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실패와 상실'

[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DJ래피] 실패.

실패라는 단어 앞에 올 수 있는 수식어는 합격, 연애, 결혼, 사업, 협상, 설득, 관리 등 참으로 다양하다. 그닥 반가운 단어는 아니지만 그만큼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자리하고 있는 녀석. 애써 외면 하지 말자. 실패도 소중한 우리 삶의 일부이다.

아프리카 최고의 사냥꾼은 '리카온'(아프리카 들개)이라고 한다.

리카온의 사냥 성공률은 40~70%이며 사냥에 실패하면 리카온 무리는 굶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좌절 따윈 없다. 성공과 실패 모두 그들에겐 그저 일상일 뿐이다. 그게 중요하다. 그들은 다시 사냥에 나설 것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사냥을 시작하지만 우리는 실패와 동시에 좌절감과 무기력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괴테는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인 친구의 약혼녀를 사랑하게 되자 절망했다.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괴테는 그녀의 결혼 소식을 접하자 남은 생을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차마 용기가 없었던 그는 4주 동안 틀어박힌 채 이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책으로 써냈다.

이 책은 뼈저린 상실을 경험해 본 자만이 술술 읽힌다. 책이 출판되었을 때 유럽에선 베르테르 열풍이 일어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베르테르의 복장을 하고 다닐 정도였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듯이, 삶에서 실패를 피할 수는 없다. 지략가이자 병법의 대가였던 제갈량도 패했고, 전쟁터를 종횡무진 누볐던 나폴레옹도 결국 패배했다.

이쯤에서 맹자의 말을 한번 곱씹어 보자.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를 지치게 하고 뼈마디를 수고롭게 하며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은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맹자의 말처럼 우리는 시련과 역경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한다. 와신상담, 절치부심은 그냥 만들어진 말들이 아니다.

기린은 황량하게 마른 나무에 나뭇잎이 없는 것을 봤을 때, 절망하며 울지 않는다. 대신 먹을 수 있는 나뭇잎을 찾을 때까지, 이 나무, 저 나무 가서 확인해 본다.

누구나 사업 실패, 가정 붕괴 등 비극적이라고 불릴 만한 좌절을 경험한다. 이런 역경속에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들이 삶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해준다고 생각하면, 그로 인한 상처를 보다 빨리 아물게 할 수 있다.

 

하루키 원작의 '노르웨이의 숲'은 원 제목 그대로 애초 국내 출간됐지만, 반응은 뜨겁지 않았다.

1989년 제목을 '상실의 시대'로 바꿔 냈고, 출판 사상 최장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그만큼 '상실'의 키워드는 우리를 깊게 파고든다.

어떤 면에서든 우리 인생에 상실은 불가피 하다.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이, 가족이, 친구가 영원할 것 같은가? 영원하지 않기에 곁에 있는 지금 이순간이 소중한 것이다.

유한한 존재인 우리에겐 영원한 사랑도, 영원한 삶도 없다. 상실은 삶에 대한 대가이다. 동시에 성장과 또 다른 시작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훗날 큰 의미가 되고 지금의 우리를 만드는 것은 삶의 힘든 시기이다. 성공하고, 풍요롭고, 가치 있고, 만족과 성취를 이룬 삶을 산 사람들은 인생의 극도의 좌절을 맛본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DJ 래피. 글 쓰는 DJ 래피입니다. 두보는 "남자는 자고로 태어나서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문학은 '인간을 위한 학문'이며 문사철을 넘어 예술, 건축, 자연과학 분야까지 포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읽고 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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