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차 부부의 권태기 극복 여행, 현실과 사랑 그 가운데에서

[문화뉴스] 오래된 부부인 두 사람, '멕'과 '닉'.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오며 어느새 설렘보다 권태로움만이 남은 듯한 둘은 행복했던 과거를 추억하고, 서로에게 설렜던 감정을 되찾기 위해 30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아, 파리를 다시 찾는다.

   
 

그러나 여정의 시작에서부터, '멕'은 남편 '닉'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에도 쉽게 짜증내고 기분이 망가져 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권태롭고 불만스럽고 애써 분노를 애써 참다 폭발하는 듯한 그녀를 보고 있자니, 부부라는 게 결국 오래되어 이런 모습이 되는 거라면 굳이 결혼을 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상당히 예민해 보이는 '멕'이지만, 그녀만을 예민하다 치부하기에는 '닉'이 기여한 바도 적지 않다. 추억을 다시금 더듬고 싶다는 여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황혼의 나이에 다시 찾은 파리 여행, 그 시작을 '예전에 찾았던 낡고 허름해빠진 호텔'로 예약한 그의 센스를 보라.

그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몇몇 낯선 남자들처럼 멋지게 나이 들지도 못했다. 그녀를 안고 싶다면, 여전히 멋있는 모습으로 자신의 매력을 당당히 어필하는 방법이 오히려 통하겠다 싶지만, 그는 아내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남편이 아닌 아들인가 싶을 만큼 어린아이같이 굴며, 섹스조차 '구걸'한다(-정말 영화 속 그는 구걸이라는 표현이 맞다 싶게 행동한다-).

   
 

이 둘은 과거 어느 순간, 분명 사랑했을 테고, 조금 예민한 편이기는 하나, '멕'도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을 지나며 점차 지쳐왔고, 그 과정에는 '닉'이 자신의 강의를 듣는 어린 여대생과 놀아난 것과 같이, 상대에게 실망하고서도 애써 넘기고 덮어온 많은 이야기가 포함된다.

정작 그는 뻔뻔스럽게도 왜 15년 전 일을 꺼내 이야기하느냐며, 오히려 근거도 없이 자신의 아내와 컴퓨터 수리공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엉망인 그들이지만, 그래도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이 나오게 하는 이들만의 모습이 존재한다. 바로 전 화가 머리끝까지 나 돌아서다가도, 상대의 작은 실수나 사소한 행동으로 웃음이 나고, 다시 손을 잡게 되는 모습. 권태로운 부부 같으면서도 설레는 감정이 되살아나는 순간에 길에서 키스를 한다든지, '캔뚜껑'을 반지 삼아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주는 로맨틱함을 완전히 잃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스르르 웃음이 난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직장도 관두고 새롭게 살고 싶다'며 넌지시 헤어짐에 대해 이야기 꺼내보는 '멕'이지만, 늦은 새벽잠에서 깨, 곁에 있어야 할 그가 없자, 놀라 일어나 남편을 찾고, 그가 떠난 것은 아닌가 걱정하며, 테라스에 남아 있던 그에게 알아 달라고 말하는 그녀이다. 그리고 그의 품 안에서 그녀는 금세 안정을 되찾는다. 파리의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닉'의 대학시절 친구 '모건'은 이들 부부를 홈파티에 초대하는데, 그곳에서 이 친구와 '닉'이 나누는 대화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이야기한다.

중년이 넘어선 나이에 새 장가를 든 '모건'은 자신이 겪은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자신은 우울했고,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고, 그러다 결국 자신을 해방하기로 마음먹고, 어느 날 아침 혈혈단신으로 아내와 가족을 떠났다고 말이다. 그리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그 모든 것을 다시 반복하기로 했다고 말하는 그는 스스로 즐기고, 딸 정도로 보이는 젊은 아내를 매혹시키려 정성을 다하고 있다며 새로운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스러워한다.

   
 

반면 '닉'은 그런 생각은 '잘못된 믿음'이라 말한다. 누군가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옳지 못한 믿음인지. 그리고 그렇게 자유를 갈망해 가족을 버린 '모건'이 자신이 방치한 아들과의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죄책감 덩어리가 되는 것, 그리고 그의 전부인이 남편을 잃은 후, 창 밖으로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선택이 불러온 참혹한 결과를 반증한다.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신의를 지킨다는 것. 내가 사랑하고 선택한 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것. 그런 '닉'의 사랑 안에서 살아온 '멕'은 결국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다시금 확인하고 깨닫는다. 친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후, '대체 누구길래 그리 반갑고 웃음이 끊이지 않느냐고, 숨겨둔 애인이라고 있느냐'고 묻는 친구에게 방금 통화한 사람은 바로 '내 남편'이었다고 대답한 그녀.

이런 둘이기에, 결국 영화의 마지막 장면, 집에 돌아가지 못할 만큼 상황적인 난관에 처했음에도, 이들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함께 춤출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이렇게 영화는 지극히 '현실'을 다루는 것 같지만, 결국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을 확인하고 보여준다. 이들처럼 어쩌면 이들보다 행복하게, 평생 연애하듯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 그렇게 연인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성장해 떠나는 순간 부모로의 역할이 마무리된 것에 대한 공허감과 함께 '더 이상 우리가 연결되어 함께 있을 필요 없잖아'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 하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우리가, 좀 더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행복하고 여유로운 노년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서로 칭찬하고 더 아끼며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을 생각이다.

참, 이 영화는 '노팅 힐', '굿모닝 에브리원'을 연출한 로저 미첼 감독의 작품이다. 

[글] 아띠에떠 미오 artietor@mhns.co.kr

미오(迷悟):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심리학,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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