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아띠에터 칼럼그룹]
※ 문화 해설(解說)은 기사 특성상 '군도 민란의 시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Q. 영화 '군도'가 1000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주변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많이 갈리더라고요. 영화가 그럴싸한데, 보면서 '잉?' 소리가 난다면서요. 왜 그럴까요?

   
 

ㄴ 노사장(이성민 분)이 이끄는 지리산 추설은 착취하는 양반 계급으로부터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도적떼입니다. 서얼 출신의 조윤(강동원 분)은 가문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 임신한 제수를 살해하려 백정 돌무치(하정우 분)를 고용합니다. 하지만 돌무치가 조윤의 제수 살해에 실패하자 조윤은 돌무치의 가족을 살해합니다.

'범죄와의 전쟁'과 공통점

윤종빈 감독의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는 '떼도둑'을 뜻하는 제목 '群盜'가 의미하듯 19세기 중엽 조선 철종 때 호남의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활약하는 활빈당을 묘사하는 액션 영화입니다. 범죄 집단 속 군상을 소재로 설정했다는 점에서는 윤종빈 감독의 전작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연상시킵니다. 지리산 추설의 일당이 떼로 전진하거나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정면에서 포착해 와이드스크린에 반복 제시하는 연출 또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메인 포스터에도 활용된 조직폭력배의 활보를 정면에서 잡은 장면과 흡사합니다.

하정우를 비롯해 마동석, 김성균, 조진웅 등 주조연 배우들도 두 작품이 겹칩니다. '군도'의 서두에서 18살이었던 돌무치가 2년 뒤 20살이 되었을 때 마동석이 분한 천보가 22살이 되었다는 대사는 70년대 생인 두 배우의 실제 나이를 감안하면 윤종빈 감독의 유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혼재

'군도'에는 다양한 장르과 혼재되어 있습니다. 서두와 결말에서 황야를 말달리는 주인공들이 상징하듯 기본적으로 서부영화의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착취하는 지주 계급에 반기를 드는 활빈당은 서부영화의 단골 소재입니다. 개별 캐릭터의 개성이 빛나는 집단 주인공 설정과 화려한 캐스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시공간적 배경은 차이가 있지만 기획, 실질적 장르, 대지를 달리는 도적떼, 그리고 서부영화 특유의 배경 음악까지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과감한 시도였던 김지운 감독의 서부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2년 뒤 돌무치에서 이름이 바뀐 도치가 필살기로 활용하는 기관총은 '와일드 번치' 등 서부영화에서 영웅적 주인공이 다수의 적을 일거에 섬멸할 때 활용하는 단골 무기이기도 합니다.

장르가 무협 액션인 만큼 '군도'는 당연히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장식했던 무협 영화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도치의 쌍칼, 노사장의 장검, 땡추(이경영 분)의 지팡이 속에 숨겨둔 검, 천보(마동석 분)의 쇠뭉치, 마향(윤지혜 분)의 활 등 다양한 무기의 활용 또한 홍콩 무협 영화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도치가 홀로 무공을 닦으며 조윤과 최후의 결투를 벌이는 대나무밭은 무협 영화의 클리셰 어린 공간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일본 애니메이션 '수병위인풍첩'에서 주인공 쥬베가 장님무사와 대나무밭에서 혈투를 벌인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비현실적이며 과장된 캐릭터들의 이미지와 유머 감각은 만화적입니다.

갈등 구조는 차이가 있지만 수탈당하는 백성들이 자구책을 찾아 나섰으며 도적떼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걸작 '7인의 사무라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지리산 은거지 습격 장면은 '7인의 사무라이'의 클라이맥스인 폭우 속 마을 습격 장면을 오마주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정한 주연은 강동원

윤종빈 감독은 자신의 연출작의 주연으로 하정우를 네 번째로 기용했습니다. 하정우가 분한 돌무치는 백정을 뜻하는 '돌머리'와 '무지렁이'의 합성어로 보입니다. 도적떼에 가담한 돌무치는 '뒤집다'는 의미의 '도치(倒置)'라는 어엿한 한자 이름을 얻게 됩니다. 동료들을 얻고 고독한 존재에서 벗어나 일종의 신분 상승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도치가 아니라 조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치와 조윤은 불합리한 신분제의 희생자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이 살해된 후 가족이 사라지며 성격 또한 백정 출신답게 직선적인 도치와 달리 출생의 비밀을 지였으며 가족적 배경이 복잡해 콤플렉스를 지닌 조윤이 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조윤의 출생 배경을 설명하는 데는 내레이션은 물론 아역까지 할애해 엄청난 공을 들입니다. 거의 모든 장면의 액션에 조윤이 등장하는 반면 돌무치는 도적떼 가담까지 약 러닝 타임 1시간이 소요되며 동료들과 액션 장면도 분담하기에 비중도 크지 않습니다.

