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박정기(한국창작희극워크숍대표)] 성북동 여행자극장에서 미디어예술문화연구소와 창작집단 푸른 수염 공동제작, 안정민 작 연출의 <두 번째 목욕>을 관람했다.

안정민 연출은 연출, 배우, 작가 등 전방위로 활동한다. 서울대학교에서 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영국 왕립 스피치&드라마 중앙학교에서 연기·연출 통합 석사학위를 받았다. "연극은 구체적인 사건을 관통하여 인간 본질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메타포를 좋아한다. <구본장 벼룩아씨>, <이토록 사사로운> <제2의 창세기> <달은 아니다> <빨간 미미>등을 발표 공연했다.

<두 번째 목욕>은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인물의 이야기다.

인혁당 사건은 1964년 중앙정보부(중정)가, 북한의 지령을 받아 인민혁명당이라는 반정부 조직을 결성했다며 평화통일론을 주장한 혁신계 인사 수십 명을 잡아들이며 시작됐다. 중정은 40여명을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지만,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은 "증거가 불충분해 도저히 기소할 수 없다"며 버텼다.

검찰 수뇌부는 당직검사로 하여금 공소장에 서명하게 해 26명을 억지로 기소했고, 담당 검사들은 사표를 던졌다. 검찰이 이후 14명의 공소를 취소하고 1심에서는 도씨 등 2명에게만 유죄가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는 6명이 징역 1~3년을 선고받았고 이는 이듬해 9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중앙정보부는 유신헌법이 선포된 뒤인 1974년 1차 인혁당 사건 연루자들이 북한 지령을 받아 인혁당을 재건하고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을 조종해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며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발표한다.

20여명이 재판에 넘겨졌고, 서도원(徐道源, 53세 전 대구매일신문 기자), 김용원(金鏞元 41세, 경기여고 교사) 이수병(李銖秉 40세, 일어학원 강사) 우홍선(禹洪善 46세 한국골든스템프사 상무) 송상진宋相振 48세 양봉업) 여정남(呂正男 32세 전 경북대 학생회장) 하재완(河在琓 44세 건축업) 도예종(都禮鍾 52세 삼화토건 회장) 등 8명은 대법원 확정 판결 다음날 사형 당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유족들은 재심을 청구해 2007~2008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1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 유족들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 등에 근거해 2011년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2013년 도씨 등이 불법 감금돼 고문을 받았고, 범죄의 증명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두 번째 목욕>에서는 사형당한 8인중 당시 양봉업을 하던 송상진(宋相振 48세)과 연관된 이야기다.

무대는 배경 좌우에 문이 만들어지고 천정에서 바닥까지 여기저기 세워진 철제 봉이 보인다. 무대중앙에는 다각의 원형으로 된 마루가 놓이고, 이 원형의 마루는 대구지역의 한 산언덕으로 설정이 되고 양봉을 하는 장소다. 마루 오른 쪽으로 바닥에 롤러가 달린 욕조가 있고 그 안에는 물이 담겨져 있어, 욕조에 들어간 아들이 아버지가 물고문 당하던 장면을 재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무속제전인 제석 굿에서 창송 되고 있는 당금아씨가 등장해 아들에게 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되살리게 해주고, 축음기를 배치해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1875~1937)이 1928년에 작곡한 볼레로(Bolero)의 음률로 극적분위기를 상승시키기도 한다. 배경에는 영상을 투사해 형무소건물 내부와 주변을 둘러보는 송상진의 아들 송철원의 모습이 투사되고 그 부인도 꽃을 들고 등장을 한다. 물고문을 하는 장면은 실제와 방불하도록 연출된다.

양봉을 하던 아버지가 인혁당 사견에 연루되었다 하여 사형을 당하자 아들은 주변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냉대 속에 아버지가 하던 양봉을 하고 양봉 통에 가지런히 담겨져 있는 벌집을 꺼내 꿀을 채취하는 정경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욕조에 몸을 담그고 과거 아버지가 당했던 물고문을 자신이 당하는 것처럼 재현시킨다. 발을 절룩이는 인물이 담당경찰인 것으로 설정이 되고, 후반부에 아들이 그 형사를 찾아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들지만 아들로서는 역부족임이 드러난다.

현재는 박물관자리가 된 옛 교도소를 내부와 주변을 둘러보며 40년이 지난 세월과 역사 속에서 예나 지금이나 정치가들에 의해 부당 무고하게 죽어간 인물을 되새겨보게끔 하는 연극이다.

곽수정, 김덕환, 이관목이 어머니, 아들, 형사로 등장해 작중인물에 부합하는 성격설정과 동작은 물론 감정표현과 욕조고문장면 연기로 관객을 직접 체험을 시키듯 연극을 이끌어가고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드라머터지 김주연, 무대 이윤수, 영상 송용인, 조명 김종석, 작곡 한받, 의상 고유진, 기획 최정인, 그래픽 이은재, 영상오퍼 박지원, 음향오퍼 서예원, 조명오퍼 류한일 등 스텝진의 기량이 드러나, 미디어예술문화연구소와 창작집단 푸른 수염 공동제작, 안정민 작 연출의 <두 번째 목욕>을 작가의 창의력과 연출력, 그리고 출연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기억에 길이 남을 한편의 독특한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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