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 문화 해설(解說)은 기사 특성상 '명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Q. 너도 나도 본 영화 '명량'이 사회적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재미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으시더라고요. 진중권 교수도 '명량'에 대해 자신의 트위터에 "졸작"이라고 남겼고요. 어떤 부분이 아쉬워서 그럴까요?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해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괴멸되자 이순신(최민식 분)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합니다. 구루시마(류승룡 분)가 선봉에 선 도도(김명곤 군)의 왜군은 명량을 거쳐 서해안을 거슬러 한양으로 진입하려 합니다. 압도적 병력차로 인해 조선 수군은 전투를 시작하기 전부터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단순한 서사 구조, 힘 있는 액션

김한민 감독의 '명량'은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이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기적적 대승을 거둔 명량 대첩을 영화화했습니다. 액션 블록버스터의 공식과도 같은 '맛보기 액션'조차 배제한 서두는 의외입니다. 칠천량 해전의 참패를 잠시라도 묘사해 왜군의 강력함과 이순신이 재기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액션을 통해 제시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내레이션으로 요약하는 수준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128분의 러닝 타임은 일도양단되어 있습니다. 초반 절반은 조선 수군과 왜군의 전투 준비를, 후반 절반은 양 군이 맞붙는 명량 해전에 집중합니다. 양 군이 각기 내부적으로 지닌 갈등을 묘사하기도 하지만 그 구도는 명쾌합니다. 대신 왜군의 압도적 병력과 조선 수군의 미미한 병력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이순신이 지닌 '12척'을 강조해 위기의식을 부채질합니다. 단순 무결한 서사 구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명량'의 사실상 전부인 해전 연출은 힘이 있습니다. 약 한 시간의 러닝 타임을 할애해 하루 낮이 꼬박 소요된 명량 해전의 전모를 아낌없는 물량 공세로 채웁니다. 판옥선의 일자진, 조선 총통의 대량 살상력, 그리고 판옥선으로 몸통박치기를 해 왜선을 박살내는 충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투 과정을 비장하고 처절하게 묘사합니다. 단 바다 밑에 쇠사슬을 장착해 왜선을 격파했다는 '철쇄 사용설'은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아 '명량'에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이순신 = 거북선'이지만 명량 해전에는 거북선이 참전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해 선박 장인 김 노인(유순웅 분)의 환상과 결말 이후 추가 장면을 통해 두 번에 걸쳐 거북선을 삽입한 연출은 영리합니다. 거북선의 활약을 보고 싶은 관객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결말 이후 견내량을 배경으로 안개를 뚫고 당당히 출현하는 거북선은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후속편에 대한 제작 기대를 부풀리게 합니다.

흥행하지 못하면 이상하다?

극장가의 최고 흥행 시즌인 여름 휴가철 및 방학에 맞춘 해양 블록버스터에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순신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명량'은 절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한 기획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독도와 종군위안부 문제 등 역사 인식에 대한 일본의 적반하장에서 비롯된 반일감정까지 감안하면 '명량'이 흥행하지 못하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입니다. 연기력을 논할 필요가 없으며 티켓 파워를 지녔지만 주로 비열한 악역을 맡아왔던 최민식의 성웅으로의 연기 변신은 또 다른 흥행 요소입니다.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의 대사는 많지 않습니다. 이순신이 과묵하면서도 속 깊게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는 제대로 된 리더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과 달리 죽음을 무릅쓰고 돌격하는 이순신의 솔선수범에서 이상적 리더십을 발견할 것입니다. 중장년층은 극중에서 자신들과 비슷한 세대인 이순신의 내적 갈등에 감정을 이입함과 동시에 단순명쾌한 서사 구조와 우직한 연출에 편안함을 느낄 것입니다. 양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세태 속에서 민과 군, 상과 하가 일치단결해 외적을 무찌른 대승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에 충분합니다. 개봉 6일 만에 최단 기간으로 500만 관객을 돌파한 '명량'은 '도둑들'이 지니고 있는 역대 최고 흥행 기록 1,302만을 돌파해 1,500만 관객 달성도 가능해 보입니다. 실제 명량 해전이 치러진 9월 16일을 전후해 흥행 대기록을 달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드러지는 약점들

하지만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김한민 감독의 전작 '활'에 이은 '명량' 또한 영화적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순신을 민본 사상과 더불어 내적 갈등을 지닌 인간적 인물로 묘사해 '딱딱한 영웅'으로 묘사하기를 거부하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사극에서 빼놓지 않는 인물됨의 현대적 해석이 도리어 진부하게 수용됩니다.

경상우수사 배설(김원해 분)이 이순신을 시해하려다 실패하고 도주하다 즉결 처분되었다는 '명량'의 묘사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배설이 명량 해전이 시작되기 전 탈영했지만 이순신이 전사한 노량 해전이 종료된 이후 체포되어 참수되었기 때문입니다. 책임감으로 충만했던 이순신에 대비되는 비겁자이자 왜군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하는 인물로 배설을 배치한 위한 의도로 해석될 수 있지만 '명량'을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영화로 수용할 관객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친 극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구루시마가 명량 해전을 통해 왜란에 처음 참전해 도도와 와키자카(조진웅 분)를 비롯한 동료 왜장들이 그를 전혀 몰랐던 것처럼 묘사되는 것도 의문을 남깁니다. 구루시마는 임진왜란은 물론 정유재란에 이르기까지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육전을 경험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항왜 준사 역의 일본인 배우 오타니 료헤이를 제외하면 도도, 와키자카, 구루시마 등 왜장들은 모두 한국인 배우들이 연기했는데 모두 발성과 발음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들의 발성은 전국시대 말기의 무장보다 현대 야쿠자에 가까우며 발음 또한 일본어 대사를 한국어 발음으로 옮겨놓고 읽은 것처럼 어색합니다. 소재 상 일본인 배우들의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면 한국인 배우들이 보다 확실하게 일본어를 소화하는 편이 영화에 대한 몰입을 높였을 것입니다.

전투 장면에서는 이순신이 탑승한 대장선이 백병전에 휘말려 상당수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전사자가 거의 없었기에 잘못된 연출입니다. 전투의 처절함을 강조하며 관객의 눈을 붙잡아두기 위한 의도로 보이지만 역사적 사실과의 큰 격차는 고개를 갸웃하게 합니다.

조선 수군의 승리로 전투가 종결된 뒤 노를 저으며 분투한 격군이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걸 후손들이 알아줄까'하는 대사를 운운하는 것은 심한 '오글거림'을 유발합니다. 영화의 주제의식과 교훈을 직접적으로 관객에 주입하려는 노골적 의도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사족입니다.

[글] 아띠에터 이용선 artietor@mhns.co.kr
'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운영자. 영화+야구+건담의 전문 필자로 활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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