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1964년 등단 이래 50년 동안 쉼 없이 시를 써오며 삶의 고뇌를 섬세한 여성적 감성으로 표현해온 신달자(71) 시인의 시집 '살 흐르다'가 출간됐다. 
 
우리 문학에서 여성 시의 영역을 개척하고 대표해 온 작가로 평가받는 신달자 시인 그는 2012년에는 문화예술 발전의 공을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삶에 처절한 고통이 함께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인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했고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 본인의 암 투병 속에서도 세 딸을 홀로 키우며 희망을 잃지 않고 고통을 잉크 삼아 담담히 종이 위로 흩뿌렸다.
 
어느덧 일흔을 넘긴 시인의 신작 시집 '살 흐르다'(민음사 펴냄)는 삶의 험난한 고비를 넘어온 여성의 따스함, 모성과 포용력이 푸근하면서도 저릿하게 풍겨나오는 나는 작품이다.
 
시인은 지옥 같은 삶 속에서 "너희들 다 안아 주다가 늙어 버리겠"지만 끝내 "고맙다"라고 말한다. 시인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실에서는 소리의 입자들이 내리고 있다/ 살 흐르는 소리가 살 살 내리고 있다/ 30년 된 나무 의자도 모서리가 닳았다/ 300년 된 옛 책장은 온몸이 으깨어져 있다/ 그 살들 한마디 말없이 사라져 갔다/ 살 살 솰 솰 그 소리에 손 흔들어 주지 못했다/ 소리의 고요로 고요의 소리로 흘러갔을 것이다/ 조금씩 실어 나르는 손이 있다/ 멀리 갔는가/ 사라지는 것들의 세계가 어느 흰빛 마을을 이루고 있을 것"('살 흐르다' 중에서)
 
"밤새 내리고 아침에 내리고 낮을 거쳐 저녁에 또 내리는 비/ 적막하다고 한마디 했더니 그래 살아 움직이는 장면을 계속 보여 주는구나/ 고맙다, 너희들 다 안아 주다가 늙어 버리겠다 몇 줄기는 연 창으로 들어와/ 반절 손을 적신다 손을 적시는데 등이 따스하다/ 죽 죽 죽 줄 줄 줄 비는 엄마 심부름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내리지 않고/ 춤추듯 노래하듯 긴 영화를 돌리고 있다 엄마 한잔할 때 부르던 가락 닮았다/ 큰 소리도 아니고 추적추적 혼잣말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비/ 이젠 됐다라고 말하려다 꿀꺽 삼킨다 저 움직이는 비바람이 뚝 그치는/ 그다음의 고요를 무엇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표현이 막막하다."('내 앞에 비 내리고' 전문)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서문에서 "밀도 높은 시의 순간이 허공에 한 장 그림이 걸리듯 문득 치솟아 오르곤 한다. 신달자 시인은 어느 길목에서나 그 시를 만난다"고 평했다. 그렇듯이 일상의 파편조차 그에게는 한편의 그림이 되고 만다.
 
"한 사내가 근질근질한 등을 숙이고 걸어간다/ 새벽까지 마신 소주가 아직 온몸에 절망을 풍기는/ 저 사내/ 욕을 퍼마시고 세상의 원망을 마시고/ 마누라와 자식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퍼마시다가/ 누구를 향해 화를 내는지 두리번거리다 다시 한잔/ 드디어 자신의 꿈도 씹지도 못한 채 꿀꺽 넘겨 버린/ 저 사내/ (중략)/ 빈 해장국 오지그릇을/ 부처인 듯 두 손 모으고 해장국 수행 끝을/ 희디흰 미소로 마무리하는데……"('선지 해장국')
 
시인은 오랜 세월 장독을 닦으며 아침을 맞듯이 담담히 말한다.
 
"여명의 어둠이 아주 조금 엷어지려는 바로 그 순간 저는 버릇처럼 창 앞에 섭니다. 그리고 새 아침을 바라봅니다. 그때마다 설렙니다. 어둠과 빛의 분량이 비슷한 그 순간의 어울림은 청색입니다. 거기 나의 안식이 있을 듯도 합니다." ('시인의 말')
 
   
 
 
문화뉴스 신일섭 기자 invuni1u@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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