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어째서 창작집단 LAS가 이 시대 가장 주목받는 극단인지 보여준 작품이 아닐까.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고전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실은 두 여성의 사랑 이야기였다는 산뜻하며 도발적인 상상에서 출발한다. 창작집단 LAS는 셰익스피어의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서 현실과의 접점을 기막히게 찾아낸다.

 

줄리엣 캐퓰렛의 오빠 티볼트와 아버지에게서 현실의 가족 단위에서 요구되는 이상적인 여성성을 원하는 전형적인 남성우월주의적 행동이나 계산이 빠르고 현실적인 로미오 몬태규의 모습을 통해 '너를 위한다'는 말로 당사자를 이해하는 '척'하는 소수자의 가족, 주변인의 모습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줄리엣과 줄리엣은 때론 멍청하고 무모해보이기도 하고, 고독함과 외로움을 그대로 드러낸다. 결코 소수자거나 주인공이라고 해서 '특별'하지 않고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인물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극 중 비유들은 다소 노골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이상으로 노골적이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이거나 리얼한 묘사 없이도 현실의 폭력성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은 분명 '줄리엣과 줄리엣'이 원작인 '로미오와 줄리엣' 못지 않게 21세기의 새로운 '고전(Classic)'이란 단어에 걸맞는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입증한다.

 

또 성별만 바뀌었을 뿐 원작의 정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 역시 이 작품이 스스로 '우린 이렇게 달라요'라고 말하기보다 '우리도 이렇게 똑같아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원작의 주요한 소재를 차용해 좋은 아이디어를 덧댄 재기발랄한 패러디에 그치지 않고 원작의 중압감을 고스란히 견뎌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죽음은 삶보다 더 강한 의미를 전한다. 사회적으로 메인스트림의 위치에 놓인 신부 대신 승려가 두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맡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흰색으로 만들어진 미니멀리즘한 배경과 의상은 일견 순수함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마치 병원의 하얀 천장처럼 답답함을 주기도 한다. 줄리엣과 줄리엣을 갈라놓는 이들도 돕는 이들도 모두 새하얀 것 역시 그렇다. 모두의 새하얀 선의가 작동한다고 해서 그게 모든 이에게 선의로 다가올 수는 없는 것이다. 끝내 죽음 끝에 자유를 얻은 두 사람이 강한 원색의 옷을 입은 것을 보라. 누군가는 다른 색의 옷을 원하고 있는데도 새하얀 색깔에 갇혀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비유나 상징적인 해석의 의미 외에도 이 작품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주연을 맡은 한송희와 김희연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두 소녀를 연기한다. 이강우와 조용경, 조영규, 김하리도 고전적이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대사와 연기로 두 소녀의 사랑에 극적인 긴장감을 더한다. 극으로서 가져야할 긴장과 이완의 미덕도 승려를 맡은 장세환의 코믹한 연기가 빛을 발한다.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은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셰익스피어를 주제로 한 2018년의 산울림 고전극장 중 마지막 작품이다. 지난 4월 1일에 마무리한 이 작품은 관객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극단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고 싶다.

'성장한다'는 표현이 이미 다수의 좋은 작품을 남긴 극단에게 실례의 표현이 될 수도 있으나, 이전 작인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와의 연관성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표현도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한송희 배우의 대사가 '드립'으로도 해석되며 웃음을 주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들이 이 극단과 작품에 애정을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다.

 

자신들이 쌓아온 커리어 자체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들의 매력이 담긴 'LAS월드'가 앞으로 어떻게 확장될 것인지 기대를 해야 마땅하다. 정말 그렇다.

some@mhnew.com 사진=ⓒ창작집단 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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