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H 엔터테인먼트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속칭 '연기 신'으로 불리고 있는 이병헌하면, 그의 굵직한 연기가 드러난 대작 영화들만 떠오른다. 그에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안겨다준 '내부자들'을 비롯해 2016년 연말과 2017년에 10월에 개봉했던 '마스터', '남한산성'부터 생각나는 게 정상이다. 그렇기에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가족영화로 출연한다 게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

이병헌이 출연한 '그것만이 내 세상'은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엄마와 자신도 몰랐던 동생을 다시 만나게 된 한물 간 복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며, 그가 연기한 한물 간 복서 '조하'는 겉모습은 다가가기 힘들 아우라를 가졌으나 알고 보면 상처 입은 인물이었다. 이병헌은 조하로 다시 한 번 '연기 신'이라는 별칭에 걸맞는 연기력으로 호평받고 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 개봉하기 한참 전인 지난 3일 수요일 늦은 오후, 서울 중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문화뉴스는 이병헌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남한산성' 때보다 더 많은 웃음이 오갔다. 이병헌이 말하는 '그것만이 내 세상'은 어떤 영화일까?

▲ ⓒ BH 엔터테인먼트

대작 영화에 주로 등장하다가 오랜만에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일상 영화에 출연했을 텐데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다.
└ 신나고 즐거웠다. '남한산성' 같은 영화에 참여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와는 다르다. '남한산성' 같은 큰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을 촬영하며 느끼는 감동도 있지만, 이런 영화에서는 싱싱한 생선처럼 파닥파닥 뛰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왜냐면 역사적 사실이나 실제 사건이 아닌 현실에 붙어있는 옆집 이야기 같은 영화라 현장에서도 즉흥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리고 감독님이 직접 대본을 쓰셨기에 대본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직접 대본을 쓴 감독님의 장점이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 대본을 읽었을 때 재밌었다. 조하의 정서가 매우 와닿았고, 그를 통해 쓸쓸한 느낌도 받았다. 이 영화가 받아들이는 이들의 기준에 따라 코미디가 될 수도 있고, 억지 울음을 자아낼 수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선을 지키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따뜻하고 기분 좋은 느낌도 있었다.

▲ ⓒ BH 엔터테인먼트

'선을 지키는 영화'라고 했는데, 이 영화가 그동안 비슷한 장르의 영화에서 나왔던 뻔한 공식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 말하는 '형제'란 무엇인가?
└ 혼자 살아오며 평소에 표현을 잘 하지 않던 조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10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속마음을 표현했다. 왜냐하면 과거에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을 때부터 마음을 닫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어떤 트라우마나 아픔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 큰 상처들은 저 깊숙이 들어가 있다.

그런 상태이다보니, 조하는 일상적으로 특별한 감동 없이 흘러간다. 상당히 중요한 감정포인트임에도 일상에서 겪는 것처럼 지나쳐버린다. 그러다 후반부로 갈수록 물과 기름 같던 가족과 조금씩 행복의 싹을 틔울 가능성을 보였던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 깊숙이 있었던 엄마에게 원망을 쏟아낼 때도, 엄마는 그 때마저도 '진태'를 가장 먼저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엄마가 '다음 생애는 너만 보살피면서 살게'라고 하지만, 그 말 한 마디로 조하가 오랫동안 쌓여온 감정의 골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더라. 그래서 복도로 나오면서 욕을 내뱉었던 것도 그런 심정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안쓰러웠다.

조하의 마음 속에는 엄마가 유일했을 것인데, 그런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생전 처음 보는 동생이 남게 되었다. 나의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그를 항상 잘 보살펴야 한다는 무거움도 같이 있었을 것이다. 자기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조하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힘든 결정일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하의 인생이 더 쓸쓸한 것 같다.

완성본 이전에는 마지막 장례식장 장면에 조하가 '진태'를 찾는 과정이 반영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진태가 거기 갔나?" 말한 후, 곧바로 바로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으로 이어지는 게 가짜 같더라. 노골적으로 형제의 우애를 드러내려는 느낌이 들어 감독님께 과정을 조금이라도 살렸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그래서 멀리서 한참 바라보다가 흐뭇해 하는 장면이 추가된 것이다.

