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가정의 달에 어울리는 작품은 아니지만, 주목할 뮤지컬임은 틀림 없다.

오는 6월 3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구.삼성전자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1965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꾸준히 사랑 받아온 작품이자 국내에서도 2005년 국립극장에서 '돈키호테'로 첫 선을 보인 뒤 지속적인 공연을 통해 관객을 사로잡아 온 작품이다.

스페인의 대문호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맨 오브 라만차'는 작가 세르반테스가 감옥에서 자신의 희곡 '돈키호테'를 죄수들과 함께 공연하는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된다. 자신이 돈키호테라는 기사라고 착각하는 괴짜노인 알론조 키하나는 시종인 산초와 모험을 찾아 다니며 우스꽝스런 기행을 벌이지만 특유의 진실함과 용기로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번 시즌에는 홍광호와 오만석이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역을 맡았다. 산초 역은 이훈진과 김호영이, 알돈자 역은 윤공주와 최수진이 맡았고 도지사 역은 문종원과 김대종이 맡았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감동적이고 열정적인 작품이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아름다운 무대, 신선한 음악 등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다.

 

주인공 세르반테스 역은 많은 남자배우들이 선망하는 역할이다. 극중극으로 극 속에서 작가 세르반테스와 함께 늙은 기사(지망생) 돈키호테를 연기해야 하는데 작은 톤의 차이나 움직임의 변화를 통해 극 속에서 '연기하고 있다'는 면을 관객에게 보여줘야 하는 어려움이나, 마지막 커튼콜에서 느껴지는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선보이기 위해서는 대본에 적힌 것 이상으로 배우 자신의 내공이 쌓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극의 긴장을 조이고 푸는 산초 역할도 그렇고, 지하감옥의 분위기와 극중극의 배역들을 교차해서 보여야 하는 조연, 앙상블 역시 쉽지 않기에 매력이 넘친다.

무대 역시 그렇다. 관객들 누구라도 서곡 이후 펼쳐지는 무대에 눈이 동그렇게 떠질 것이다. 지하감옥에 잠시 찾아드는 햇볕이나 돈키호테의 모험과 함께하는 해바라기 등 세심하게 만들어진 실물 소품과 무대는 관객에게 돈키호테의 모험을 더욱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음악은 뮤지컬 '맨오브라만차'가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여타의 대극장 작품들과 가장 차별화를 이루는 요소다. 스페인 지방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일까. 현악기 위주로 구성된 멜로디는 웅장하고 강렬한 사운드로 이뤄지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조금 더 감정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또 이런 요소들이 하나로 모아져 21세기 들어 가장 많이 이야기되지만, 실제로 그것을 향해가는 사람은 보기 드문 '꿈'이라는 주제로 귀결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돈키호테의 마지막 시퀀스는 그전까지 특별히 슬픈 감정을 자극하지 않았는데도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정도로 폭발력이 있다. 엔딩에서 돈키호테가 아닌 세르반테스를 향해 건네는 이야기들이 주제를 정리해서 설명하는 '지나친 친절함'일 수도 있는 것은 아쉽지만, 그만큼 21세기가 미친 세상이기에 이런 친절함도 나쁘지만은 않다.

다만 제목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딱 하나 이야기하자면 약 50년 전의 작품이기 때문일지는 모르겠으나 여성 인물의 활용법이 노골적으로 섹슈얼한 이미지를 무대 위에 전시하고,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다뤄진다는 점은 작품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면이다. 일부 구체적 장면을 수정했다곤 하지만 여전히 알돈자가 노새끌이들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에서는 입을 틀어막고 손을 묶는 등 잔혹한 폭력성을 전시하고 있으며 이후 돈키호테와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의 연기와의 합을 고려하면 오히려 개연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변화를 인지하고 장면을 수정한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다. 그렇기에 이후의 장면은 더욱 아쉽다.

 

다리를 제대로 오므리지 못한 채 울부짖는 알돈자의 모습을 연기하는 게 과연 대본에서 어떤 중요성이 있을까. 그녀가 극 말미에서 스스로를 둘시네아라고 말하며 돈키호테에게 감화되는 결과를 떠올려 볼 때 굳이 그러한 장면이 필요할지를 생각해보면 더욱 명백하다. 이미 복수의 매체가 지적한 '화냥년'이란 대사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작품에서도 비슷한 처지의 인물은 제법 나오지만, 대부분 자신의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노래를 택했었고, 그것이 '노래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뮤지컬의 강점이 아닌가. 심지어 역사상 손꼽힐 정도로 훌륭한 넘버를 지닌 작품이기에 더욱 아쉽다. 그 하나만 빼고 다 마음에 드는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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