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당신은 타인의 사랑에 웃을 자격이 있는가

[문화뉴스=아띠에터 칼럼그룹]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그저 운이 없는 것이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다. … 알베르 카뮈
사랑은 항상 어려움을 동반한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사랑이 좋은 이유는 사랑이 가져다주는 거대한 에너지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 

인생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짜릿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에 그의 마음을 얻는 과정은 매우 쉬울 수도 있지만, 때로는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사랑을 얻는 과정이 어려운 만큼 과정에서의 성장이 반드시 존재하며, 그 성장이 이후 행복의 성취를 더 달고, 성숙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러한 성취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가를 알기 위해 상대를 더욱 깊이 생각하려는 노력보다는 타인의 확신을 원한다. 문제는 그 타인이 나를 잘 알고, 나를 존중해주고, 나의 사랑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에 대해 아예 모르는 사람이 상황을 판단하면 객관성은 획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마녀사냥'은 사랑에 빠져 괴로움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붙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 같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사랑 이야기에 객관성을 부여하며, 나를 정신 차리게도 하고, 나를 깨닫게도 한다. 하지만 소중하게 여겨져야 할 사랑이라는 감정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너무나도 쉽게 가십거리가 된다. 그 패널들만이 내 사랑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마녀사냥을 보는 불특정 다수가 내 사랑 이야기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함정이다.

비록 나의 사랑이야기가 남들이 듣기에는 웃음이 나오는 가볍고 별 것 아닌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소중한 감정이 아니었던가? 나를 모르는 불특정 다수가 나의 소중한 감정, 혹은 상대의 소중한 감정을 가볍게 논하며 웃고 넘어간다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다. 상대적 입장에서 프로그램에 소개된 사랑 이야기는 내 일이 아니니 당연하게 웃고 넘길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사랑이라는 사건, 그리고 감정은 내 일이 아니라고 쉽게 웃고 넘길 감정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마녀사냥은 기획의도 자체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연애이야기에 대한 공급자와 수요자, 즉,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은 자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을 치유하거나 웃고자 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에 마녀사냥이 제작되고, 그만큼 인기를 얻는 것일 것이다. 물론 패널들의 대화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도 많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한낱 가십거리로 전락시킨다면 마녀사냥은 바람직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내 사랑은 얼마나 진지했는가? 내가 가벼운 웃음을 흘릴 만큼 타인의 사랑이 가벼운 것일까? 우리가 이렇게 타인의 사랑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나의 감정이 소중하다면, 타인의 감정도 존중 받아야하며, 나의 감정이 소중하다면, 그 감정에 대해서 스스로 진지하고 깊게 고민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모두가 이런 태도로 타인의 사랑이야기를 진지하게 대할 수 있게 만들 때 '마녀사냥'은 진실성을 담은 프로그램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글] 아띠에떠 해랑 artietor@mhns.co.kr

팝 칼럼 팀블로그 [제로]의 필자. 서울대에서 소비자정보유통을 연구하고 현재 '운동을 좋아하는 연기자 지망생의 여의도 입성기'를 새로이 쓰고 있다. 언제 또 다른 종목으로 여의도에 입성하게 될는지. 여전히 나의 미래가 궁금한 인간. 나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여자, 말 하는대로 이루어지는 여자'.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