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신한나] 

취향으로 정해지는 신분

SNS로 자기 어필을 하는 시대다. 이력서 내용에 포함되는 학벌, 일한 분야 및 거주지를 넘어 셀피, 사상, 취향, 감성까지도 공유하는 것이 일상화된다.

이렇게 공유된 업로드는 자신만을 위한 아카이브(Archive)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혹은 연결된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고 판단된다는 점을 인지하며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한다. 이러한 시선에 개의치 않을 수는 없다. 주로 보는 영화가 어떤 장르인지 플레이리스트에 정리된 음악이 어떤지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흘러가는 상황이니 말이다.

핏줄이 신분을 가르던 머나먼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문화의 취향이 신분을 나눈다.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구별짓기>에서 프랑스 대중을 상대로 한 조사를 통해 계급은 경제적 자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계급을 다시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가 문화를 통한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문화를 통한 실천은 시간적인 투자를 필요로 하고 취향의 신분을 확보한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LIKE'와 'SHARE'는 취향을 가장 직관적으로 판단하기 쉬운 도구이다.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판단하려는 욕망이 타당한 이 가상 공간에서 자신의 취향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자연스럽다.

취향에 대한 간단한 개요를 넘어 더 깊숙하고 확고한 정체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취향을 '사회적으로 자신보다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분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징' 이라고 하는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처럼 말이다.

문화에 어떠한 식성을 가졌나요?

이렇게 자신을 구분 지으면서 확고한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는 것이 문화적 허영심으로 보여지는가? 탐닉하면서 깊이를 표현하려는 사람, 문화적 취향을 일상적인 소비생활로 표현하고 드러내는 사람 혹은 그들을 판단하며 또 다른 구별짓기를 시도하는 사람이 생기며 자신을 드러내는 분류는 점차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 전쟁에서 사람들은 어떠한 식으로 살아남을까.

사회학자 리처드 피터슨(Richard L. Peterson)은 1992년에 이미 그 당시 문화 지도자들에게 "잡식성 omnivorousness"이라는 비유를 썼다. 그는 "최근에는 사람들이 속물이라는 꼬리표를 피하고자 문화 소비에 있어 잡식성 동물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1가지 장르에 파고들지 않고 어떤 때는 이것을 하고 어떨 때는 저것을 하는 잡식성의 취향을 의미한다.

엘리트 집단의 견해가 고상한 체 우아한 분야만을 탐닉하는 것이 아니라 대량으로 공급되는 대중문화부터 순수예술까지 잡식하듯 닥치는 대로 두루 소비하는 행태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트로트부터 클래식까지 즐기고 오페라와 팝송을 함께 들으며 다큐멘터리와 유행하는 티비프로그램까지 모두 섭렵한다. 자신의 식견이 있더라도 모든 문화를 경험하고 이해해야 더욱 멋진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이러한 태도가 주류와 비주류를 따르는 행태에도 보인다. 어려운 예술영화를 선호하며 촬영기법과 감독의 사상을 논하는 사람들도 마블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본다. 순수예술 전시를 즐기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대중 전시를 보며 경험에 대한 우월성을 챙긴다.

 

장르 내가 아닌 타 장르를 대할 때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미술전시회, 무용, 연극, 뮤지컬 등 문화 분류 중 한가지 장르에 대해 편식을 하는 마니아층도 있지만 모든 문화 예술 분야를 두루두루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최근 연구들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풍족할수록 여러 문화 장르를 잡식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기본으로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은 '정보의 양'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진다. 만족도는 추가적인 소비로 이어지는 핵심적인 변수이다. 이를 토대로 보았을 때 문화의 넓이에 있어서 부익부 빈익빈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 취향과 잡식

깊이든 넓이든 개개인의 파이를 가지고 문화 정체성을 정립하는 것은 문화를 풍요롭게 한다. 자신의 확고한 취향을 선택하여 '구별짓는 것'과 다양한 문화를 섭렵하는 '문화 잡식성'을 둘로 나누어 어떠한 것이 바람직한지 우월을 가리기는 힘들다. 또한, 이 둘이 병행된다고 했을 때 어떠한 것이 먼저 선행되는 지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보인다는 것에 대해 쉽고 자연스러워지면서 나를 정체성 있게 정립하고 그러한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는 '문화 잡식성'이라는 면모가 중요시되는 시대다. 다음 문화생활을 즐기는 여가시간에는 나의 취향의 선을 넘어 새로운 다양한 문화를 섭취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문화 예술에서는 약간의 과식을 해도 좋을 것 같다.

 

[글] 문화뉴스 x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대학원과정 신한나 연구원. 양사는 이 협업을 통해 문화예술경영과 관련해 다양한 연구영역과 주제들을 심화 연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체계적인 학문으로 정립하는 데 힘쓰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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