장신의 미남 배우 강동원이 분한 조윤은 '형사'와 '전우치'에서 그가 맡았던 타이틀 롤과 흡사한 이미지입니다. 순백의 의상이 두드러지는 조윤이 검정색 의상을 착용한 노사장 및 도치와 각각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흑백이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군도'의 진정한 주연은 하정우가 아닌 강동원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윤종빈 감독이 '비스티 보이스'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통해 드러낸 바 있는 위악적 남성상에 대한 로망이 '군도'에서는 조윤을 통해 투영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다수의 도적들과 홀로 싸우는 악역이라는 점에서는 '어벤져스'에서 다수의 슈퍼 히어로들과 홀로 맞섰던 로키를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장 씨 캐릭터에 주목

'군도'에서 눈여겨 볼 캐릭터는 김성균이 분한 장 씨입니다. 김성균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하정우가 분한 최형배의 직속 부하이자 독특한 머리모양이 두드러진 박창우로 분해 크게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장 씨는 감초 캐릭터이지만 결말에서 조윤을 살해하는 것은 도치가 아닌 장 씨입니다. 농민의 대표 자격으로 민란에 가담해 최대 악역을 살해해 '성공한 민란'에 마침표를 찍고 도적떼에 가세한다는 점에서 장 씨는 '군도'의 부제 '민란의 시대'에 부합되는 등장인물입니다.

노사장, 땡추, 천보 등이 사망했기에 만일 '군도'의 후속편이 제작된다면 장 씨의 비중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도치가 노사장의 자리를 물려받아 실질적인 우두머리가 되었음을 감안하면 하정우와 김성균이 또 다시 끈끈한 상하관계를 반복할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도치와 장 씨는 지배 계급에 의해 부모를 잃었다는 점에서 공통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무술 감독 정두홍이 마향의 과거 회상 장면에 잠시 등장하며 이다윗이 조윤의 배다른 동생으로 등장합니다. 조연 배우들뿐만 아니라 카메오까지 화려합니다.

서사의 약점

'군도'는 아쉬움이 적지 않습니다. 서사의 전개 과정에는 몇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우선 지리산 은거지가 습격당했을 때 화살을 옆구리에 맞은 아이가 특별한 치료 과정도 없이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아이는 화살을 맞은 것이 아니라 압정에 찔린 것처럼 끝까지 멀쩡합니다.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에 어린이가 사망하는 장면을 제시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아버지(송영창 분)까지 살해한 패륜아 조윤이 그토록 찾아 헤맨 끝에 간신히 찾아낸 가문의 상속자가 될 조카를 살려둬 품에 안고 나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전개입니다. 2년 동안 아이를 키운 도치를 비롯한 도적떼 무리에 아이를 다시 전달하기 위한 연출 의도로 보이지만 조윤이 어린 시절 배다른 동생을 살해하려 했던 것을 감안하면 조카를 살려둔 것은 설명이 부족합니다. 역시 어린이를 살해하는 장면 제시가 부담스러웠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윤이 지리산 은거지를 알아차리는 과정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생포된 땡추가 무고한 백성들이 조윤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견디지 못해 발설합니다. 발설 여부와는 무관하게 극악무도한 조윤은 백성들과 함께 땡추를 살해했을 것이기에 땡추는 발설하지 말았어야 옳습니다. 비밀결사의 정신적 지주의 마지막 선택치고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클라이맥스에서 은거지의 습격이 묘사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다른 방식으로 조윤이 은거지를 알아차렸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윤종빈 감독도 참여한 각본에 대한 고심이 부족했습니다.

윤종빈 감독의 과욕?

강동원의 경상도 사투리도 어색합니다. 조윤은 호남 대지주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강동원의 사투리는 이전에 출연했던 영화와 드라마에서 누차 지적된 약점이지만 아직도 보완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정우의 걸쭉한 전라도 사투 연기와는 대조됩니다. 더 큰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노력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도치가 클라이맥스에서 기관총을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조윤이 연습 사격을 하는 화승총이 실제 격투 장면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도 아쉽습니다. 조윤이 화승총을 사용해 도적떼의 중요 캐릭터 중 한 명 이상을 저격해 살해했다면 그의 잔악성은 더욱 부각되었을 것입니다.

137분의 러닝 타임도 부담스럽습니다. 내레이션이 삽입되어 이해를 돕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지나치게 설명적이어서 오히려 사족입니다. 내레이션이 아니라 영상이나 대사를 통해 설명할 수 없다면 과감히 편집해 120분 안팎으로 러닝 타임을 줄였다면 지루함이 덜 했을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윤종빈 감독의 욕심이 과했습니다. 윤종빈 감독은 '군도' 한 편에 호화 캐스팅, 호쾌한 액션 활극, 민중 승리의 주제의식, 양극화 현실에 대한 카타르시스 제공, B급 정서, 유머 감각, 완성도 높은 대작, 다양한 장르에 대한 오마주, 15세 관람가, 그리고 대중적 흥행까지 모두 충족시키고자 했지만 아쉽게도 충족시킨 것이 많지 않습니다. 차라리 고어의 수준을 높이고 성인 취향의 확실한 액션과 B급 유머를 추구했다면 오래도록 회자될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아무것도 제대로 담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글] 아띠에터 이용선 artietor@mhns.co.kr
'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운영자. 영화+야구+건담의 전문 필자로 활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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