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보도지침' 리뷰

   
 


[문화뉴스]
최근 연극 '보도지침'이 연극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공연 프로듀서가 스스로 밝힌 기획의도가 연극의 주 소비층인 2~30대 여성관객을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모 프로듀서는 자신의 발언이 경솔한 것이었음을 수차례의 사과문을 통해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화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수백 장의 티켓 취소 건이 발생하고, 예매율도 급격히 하락했다. 이성모 프로듀서가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해명 의사를 밝혔지만, 여전히 관객들의 '용서'를 이끌어내기에는 다소 어려워 보인다.  ▶ 이번 사태의 자세한 내용 & 이성모 프로듀서 단독 인터뷰가 궁금하다면?

 

   
 

이쯤에서 그들이 그토록 '진지하게'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그가 말하는 '가볍지 않은' 공연이란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모든 세대와 연령을 아우를 수 있는' 연극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고 있는지에 대해 호기심도 생겼다. 이런 맥락 속에서 지난 2일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연극 '보도지침'을 관람하게 됐다.

연극은 불편했다. 전후 사정을 모르고 연극만을 떼어놓고 본다면 이런 불편함이 덜해졌을까 하는 의문은 들지만, 현재의 맥락 속에 존재하고 있는 연극 '보도지침'은 다소 불편하다. 이들이 불편한 이유 몇 가지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이는 기자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일 수 있는 시선으로 구성됐음을 미리 밝혀둔다.

○ 권력의 '해체'가 아닌, 권력의 '이동'을 꿈꾸는가?

   
 

1980년대 군부독재 정권의 언론통제를 다룬다. '보도지침'이란 제 5공 시절 매일 아침 언론사들에게 은밀하게 시달됐던 가이드라인으로, 언론에 대한 정부의 통제방식 중 하나다. 연극에서는 "기사 작성 시 어떤 내용으로 어느 면 어느 위치에 몇 단으로 싣고 제목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세부사항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하며, 언론사들의 기사들이 일괄적인 내용과 표지로 도배되기도 했던 대한민국 언론계의 흑역사"로 표현된다.

연극은 통제에 견디다 못한 김주혁과 김정배 기자가 뜻을 같이 해 월간 '독백'에 이를 폭로한 사건을 계기로 겪게 된 재판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노골적인 탄압과 권력에 저항한다. 신체적, 심리적인 압박을 고루 받고 있음에도 굴하지 않는 김주혁, 김정배 기자는 '애국, 민주주의, 연극'을 끊임없이 외친다.

 

   
 

보도지침 고발 사건으로 사회주의자로 낙인찍으려는 정부에 대해 우리 또한 나라를 생각하는 '국민'이자, '애국자'라 반박하며,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덧붙여 이들의 건강한 문제의식은 대학시절 연극반 경험을 통해 키운 것으로서,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는 구호를 쉴 새 없이 외치곤 한다. 권력자들을 상대로 하는 이들은 약자이자, 소수자이다. 그들은 권력이라는 절대 중심을 해체하기 원하는 듯해 보인다.

하지만, 연극은 '권력의 해체'라는 메커니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서 정치적 '권력의 이동'을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연극을 보다 보면 정치라는 영역이 '남성 지식인' 혹은 '전문직 남성'들에 한정된 것으로까지 여겨진다. 무대에는 여성 배우가 부수적인 인물로 단 한 명만이 등장하고, 급진적으로 보이던 연극동아리 여자 선배 역시 모든 희망이나 바람을 남성 후배 혹은 선배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실천하는 여성, 적극적 사유를 통해 행동으로 옮긴 여성에 대한 포커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실화를 배경으로 한 연극이기 때문에, 역사가 혹은 개인의 기억 자체가 여성을 배제한 식으로 존재해왔다면 그에 따라가는 게 어렵지 않은 수순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모든 세대와 연령을 아우른다'는 말에는 모든 성별까지도 아우른다는 말을 포함할 수가 없다. 어쩌면 그동안 소외됐던 중장년층 남성관객에게 포커스를 올인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것은 모든 권력의 해체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집중된 권력을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원하는 양상이 아닐까?

○ 그들의 '독백'은 진실한가?

   
 

대사량이 엄청나다. 약 120분간의 러닝타임을 배우들의 대사로 채우기 때문에 한 배우가 내뱉는 대사의 양은 엄청나다. 법정드라마로 구성하고 있기에 격렬하거나 화려한 행동보다는 강렬하고 뜨거운 대사들이 극의 전반을 차지한다. 말의 힘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분해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말의 힘'이 진정 드러나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연극은 현대연극이 지향하는 행동보다는 대사를 통해 이뤄져 있고, 고전 연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법정 장면을 연극의 주플롯으로 삼아 몇 가지의 과거 에피소드를 삽입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배우들은 등장인물 간의 대화일 지라도 자신의 대사를 객석을 향해 연설처럼 내뱉곤 한다. 연극은 자신의 목소리를 관객들에게 외치는 '연극화된 연설'로 보이기까지 한다.

 

   
 

극중 김정배 기자는 월간 '독백'의 편집자로 등장한다. 그는 시종일관 독백을 강조하는 인물이다. 독백에는 사람의 진심이 담겨있다 말하며, 진실한 독백을 내뱉기를 주장한다. 연극에서 묘사되는 보도지침은 구체적이고도 강압적인 언론통제 지침으로써, 언론인들이 읊조리는 독백마저도 삼켜버리고자 한다.

극중에는 김정배가 왜 독백을 중요시하게 됐는지에 대한 일화가 소개되며 대학시절 연극반 이야기가 나온다. 독백이란 무엇인지 후배들에게 알려주고자 한껏 폼 잡고 햄릿의 독백 대사를 외치는 선배를 따라, 후배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독백에 동참하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의 독백에 너도 참여해'라는 식의 독백에 대한 강조와 강요는 진실한 독백을 죽이는 시공성으로 작용한다. 선배가 마련한 독백하기에 동참한 후배들이 과연 동기들과 선배가 청자로 설정된 그곳에서 진실한 자신의 고백을 펼쳐놓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진심이 담긴 독백이 나오기 위해서는 독백하는 주체가 처한 상황과 그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의 의지를 고무시키기 위해 독백의 시간과 장소를 마련해준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독백의 청자가 결정되는 순간, 독백은 대화 혹은 연설이 된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낱낱의 개인이 품고 있는 진심을 고백하는 '독백'이 아니라, 독재와 권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감히 내뱉을 수 있는 '연설'이 아닐까?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극 '보도지침'은 하기 어려운 말을, 하기 어려운 시공간 속에서 꿋꿋하게 해내고 있는 용기 있는 연극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연극은 1980년대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꾸며졌지만 그들의 메시지는 결코 1980년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을 본인들이 직접 나서서한다는 것은 충분히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다만 몇 가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든 맥락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관객들은 분개하며 '보이콧' 사태까지 보이고 있다. 이번 사태를 빌어 그동안 자만한 풍조를 보여 온 공연계 일부가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지만, 실(失)은 비판하는 반면, 공(功)은 인정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바란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벨라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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