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사람은 모두 '먹고' 산다. 그래서 '먹고 사는' 이야기를 중히 여긴다. 하지만 내가 사는 삶이 다른 이의 삶을 '먹고 사는' 삶이라면 어떨까. 2년 만에 돌아온 장우재 연출의 작품 '환도열차'가 22일부터 4월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연극 '환도열차'는 예술의전당에서 유망 연출가의 신작을 소개하는  'SAC CUBE X PREMIERE'를 통해 지난 2014년 초연됐다. 1953년 서울로 향하던 환도열차가 2014년 서울에 도착했다는 설정으로 배니싱 현상(※사물이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후 시간이 지나서 다시 나타나는 것)을 다루고 있다. 남편을 찾아 환도열차에 탔던 유일한 생존자 이지순, 이지순의 남편으로 90살의 노인이 된 한상해, 그리고 이 사건을 조사하는 미국 이민자 제이슨 양 세 명의 중심인물을 토대로 60년이 지나 변해버린 대한민국과 그 속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초연 당시 '동아연극상 희곡상', '공연과 이론 작품상'을 받은 작품으로 지난 남산예술센터 2016 시즌프로그램 기자간담회 당시 장우재 연출이 "초연보다는 재연이 작품의 완성"이라 밝혔던 만큼, 공연시간이 2시간 30분으로 줄어들고 여러 가지 내용이 변경돼 기대를 모은다. 장우재 연출을 비롯 이지순 역의 김정민 배우, 한상해 역의 윤상화 배우, 제이슨 역의 이주원 배우, 조사관 역의 김중기 배우가 함께 2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밝혔다.

   
 

2년 만의 재연이다.

ㄴ 장우재 연출: 보러와 주셔서 감사하다. 커튼콜을 준비 못 해서 죄송하다. 초연하고 2년동안 시간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고 여러가지 생각을 해서 갈무리를 해봤다. 많은 조언과 질타 바란다.

초연에 이어 2년이란 시간이 지나며 바뀐 부분에 대해 궁금하다.

ㄴ 장우재 연출: 작가로선 조금 바뀌었다 생각했는데 배우들은 아주 힘들어 했다. 지순, 제이슨, 한상해 등 캐릭터가 많이 변했다. 계기를 말하자면 초연에서 막연하게 과거에서 온 지순이 현재를 보며 놀라움과 환멸을 느꼈다. 성과중심의 사회에서 다른 많은 것이 빠진 것들을 보고 환멸이란 정서를 갖고 봤었는데 초연이 끝난 뒤 보니까 과연 그걸로만 현재를 다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잘먹고 잘살게 된 비약적 성과가 남았는데 그런 부분을 보고 얻은 게 뭐고 잃은 게 뭔가 찬찬히 바라보자고 재연을 준비했다.

   
 
   
 

ㄴ 김정민: 초연이나 재연이나 마찬가지로 힘든 것 같다. 재연 준비하며 의식적으로 배우로서 변화했다 생각했는데 그 부분은 작품을 보실 관객이 아실 부분인 것 같고 막상 오늘 공연을 해보니 환도열차라는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게 참 쉽지만은 않다는 걸 느꼈다.

ㄴ 윤상화: 초연을 할 때는 부담스럽달까 벅찬 게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순이 시간을 거슬러와서 만난 남편이 괴물이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괴물, 제왕적 이미지의 한상해. 그런 이미지를 대표하는 인물을 생각해서 초연 때 강조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이미지가 없어진 건 아닌데 이번에는 이 사람이 한상해인지 최양덕인지 잘 모르겠다는 부분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서 저는 그 사이에 있는 인물이 아닌가. 시간의 사이에 있는 인물. 그래서 이 사람을 '연기하는 처지'에서 주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어려웠다. 답을 아직 못 내려서 공연하면서 찾고 있다. 장우재 연출이 1인칭, 3인칭 이야기를 했다. "이 사람이 자기를 1인칭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부분. 그런 걸 생각하고 있다.

ㄴ 김중기: 초연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조사관1 역을 잘 살려주신 것 같다. 자신을 애국적이라 생각하는 확신이 있는 캐릭터 같다. 극중 인물중 가장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 삶에 밀착해 있는 인물이 아닐까. 대부분 사람은 자기들의 일이 옳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절반, 먹고 살아야 하니까 믿지 않고 그냥 하는 사람이 절반인 것 같다. 나머지 2, 3% 정도는 올곧게 나가는 거고. 제이슨과 폭력적 다듬이 있고 나서 잘리고 난 뒤 복직을 요청하는 장면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 그래서 2014년의 인물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고 연기를 했다.

ㄴ 이주원: 2년이 지나서 나이를 먹었다. 물리적인 변화다(웃음). 공연하면서 초연 때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을 아예 잊어먹고 살지 않아서 그런 부분을 생각해왔던 차에 이번 재공연할 때는 장우재 연출이 시키는 대로 잘했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성숙해진 것 같다.

   
 

이지순이자 정인숙, 최양덕이자 한상해, 한국인이지만 지금은 미국인이 된 제이슨 양. 주연들이 이름이 두 가지다. 무언가 의도된 것 같다.

ㄴ 장우재 연출: 다른 이름으로 산다는 모티브가 좋았다. 사실 제 본명이 장경수인데 여자 이름 같다고 중학교 때 장우제가 됐다. 또 대학교 연극반에선 장우제였고 만화동아리에서는 장경수였다. 그 이름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경험이 많았다. 그래서 두 이름 사이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의미부여를 하게 된 것 같다. 지금 한국을 다 꿰고 있다고 하기엔 부족하다고 보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될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제이슨 양의 캐릭터에 관해 설명해달라.

