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박정기] 소극장 혜화당에서 소설시장 페스티벌, 극단 물속에서 책읽기의 앙드레 지드 작, 유수미 각색 연출의 <좁은 문>을 관람했다.

연출을 한 유수미는 중앙대학교 의상학과 출신으로 극단 서울공장에서 연출 겸 배우로 활약하고, 현 극단 물속에서 책읽기 대표이다. 2006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젊은 연출가전 작품상, 연출상, 음악상 수상하고, 연출작으로는 <도시녀의 칠거지악>, <도화원 청춘기>,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목욕탕집 세 남자>, <프눌과의 전쟁>, <한여름 밤의 꿈처럼!>, <분장실 청소>, <너, 돈키호테> ,<좁은 문> 그 외 다수 작품을 연출한 미모의 여성연출가다.

앙드레 지드(Andre Gide)는 1869년 파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랑그도크 지방 출신으로 파리 법과대학 교수였고, 집안 대대로 내려온 신교도新敎徒였다. 어머니는 북프랑스 노르망디 태생이며 엄격한 구교도舊敎徒였다.

1880년, 아버지가 별세하자 앙드레 지드는 어머니, 백모伯母 클레르, 그리고 어머니의 가정교사였던 미스 샤클톤 등 세 여인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지드는 이 여인들에게서 상류 부르주아 사회의 아들로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자라기 위하여 귀족 사회의 신교도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청년 지드는 《좁은 문》의 주인공 제롬과 너무나 흡사하다. 가냘픈 몸매, 창백한 얼굴에 긴 머리카락을 내려뜨린, 지나치게 수줍어하는 내성적인 청년이었다.

이 청년은 두 살 위인 사촌누이 마들렌느 롱드에게 청순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사촌누이가 자기 어머니의 불의(不義)를 알고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지드는 그녀를 돕고 위로해주는 것만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이며 또 자기의 존재 이유가 거기에 있음을 느낀다.

1891년, 지드는 사촌누이에 대한 사랑을 중심으로 그가 고민하고 있던 영혼과 육체의 싸움, 형이상학적인 불안과 고뇌를 단편적인 일기 형식으로 쓴 《앙드레 왈테르의 수기》를 발표한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을 읽은 사촌누이 마들렌느로 부터 구혼을 거절당한다.

1895년, 어머니가 별세하자 지드는 다시 사촌누이에게 끈질기게 구혼해 마침내 결혼한다.

마들렌느는 지드의 생애에서 참으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한 여성이다. 《앙드레 왈테르의 수기》를 비롯하여 《배덕자》, 《좁은 문》 같은 작품 속에서도 그녀의 영상은 아름답게 부각되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은 행복하지 못했다. 말없는 가운데서도 희생적으로 지드를 사랑해오던 마들렌느였지만 둘은 화목하지 못했고 마침내 그 불화(不和)가 세상 사람들에게 표면화되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지드는 어느 젊은 처녀와 사랑에 빠져 그 사이에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부인 마들렌느는 끝내 처녀로 일생을 마쳤다. 지드의 이런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내와의 불화로 세상의 맹렬한 비판과 공격을 받게 되자 1926년에 지드는 아프리카 콩고로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에서부터 지드의 생활에는 새로운 경지가 펼쳐지게 된다. 콩고 원주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고 사회적 부정(不正)을 느낀 지드의 사회혁명 투사로서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드는 사회운동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부터 창작활동을 등한히 하여 단편적인 발표 외에는 거의 창작을 하지 않는다.

194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드는 1951년 2월 19일, 파리에서 82세로 세상을 떠난다.

《좁은 문》은 1909년에 《N. R. F》지誌에 발표하여 지드를 일약 유명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그리고 그 배경은 지드 자신의 청년시절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며, 알리사도 사촌누이 마들렌느를 모델로 한 것이다.

제롬과 알리사는 서로 청순한 사랑을 나누는 사촌지간이다. 그러나 알리사는 자기가 제롬보다 두 살이나 위이고, 또 동생 줄리엣이 제롬을 사랑한다는 것 때문에 제롬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리사가 제롬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억제하려고 애쓰는 것은 알리사의 엄격하고도 고상한 금욕주의禁慾主義에 기인한다.

알리사는 제롬을 사랑함으로써 얻는 행복보다는 더욱 차원 높은 천상天上의 지복至福을 얻고자 번민한다. 우리는 행복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신성함을 추구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인간적인 기쁨이 아닌 다른 행복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제롬에게 말한다.

그녀는 덕과 사랑이 함께 어울리는 영혼을 지닐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괴로워하며 결국 제롬에게로 향했던 사랑을 거두어 하나님에게 바친다.

주여! 제롬과 제가 둘이 함께 서로 의지하면서 당신에게로 나아가게 해주시옵소서. 그러나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길은, 주여, 좁은 길입니다 ― 둘이서 나란히 걸어갈 수 없는 좁은 길이옵니다.

끝없는 자기 싸움 끝에 알리사는 정신적인 피로로 어느 요양소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둔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마지막으로 외친다.

“나의 마음이 부인하는 이 덕은 과연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이 대목에서 지드는 인간적 행복을 희생하면서까지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기독교 사상에 회의를 느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앙드레 지드 적 인간주의와 프로테스탄트적인 이상주의(理想主義)와의 갈등을 보여준다.

지드는 이 작품에서 어떠한 결론을 명쾌히 내리기보다 관객에게 도덕적 편견이라는 문제만을 던져준다.

무대는 배경에 금빛 테를 두른 거울이 걸려있다. 중간에 휘장 막을 달아 장면변화에 따라 휘장 막을 열고 닫는다. 탁자와 의자 그리고 벤치를 배치하고 극 전개에 따라 이동시킨다. 건반악기 없이 연주하는 시늉을 하면 음향은 객석에 전달이 된다. 의상은 프랑스풍의 산뜻한 복고풍 의상을 착용하고 등장한다. 물론 검은색 상복 정장을 입고 등장하기도 한다. 모자도 복고풍으로 통이 높고 무늬가 들어가 있다. 음악도 극 분위기 상승에 적절한 음악이 깔린다. 소품으로 들고 나온 흰색과 붉은 색의 장미가 인상적이다.

관객은 극단 물속에서 책읽기의 연극 <좁은 문>을 관람하면서 엄숙할 만큼 신성한 사랑 앞에서 잠시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너무나 인간적인 기쁨에만 급급한 나머지 사랑을 모독하는 행위를 하지는 않았는가? 영혼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육체의 아픔을 견디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사랑이라고 감히 이름 붙일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사랑의 인플레 속에 살면서 진정한 사랑의 아픔과 존귀함과 신성함을 잃고 있지 않는가?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입에 올려서는 아니 된다. 사랑은 입술에 머물러 맴도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이 간직해놓고 평생을 아끼고 또 아껴야 하는 보석 같은 것이어야 한다.

최영열이 제롬, 배미선이 알리사, 이수연이 쥘리에르, 이승구가 아벨로 출연해 성격창출은 물론 감성전달에서부터 호연과 열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드라마터그 유원용, 조명디자인 김민재, 의상 오브제 우지숙 우지영(시래)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소설시장 페스티벌, 극단 물속에서 책읽기의 앙드레 지드 작, 유수미 각색 연출의 <좁은 문>을 기억에 길이 남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ART'ietor) 박정기.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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