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행 배우가 하차한 악어컴퍼니의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최근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로 인해 다시금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제기되는 지금, 공연계에도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지난 11일 한엔터테인먼트 SNS에 하나의 사과문이 올라왔다.

"한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 이명행은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에서 중도하차 한것에 대해 사과의 글을 올립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글은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평소 '스윗'한 이미지와 빼어난 연기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그가 자신으로 인해 '성적 불쾌감'과 '고통'을 느꼈을 분들에게 사과한다는 내용의 이 사과문은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하다.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언론들의 자극적인 기사들만이 뉴스란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적어도 이번 사태에서만큼은 대중이 언론보다 더 냉정하고 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SNS,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번 일을 특정 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지 않은 채 정말로 그 배우의 행동에 대해 몰랐었는지 지난 작품들의 제작사, 관계자 등에게 공식적인 답변을 바라는 모양새다. 그리고 그것은 몹시 합당한 조치로 보인다. 폭로된 내용에 의하면 그가 몇 번의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계속해서 장소와 무대를 옮겨가며 배우 생활을 이어갈 수 있던 것은 결국 주변 관계자, 극단, 제작사 등에서의 암묵적인 동조가 있었던 것으로 봐도 무방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취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 그의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이번에만 일어나지 않으면 될 일 정도로 치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각은 어찌 보면 흔한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드는 이야기로 비춰질 수도 있겠으나, 이번 사건으로 미뤄볼 때 그것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 관계자들의 '성의식'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왜냐하면 공연계 인사 대부분은 세월호 사건, 촛불시위 등의 사회적 이슈에선 누구보다도 진보적인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 등으로 직접적인 고통을 받은 이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동시에 성문제에는 지나치게 관대해왔던 것 역시 사실이다.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던 사건을 일으킨 배우가 버젓이 대학로에서 공연을 올렸고, 사건을 일으켰던 배우가 이름을 바꾼 채 다시금 공연에 참여하려다 발각, 하차되는 경우도 있었다. 성문제를 일으킨 이들이 공연을 통해 복귀한 후 다시금 매체로 진출하는 건 이미 '정석'처럼 자리잡아 매번 관객들과 갈등을 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사건 역시 가해자가 된 배우도 어찌보면 '젠더권력'이란 거대한 괴물에게 잡아먹힌 피해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모든 아동학대 피해자가 아동학대 가해자가 되지 않듯, 그 역시 그의 행위는 자신이 직접 결정한 것이고 그렇기에  앞으로도 그간의 일에 대한 합당한 댓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어도 이러한 개개인의 반복된 문제를 일찍 멈춰줄 구조가 마련됐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전반적으로 남성의 성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이번 사건을 비롯해 이러한 문제들은 대부분 공연이 재미있는 이유인 '다수의 협업'이 불러온 문제기도 하다. 남성 위주 사회, 그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남성적으로 불리는 공연계는 다수가 협업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굴러가는 과정이 곧 작품의 참 재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일부의 약자들이 그 구르는 바퀴에 치이는 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성들, 피해자들에게만 '미투'를 요구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남성 관계자들의 건전한 성의식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 피해를 당한 이에게 '왜 용기 있게 나서지 못해?'라고 묻기 전에, 혹은 '이젠 말할 수 있다'고 하기 전에, 애초에 피해자를 만들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여성들 역시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고백과 연대에 응해야한다. 다른 분야에서도 남초 사회에 적응한 여성은 오히려 더욱 남성적 시각을 지닌 경우가 많다. '쟤는 왜 그랬을까.' 하고 피해자의 행동을 자신의 기준에서만 평가하지 말고 함께 손을 내밀 때다.

지금에야말로 우리 모두가 '미투'할 때다. 여성들의 용기에 조금의 힘이라도 보탤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공연계 전반에 펼쳐진 그릇된 성의식을 제거해야한다. 공연관계자, 제작사들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응해서 관객들의 의문점에 대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힘들게 쌓아 올린 공연이라는 아름다운 환상은 그저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기야 애초에 이렇게 쌓아올린 환상이라면 사라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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