ㄴ 장우재 연출: 재연 준비하며 가장 많이 생각한 캐릭터다. 지금 세상에 대해 보편적 시각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어떤 분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학생들에게 예를 들어 홀로코스트에 관해 설명하면 머릿속에서 영화를 보듯이 시뮬레이션해본다고 한다. 전쟁의 참상이라고 하면 자료화면으로 보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말이 다가왔다. 그래서 제이슨이 자꾸 "너무 막장 드라마 아니야? 연출이 누구야?" 같은 식으로 일종의 거리 두기를 하면서 바라본다. 웃기도 하고 시니컬하게도 하면서. 그러나 그것을 들을수록 점점 더 감겨오고 마침내 그 안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어떻게 보자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는 역사의식에서 직접 발을 딛고 사는 역사의식으로 바뀌는 인물이 아닐까 했다.

   
 

눈먼 왕 이야기가 인상 깊게 나온다. 오이디푸스에 대해 부여한 뜻이 궁금하다.

ㄴ 장우재 연출: 고대 그리스 비극은 굉장히 훌륭한 자산이다. 단지 오이디푸스뿐 아니라 그리스 비극 전체가 그렇다. 그리스 비극도 그렇고 최초의 서사시라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보면 지금 우리가 보는 헐리웃의 영상, 이야기의 전형이라 할만한 게 있다. 스펙타클도 있지만 인간 존재의 심연에 대한 풍부한 것을 느낀 것 같다. 그래서 제 부족한 이야기를 있어 보이게 마감하려고 끌어들이지 않았나 싶다(웃음).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역사를 포착하는 순간이 될 때 갑자기 우리 시야를 확 넓혀서 인류 자체의 역사는 무엇일까 하고 한 번씩 환기를 해봤으면 어떨까 했다.

자유소극장 활용이 인상 깊다.

ㄴ 장우재 연출: 박상봉 무대 디자이너는 저랑 가장 많이 맞춰본 디자이너다. 우리는 '극장주의'라고 표현하는데 '극장이 무대다' 라고 생각한다. 그 후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래서 여기는 처음 들어오면 환도열차의 '격납고' 같다는 말을 했고 그에 맞춰 활용하게 됐다. 배우든 스탭이든 서로 영감을 업어갈 때 좋지 않나 한다.

   
 

초연에 이어 지순 역을 계속하는 김정민 배우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ㄴ 장우재 연출: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같이 작업하면 수없는 영감을 주는 배우다. 그리고 동시에 엄청나게 싸운다. 사람들 다 있는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싸우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햇빛샤워'의 광자와 '환도열차'의 지순은 상반된 역할인데 그 역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또 "이게 이런 거 아니에요?" 하고 나에게 되묻기도 하고. 좋은 작업자다. 연출로서 작업하기 가장 행복한 배우다. 제 최근의 작업이 좋다고 하면 그런 작업을 하면서 쌓여가는 과정을 만들어주는 좋은 배우들이 있다. 윤상화, 이주원 배우도 마찬가지다.

   
 

2014년에 몰두하는 이유가 있나. 다른 연도로 갈 생각도 있나.

ㄴ 장우재 연출: 재공을 준비하며 열차가 도착한 시간을 변화할까 하고 생각해보긴 했다. 2016년으로 할까 하고. 아니면 2000년 이전으로 할까. 근데 탁 든 생각이 2014년의 서울을 본 지순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그 질문이 해소되거나 변화할 만큼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생각했다. 아직은 2014년에 던진 질문에 커다란 자장 안에 있다 생각한다. 아예 시간이 지나서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면 그때 열차가 도착해야겠다.

마지막 장면이 '2014년 4월 16일'이다. 이유가 있나.

ㄴ 장우재 연출: 4월 16일은 새로 생겼다. 열차가 도착한 시기를 실제 공연 시기에 맞추다 보니까 당시 뉴스들을 대본에 넣었다. SBS의 '짝' 이야기도 그래서 배치했다. 어떤 선생님께 들었는데 연극을 할 때 꼭 신문 넣는 장면을 넣으라 하더라. 황당해서 웃었는데 곱씹어보니까 연극은 드라마 성이 강하다 보니 현재성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우린 드라마를 보고 있지만, 그때 당시엔 어떤 일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나를 관객과 같이 기억해보자고 하기 위해서 넣었다.

   
 

가장 좋았거나 소화하기 어려운 대사 하나씩 달라.

ㄴ 김중기: 그냥 감정적으로 좋았던 대사는 "똥 싸고 있네" 였다. 사실 제가 또 좋아하는 대사는 제이슨에게 하는 "너 다시 돌아오지 마. 여기 너 집 아니야" 란 거. 작품에서도 '여기, 저기, 진짜, 가짜' 이런게 섞여있다보니 이 대사도 좋아한다.

ㄴ 이주원: "보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뒤로 가고 있습니다" 라는 대사를 좋아한다. 그냥 좋다.

ㄴ 김정민: 좋은 게 너무 많은데 꼽으라면 서당 패랑 눈먼 왕에 대한 대사가 좋다. 제가 잘 소화해서 관객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ㄴ 윤상화: 이런 질문 받으면 그때 생각해보게 된다. 지순이 대산데 "밥 짓고… 빨래하고… 날 만나러 찾아오고" 이거 끝내주는 것 같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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