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국립극단은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로 대한민국 대표 희극작가 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를 백성희장민호극장에 올린다.

국립극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는 근현대 희곡을 통해 근대를 조명해 현대사회와 현대인이 안고 있는 문제를 인과적으로 점검하는 기획으로, '국물 있사옵니다'는 오영진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김우진의 '이영녀', 유치진의 '토막土幕'에 이은 네 번째 작품이다.

 

   
 

기존 리얼리즘의 흐름에서 벗어나 서사극 기법을 도입하고, 다양한 연극 형식 실험을 통해 혁신을 꿈꾸던 이근삼의 대표작으로 독특한 화술과 빠른 템포를 특징으로 한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출세를 위해 자기를 파멸시키는 인간의 속물근성을 풍자한 희곡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집요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서충식의 연출로 현대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연극으로 재탄생했다"고 전했다.

그간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에서 우리 역사의 아픔을 주로 다뤘던 국립극단이 오랜만에 '코미디'를 선택해 관객에게 웃음을 전하기 위해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마냥 유쾌하기 보다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성찰 가능한 희극이다.

1959년 『사상계』에 단막 희곡 '원고지'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근삼은 사실주의적인 극이 중심을 이루던 1960년대에 서사적 극작술과 과감한 형식적 실험으로 한국 연극계의 변화를 주도했다. 미국에서 연극이론과 희곡창작을 공부하며, 서구 고전과 현대극을 섭렵한 그는 귀국 후 부조리연극과 서사극 등 국내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했다.

 

   
 

1983년 영특하고 모성애가 강한 '거위'를 뜻하는 동명의 단어를 제목으로 한 작품 '게사니'는 독일의 극작가이자 서사극의 창시자로 불리는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대표작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과 비교되기도 했다. 내용적 측면에 있어서도 신파나 비극이 주를 이루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꾸준히 희극을 쓰며, 창작자와 관객들이 희극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기를 바랐다.

창작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한 그는 『연극개론』, 『서양연극사』 등 다수의 연극 관련 서적을 집필해, 교육자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으며, 번역에도 관심을 보여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와 같은 부조리극이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번역하기도 했다.

 

   
 

'국물 있사옵니다'는 상식(常識)대로 살고자 했던 평범(平凡)한 샐러리맨 상범(常凡)의 세속적인 출세기를 통해 1960년대 후반 산업화 사회의 세태와 모순을 통렬하게 풍자했다. 1966년 발표됐으며, 같은 해 양광남의 연출로 민중극단에 의해 초연돼 '공감 가는 세태풍자'로 호평을 받았다.

또한 주인공 김상범이 자신의 역을 연기하면서 해설자 역할을 병행하는 새로운 시도로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면에서도 주목 받았다. 이번 공연은 일부 중첩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원작 희곡을 그대로 올릴 예정이다. 서충식 연출은 "현대적으로 희곡을 각색하면 더 날선 비극이 되겠지만, 현대 사회의 비애를 담고 있으면서도 낭만과 멋이 느껴지는 작품의 시대를 그대로 가져와 관객들로 하여금 50년의 격차를 느껴볼 수 있게 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출세 지향적이고, 누군가를 모함하고 협박해서 성공을 쟁취하는 한 인물의 모습에 배금주의와 출세주의가 여전히 만연한 지금의 우리 스스로를 투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난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기자간담회에서 서충식 연출은 "연극의 주제는 어둡고 절망적일 수 있지만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시간 동안은 관객들이 신나게 웃을 수 있도록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배우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연기를 선보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자질이 탁월한 그는 탄탄한 연기력을 겸비한 국립극단 시즌단원 및 희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과 만나 제대로 된 코미디를 선보인다.

2016년 국립극단 시즌단원으로 새롭게 합류한 박완규는 순진한 임시사원부터 새 상식에 눈을 뜬 뒤 맹렬한 기세로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김상범 역과 해설자 역할을 겸하며, 2시간 내내 무대를 지킨다. 상범의 여인들로 등장하는 박지아, 우정원, 황선화 세 배우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역할을 맡아 각각의 인물을 개성 있게 표현해내며, 설득력을 더한다.

 

   
 

'토막土幕'의 경선 역으로 애잔한 웃음을 불러일으켰던 김정호는 우연한 계기로 상범을 출세의 길로 이끄는 사장 역을 맡았고, '아버지와 아들'의 니꼴라이, '날 보러 와요'의 박형사 등 어설프지만 인간미 넘치는 역으로 사랑을 받았던 유연수가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상사 배영민 과장으로 분해 웃음을 선사한다.

이외에도 유순웅, 이선주 등 원숙미를 자랑하는 배우들이 참여해 노련한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연극 '겨울이야기' 등에서 늘 새로운 도전으로 무대 디자인의 지평을 넓혀 온 박동우는 작품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계단을 형상화한 무대로 상범의 성공을 향한 욕구를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극중 배경으로 흐르는 1960년대의 유쾌하고 건전한 대중가요는 출세가도를 달리면서 점점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주인공의 모습과 강한 대조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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