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김도연] 음악, 영상, 미술, 텍스트 등, 각양각색의 예술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 우리가 '고급 취향'이라는 표현을 접하게 되는 빈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이것은 향유하는 콘텐츠의 희소가치를 전제하고 있는 표현이다. 그리고 취향이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자주 접하면서 축적된 경험의 집합이기 때문에 (세종대왕의 취향이 재즈였을 리가 없는 것처럼) '고급 취향'이라는 것은 곧 '희소가치 높은 콘텐츠를 자주 접했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렇다면 그 희소가치 높은 콘텐츠를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돈과 시간이다. 결국 고급 취향을 내세우는 행위는 이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고자 하는 의도인 셈이다.

물론 취향 말고 예술 그 자체로 보자면 '고급 예술'을 '고급'으로 만든 요인들은 실제로 있다.

매우 훌륭한 만듦새를 가지고 있든지, 감동적인 스토리나 역사를 가지고 있든지 혹은 대단한 내공과 철학을 안고 있는 작품들이 대개 고급 예술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맞는 안목을 갖춰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콘텐츠에 대한 경험뿐 아니라 상당 수준의 공부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변기 하나 내놓고 '샘'이라 이름 붙인 작품에서 감동을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가 필요하던가. 예술도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소위 '대중 예술'이라 해도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지극한 상업성 속에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클럽류 음악이라 해도 어떤 이들은 여기에 사용되는 음원들이 어떤 도구에서 발생하여 어떤 경로로 다듬어졌는지, 후반작업 단계에서 어떤 이펙트와 다이내믹스를 활용하여 리듬감과 댐핑감을 얻었는지를 발견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물론 클래식이나 정통 재즈처럼 흔히 고급 예술이라 일컬어지는 장르만큼 체계적이진 않더라도 이러한 대중적 장르도 이것을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단지 그것이 고급으로 취급받지 못할 뿐.

'고급 예술'은 있을지 몰라도 '고급 취향'은 없다. 최고급 호텔 요리를 즐겨 먹는 사람이 동네 장터 국밥 좋아하는 사람보다 우월한 게 아닌 것처럼 취향은 마치 입맛과도 같아서 그 우열을 논할 대상이 아니다.

진짜 '고급 취향'은 자신의 신분 과시를 위해 특정 예술 장르에 대한 선호도를 과장하며 타 장르를 폄하하는 천민자본주의적 행태가 아니라 그 어떤 수준과 형태의 예술 장르라 하더라도 그에 맞는 감상 포인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나름의 가치와 감동을 발견할 줄 아는 통찰력과 포용력을 뜻한다.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ART'ietor) 김도연. 콘텐츠 컨설팅 기업 '콘텐츠민주주의' 대표. 기성 방송국과 뉴미디어를 모두 경험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누구나 콘텐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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