▲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그래서 그동안 봐왔던 당신의 모습과 180도 상반되었다고 느꼈다. 특히나 외모부터 상당히 달랐다. 포스터부터 이병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 같았다.
└ '남한산성' 때 입었던 의상은 종종 입기 복잡해 불편한 점도 있었고, 수염까지 분장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선 트레이닝복에 운동화, 슬리퍼 등 집에서 입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편했다. 다만, 촬영하면서 구릿빛 피부가 약간 옅어지는 게 보여 그 부분만 조금씩 분장했을 뿐, 그 외 특별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조하의 헤어스타일도 최초엔 스포츠형이었다. 미용실에서 스포츠형으로 자르다가 윗머리와 뒷머리가 길게 남긴 걸 거울을 통해 보고 문득 조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어 감독님께 보냈더니 승낙하셨다. 외모나 의상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편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는 생활에 어울렸다. 만화방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처럼 편한 모습처럼 말이다.

원래 감독님이 생각했던 조하는 좀 더 서먹서먹하고 거친 인물이었다. 대본에서도 조하가 쳐다보면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외모나 느낌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본인이 직접 각본을 쓰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조금 다른 것 같다고 표현하셨는데,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웃음)

설정이나 소재가 다른 영화들과 기발한 건 아니지만, 이 영화의 특별한 것이 있다면?
└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게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이다. 어떻게 보면,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 소재지만, 뻔한 공식을 따라가면서도 선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어떤 영화 장르나 공식은 다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액션 영화는 항상 선악 구도로 나뉘며 결말은 언제나 정의가 승리하는 공식이다. 다만, 이 공식을 누가, 어떤 이야기로, 얼마나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반영하느냐가 영화마다 조금씩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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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보고회 당시, 전단지 나눠주는 장면을 찍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못 알아봐서 놀랐다고 말했던 바 있다. 실제로 극 중에 전단지 나눠주는 장면이 많이 나왔는데, 정말 사람들이 못 알아봤는가? (웃음)
└ 오히려 영화엔 생각보다 해당 장면이 적게 들어가서 놀랐다. (웃음) 실제 일주일 정도 촬영했다. 내가 전단지를 나눠주는 걸 받을 때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못 알아보긴 했다. 카메라를 어딘가에 숨겨놓고 몰래카메라식으로 진행하다 풀샷으로 두어 번 찍었다. 그렇게 되면 촬영하고 있다는 게 다 소문났다.

그렇기에 몇 일 간격을 두고 장소를 바꿔 새롭게 동선을 짠 뒤에 촬영하니까 사람들이 눈치채질 못했다. 처음에 이 장면이 대본에 별로 없어 왜 이렇게 많이 찍었나 의아했다. 그때 찍었던 장면을 전부 연결해 하나로 붙인다면 이 또한 한 편의 영화가 될 것이다. (웃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공간에서 전단지 돌렸는데, 느낌이 사뭇 달랐을 것 같다.
└ 처음에는 감독님이 처음 영화를 만드시기에 무모한 상상을 하고 계신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곳에서 보조출연자분들 몇몇 불러 촬영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장면이 부드럽게 잘 넘어가니까 내가 예상했던 거와 매우 달라서 느낌이 새로웠다.

이번 영화에선 연기인지 실제모습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가족이 함께 같이 찍는 사진이나, 진태와 게임 하는 장면 등이 그렇게 느껴졌다. (웃음)
└ 함께 사진 찍는 장면은 촬영현장에서 순간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웃음) 왜냐하면 조하가 게임에 몰두하면서 어린아이가 되는 것처럼, 내면에 아이 같은 면을 통해 기분 좋으면 돌변한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병실에서 세 명이 찍은 사진을 바라볼 때, 까불고 웃긴 모습으로 담겨 있어야 엄마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사진을 바라보며 안타깝고 애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애드리브라 생각할 극 중 브레이크댄스는 원래 대본에도 나와 있던 것이다. 처음에 대본에서 접할 때는 재밌겠다고 싶으면서도, 난데없이 나오는 것 같아 한편으론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였는지, 유독 애드리브로 느껴지는 추임새들이 많이 보였다.
└ 영화 장르와 조하라는 인물의 특성상 많아야 했다. 그리고 감독님이 직접 대본을 쓰셨기에 더 좋은 장면을 위해 아이디어를 논하기도 쉬웠고, 의도에 벗어나지 않는 한 더 재밌거나 상황에 맞는다면 재밌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애드리브를 많이 했다.

그렇다 보니, 언제부턴가 감독님이 "병헌 씨 혹시 다른 거 없어요?"하고 기대하기 시작하셨다. (웃음) 그래서 한 장면을 두고 여러 가지 버전으로 촬영하게 되고, 감독님도 어느 정도 나에 대해 익숙해졌는지 요구하는 게 많았다. 없다고 답하면 약간 허무해 하는 것도 느꼈다. (웃음)

[문화 人] '그것만이 내 세상' 이병헌 "박정민에게 편지 받고 감동했다"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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