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 연극 '백석우화',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를 통해 바라본 시인들의 '부끄러움'

   
 


[문화뉴스]
혹자가 그랬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낯선 환경에서도 금세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돼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뛰어난 적응력을 갖게 된 것일까?

그래서일까? 세계를 향한 시선은 익숙하지만 '나'를 향한 시선에는 참 어색하다. 자의식이 존재한다는 것. 매일매일 익숙한 삶을 살아내면서도, 타성에 물들어가는 자신의 상태를 목도한다는 것. 자성적인 태도를 지닌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어색하고 낯설고 시도 자체가 힘들다. 이 즈음에서 세 시인이 자꾸만 생각난다.

영화 '동주', 연극 '백석우화 -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겪어낸 시인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을 낱낱의 개인으로서 마주해야했던 윤동주, 백석, 그리고 김수영. 이들은 시작(詩作)을 하며 타성에서 벗어나 '나'라는 실체를 마주했다. 개개의 헐벗은 실체를 마주한다는 것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수반하곤 한다. 세 시인은 어떻게 '부끄러움'을 받아들이고 감당해냈을까?

1. 제 자신을 부끄러워할 수 있다는 것, 윤동주

   
영화 '동주' 중 윤동주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게 부끄러워서 서명을 못하겠습니다."

영화 '동주' 중 윤동주가 일본 형사에게 진술서 서명을 거부하는 장면에서 남기는 대사다. 그는 그렇게 진술서에 서명을 거부하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도중 건강이 악화돼 1945년 2월에 생을 마치고 말았다. 광복까지 불과 6개월을 남겨둔 채 말이다.

영화 전반에서 윤동주의 감정선은 퇴영적(退嬰的)이다. 몽규처럼 나서거나 적극적이기 보다는 조용하고 숫기 없는 태도다. 그러나 점차 그는 시를 써가며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제 모습을 인지하며 자신을 부끄러워하기에 서슴지 않는다. 윤동주는 시 '참회록'을 통해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까'하고 읊조린다. 무엇이 그리 부끄러웠던 것일까? 무엇 때문에 거울을 통해 바라본 자신의 얼굴 자체를 욕되다라고 한숨짓게 만들었을까?

 

   
영화 '동주'

그는 '쉽게 씌어진 시'에서 '인생은 살기 어럽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라 고백한다. 남의 나라에서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가'는 제 자신의 상황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침전(沈澱)하'고 있는 상황으로 여긴다.

주목해야할 것은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윤동주의 태도다. 영화 '동주'와 시를 통해 바라본 윤동주의 삶을 엿보며, 나는 '부끄러움'과 직면해야 했다.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그 자체를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럼이다. 떳떳하고 의연하게 스스로 부끄러워할 수 있었던 윤동주. 수치심을 부끄러워해서 마음 놓고 부끄러워할 수 없었던 자와 자신의 수치심을 올곧이 드러내며 자성할 줄 알았던 그. 우리는 어떤 것을 더 부끄러워해야 할까?

2. 부끄럼과 동반하는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는 것, 백석

   
연극 '백석우화 -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중 백석 ⓒ 연희단거리패

연극 '백석우화 -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은 백석이 직접 쓴 여러 편의 시를 가지고, 백석의 생애를 되돌아본다. 백석은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에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라 말한다.

그는 '가슴이 꽉 메어올' 정도로,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정도로, '낯이 붉을' 정도로 제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렸다'고 고백한다. 심지어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낀'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윤동주와 다른 것은, 부끄러움 그 이후의 생각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생각해본다. 그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떠올렸으며,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한다고 얘기한다. 연극 '백석우화 -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도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인간은 어디서건 살아나가야 하는 거요.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살아나가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소"라고 말이다.

백석은 이 대사 이후, 남쪽의 친구 신현중에게 편지 형식의 에세이 '붓을 총·창으로!'라는 글을 짓는데, 연극은 이 부분을 대남 선전방송의 형식을 빌려 이념의 도구로 쓰인 백석의 모습을 비참하게 다룬다. 여기서 타인을 쉽게 힐난하던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더불어 가치관과 신념대로 살지 못해,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는 무기력한 자신을 창피해하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연극 '백석우화' ⓒ 연희단거리패

남한에서는 월북시인으로, 북한에서는 체제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글쟁이로 취급받았던 백석은 제 자신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이라 인정한다. 거대한 것에 의해 이끌려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며 스스로를 포기하며 무력해지는 일을 그만둔 것이다.

수치심과 동반되는 무기력함. 백석은 이것을 더 경계하며 살았던 듯하다. 삶을 포기하게 하는 무기력함에 젖어들지 않기 위해 개인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그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세상과 완연한 타협을 도모하지는 않았다. 결국 백석은 북한에서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낙인찍혀 삼수갑산 협동농장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되뇌어본다.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3. 부끄럼을 발견하는 곳도, 부끄럼을 해방할 수 있는 곳도 시(詩), 김수영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남산예술센터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한 김수영이라는 시인이 있다. 시(詩)가 곧 자신이고, 자신이 곧 시이기 위해서,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을 계속 채찍질했다. 김수영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에서 왕궁의 음탕대신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대신 20원을 받으러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는 제 자신을 인식한다.

그는 자신이 '절정 위에 서있지 않고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며 스스로를 비겁하다 여긴다. 그리고는 외친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은 /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 정말 얼마큼 작으냐……' 하고 말이다. '작은' 김수영을 바라보며, '미세한' 나를 발견한다. 김수영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과 내가 미세해질 수 있는 이 시대가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남산예술센터

시인으로서 권력에 맞서고자 하는 제 자신의 내면을 당당하게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부단히도 채찍질한다. 그는 '눈'이라는 시에서 '기침을 하자 /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 기침을 하자'고 말한다.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라고 말하던 김수영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공간 속에서 예민해야 함을 역설한다. 우리를 침잠시키는 현실에 깨어있자고 말이다.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의 부끄러운 현실을 파악했고, 그 부끄럼의 순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시로써 부끄럼의 근원지를 날카롭게 캐냈다. 현실에 물들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시를 통해서였고,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그가 자유롭게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것도 시를 통해서였던 것이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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