐 CG 처리도 안 된 영상을 받아서 작업하기도 했다. 그러다 조금씩 처리가 된 화면을 받아서 작업했다. 그런데 번역을 할 때마다 대사가 달라져 있는 부분이 있었다. '데드풀'이 마스크를 썼으니, 티가 안 나기 때문에 녹음을 여러 번 한 것이었다. '데드풀'이 드립을 치는 장면이 있는데, 라이언 레이놀즈가 주요 장면에서 애드리브를 엄청 많이 찍은 거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한 장면에 대사가 서너 번 바뀐 곳도 있다. 제작사가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이번엔 '캐롤' 작품과 번역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캐롤'은 원작이 있는데, 보통 원작 텍스트가 있는 경우 그것을 많이 참고하는가?

ㄴ 그러는 편이다. 원작의 팬들이 많아서 꼼꼼히 다 따져야 하는 경우엔 특히 그러하다. 원작이 있는 데도 참고하지 못할 때가 있긴 하다. 번역 기한이 1주일 주는 작품이 간혹 있는데, 원작을 보려면 하루 이틀은 걸리기 때문이다. 개봉 예정인 '하이-라이즈'나 '월플라워', '다이버전트', '폼페이: 최후의 날' 등은 다 읽었다. 유명한 원작은 다 읽었는데, 아쉽게 '캐롤'은 원작을 읽지 못했다. 번역본이 개봉 후에나 나왔고, 시간상 원서를 읽지 못했다. 사실 나도 사전을 찾아보면서 읽어야 한다. (웃음) 번역본도 일부 오역이 있는 것이 사실이어서, 원문과 번역본을 모두 참고하는 편이다.

작품에서 '캐롤'은 '테레즈'에게 끝까지 존대한다. 존대와 하대 표현을 설정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ㄴ 존대, 하대 표현은 요즘 예민한 부분이다. 번역할 때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여자와 남자가 부부라고 해서 서로 존대하고 하대하는 게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무조건 캐릭터다. 남편이 폭군 같고 아내가 하녀 같은 입장의 상황이라면 존-하대 식으로 번역하는 게 설정상 좋다. 그 반대의 상황에선 당연히 반대로 하면 재미난 설정이 나올 수 있다. 캐릭터가 첫 번째다. 그 안에서 무리 없이 처리하려고 한다. 캐릭터가 무난하고 특이점도 없는데, 고정적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하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캐롤'로 돌아가면 작품의 중간까지는 존대로 작업했다. 고민을 많이 했다. 어느 시점에서 말을 놔야 할까였다. 원작도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고 한다. '테레즈'는 원작에서 19살이고, 영화에선 2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처럼 보였다. 처음 만나는 것이 백화점 손님과 직원의 관계여서 존댓말로 시작했는데, 말을 놓는다면 어떤 시점에서 놔야 하는데, 그 포인트를 찾기가 촌스러워졌다. 베드신 뒤에 말을 놓는 것도 유치했다. 남녀 사이에도 그러면 큰일 나고, 동성 사회도 그렇게 하면 우습다. '후지다'고 표현한다. 개인적으로도 안 좋아한다. 그래서 끝까지 존댓말을 쓰게 된다. 자막 올라가면서 보니까 그게 우아해졌다. 케이트 블란쳇도 귀족적으로 말하며, 동작도 우아한데, '테레즈'에게 존대를 하니까 너무 섹시한거다. 그래서 끝까지 존대를 한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테레즈'가 '캐롤'과 전화 통화 후 "I miss you, I miss you"라고 말한 것을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라고 번역한 지점이었다. 혹시 번역하면서, 이 장면은 정말 잘 됐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나?

ㄴ 사실 '캐롤'은 자랑할 게 있다기 보단 아쉬움이 많다. 아껴서 그런 것도 있는데, 내가 원래 겸손한 사람은 아니다. 자랑하는 거 좋아하고, 번역하는 거 자랑한다. 밖으로 소리를 질러줘야 프리랜서는 알아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캐롤'은 칭찬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구석이 많다. 자랑보다는 조금 부끄러운 감도 있다. 단순히 '베개' 오타 말고도, 찜찜한 번역 부분도 있다. 관객분들도 모르고 지나가고, 뜻 전달만 되는 경우도 있다. 보고 나서 문장처리를 왜 저렇게 했지 싶기도 했다. 더 예쁘고 간결하게 다듬을 수 있었는데, 나랑 똑같은 시선의 번역가가 있다면 영화 보면서 욕했을 기분도 들었다.

'캐롤' 개봉 전부터 평론가나 팬층에선 작품의 해석으로 설왕설래가 있었다.

ㄴ 평론가분들의 말씀을 떠나서, 그것은 그분들의 해석이다.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없다. 퀴어 장르에 사실 크게 감흥을 느끼는 편은 아니다. '브로크백 마운틴'도 그랬다. 그런데 '캐롤'을 극장에서 자막 없이 관계자끼리 첫 시사를 하는데, 가슴이 '쿵쿵쿵' 거리면서 봤다.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 싶을 정도였다. 멜로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근 몇 년간 본 멜로 중에 가슴이 쿵쿵 뛰는 멜로였다. 퀴어 장르 영화를 떠나 그냥 좋다고 했다.

번역하면서 이 영화는 퀴어 장르니까 성소수자들을 위해서 번역해야해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작품만 놓고 번역한다. 단 주의를 한다. 여성과 남성 존하대도 젠더 문제인데, 젠더 문제는 제일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성소수자 문제는 특히 사회 시선이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서툰 제스쳐를 내가 취한다면 그분들로선 더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번역뿐 아니라 다른 분들의 행동이나 말이나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하던 것들이 그분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퀴어 작품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이런 작품들이 더 나올 때 평론, 마케팅, 기사를 낼 때도, 책 서문 쓸 때도 그렇고 신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아카데미 시상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본인이 번역한 작품들도 후보에 많이 올랐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캐롤', '사울의 아들', '스포트라이트', '트럼보' 등이 있다. 과거 작업한 '노예 12년'이나 '셀마'가 상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ㄴ 내가 번역한 작품이 상을 받으면 좋다. 그만큼 나도 무게감 있는 작품을 번역했다는 것이 되고, 내 포트폴리오가 쌓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만, 영화 팬으로도 기분이 좋다. 늘 아카데미, 칸, 베를린 영화제들 하면 기대를 한다. 내가 하는 작품이 좋은 성적을 받았으면 좋겠다. '스포트라이트' 같은 경우는 작품상을 기대하고 있고, '사울의 아들'은 외국어영화상이 기정사실인 것 같고, '캐롤'도 여우조연상은 꼭 받았으면 좋겠다. 케이트 블란쳇은 최근에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니 어려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촬영상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다. 하지만 '캐롤'도 대단했다.

그렇다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을까?

ㄴ 받긴 받았으면 좋겠다. 물론 안 받고 매년 아카데미 나갈만한 영화 세 편씩 찍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기도 하다. (웃음)

황석희 번역가의 번역 작품은 앞으로 계속 개봉될 예정이다. 24일 '스포트라이트', 25일 '사울의 아들', 3월 3일 '갓 오브 이집트', 3월 10일 '런던 해즈 폴른'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황석희 번역가의 더 자세한 번역 이야기는 문화뉴스 [영화외전]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문화뉴스 양미르·김진영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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