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소외 문제를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야기

[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박정기(한국창작희극워크숍대표)]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1928~2016)는 그에게는 ‘절망세대의 극작가’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30여 편 가운데 대표작으로는 <동물원 이야기(1959)>, <아메리칸 드림(1960)>,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2)>, <키 큰 세 여자(1990)> <염소 혹은 실비아(2002)> 등이 있으며 3번의 퓰리처상과 2번의 토니상을 수상했다.

1928년 태어난 그는 출생 직후 친부모에게 버림받았지만 2주 뒤 뉴욕의 극장 재벌인 올비 가문에 입양됐다. 차가운 성격의 양부모 밑에서 부유하지만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유모와 양외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예술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등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반항심이 많아 제도권 교육과 번번이 충돌을 일으켰다. 결국 대학에서 퇴학당한 후 작가가 되려는 꿈을 반대한 양부모와도 결별했다.

그는 1950년대 뉴욕에서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온갖 장르의 글을 습작했다. 특히 동성애자였던 그는 애인인 작곡가 윌리엄 플래내건(1926~1969)과 함께 살며 뉴욕의 예술가들과 빈번하게 교류하게 됐다. 당시 <우리 읍내> 등으로 유명한 선배 극작가 손튼 와일더(Thornton Wilder)가 그에게 본격적으로 희곡을 쓰라고 권유했다.

30세이던 1958년 발표한 첫 단만극 <동물원 이야기>가 독일 베를린(1959)과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1960)에서 공연돼 호평 받으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공원에서 처음 만난 두 남자가 대화 끝에 폭력을 휘두르다 급기야 상대를 살해하게 된다는 충격적인 결말은 현대사회의 소외 문제를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어서 교통사고로 죽은 흑인 블루스 가수 배시 스미스(Bassie Smith)>를 다룬 <배시 스미스의 죽음(1960)>, 미국인의 생활을 통렬하게 풍자한 <미국의 꿈> 역시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명성을 확고부동하게 해준 것은 1962년 그의 첫 장막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다. 20세기 중반 최고의 연극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교수 부부의 싸움을 통해 현대 미국 중년 부부 생활의 허위와 진실을 파헤쳤다. 이듬해 무대에 올라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외설스러운 어휘와 내용이 많고 미국의 건전한 부부상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비록 퓰리처상은 받지 못했지만 토니상을 받으며 장기 공연했고, 1966년 영화화돼 13개 부문 노미네이트돼 5개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대성공으로 부유해진 올비는 1967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예술가 지원에 나섰다. 자신의 연인이자 멘토였던 윌리엄 플래내건을 기리는 한편 뉴욕 인근 몬탁에 예술가 레지던스 시설을 지어 문학과 시각미술 분야의 아티스트들에게 제공했다.

이후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그는 <미묘한 균형> <바다풍경> <키 큰 세 여자>로 퓰리처상을 3회 수상할 만큼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로 활약했다. 한국에서도 공연된 <키 큰 세 여자>는 말년의 대표작이다. 자신과 양어머니의 오랜 세월에 걸친 불행한 관계를 바탕으로 쓴 자전적 희곡이다. 1965년 심근경색을 겪은 양어머니의 연락으로 시작된 모자간 왕래는 1989년 양어머니가 세상을 뜰 때까지 계속된다. <키 큰 세 여자>는 고집 센 노인을 묘사하고 있지만 모자간 갈등보다는 노년의 인간적인 고뇌를 따뜻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만 이 작품이 모자간에 용서와 화해를 보여주지만 그는 양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양어머니가 그의 동성애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연출가 오순한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기티스 국립공연예술아카데미 연출과에서 예술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양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경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창작단편 13(독립예술제)>, <데포르마시옹-햄릿>, <둘 몸짓(변방연극제)> 외에 다수의 작품을 연출했다. 2014년 KBS 일일 아침드라마 <순금의 땅>에 배우 오디션과 아역 배우 연기 지도로 참여하면서 TV 드라마 연기에 대한 이론과 경험을 쌓고 <문장 쪼개기>를 저술했다. 지은 책으로는 <열린 메소드의 길>, <칼을 쥔 노배우>(공저), <시학 배우에 관한 역설>, <오디션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다. 오순한은 KBS 드라마 <구미호>, <순금의 땅> 캐스팅 디렉터로 남녀 주인공과 신인 조연, 아역 배우들의 연기 화술을 지도했고 연극연출 작품으로는 셰익스피어 <겨울이야기>, 김태수 <서울은 탱고로 흐른다>, 안톤 체홉의 <갈매기> 등을 연출한 미녀연출가다.

<동물원 이야기>는 한적한 어느 여름날 일요일 오후 도시 변두리의 한 공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Peter는 늘 그렇듯 자신의 벤치에서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이 때 예기치 못하게 Jerry가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Jerry는 대화를 별로 원하지 않는 peter의 태도에도 아랑 곳 하지 않고 자신의 얘기를 풀어 놓는다. Peter는 예의상 들어주고, Jerry의 장단에 맞춰준다.

Jerry는 자신이 사는 하숙집, 방 안의 물건, 하숙집 건물의 주변 이웃들 에대해 이야기 한다. 그 중 주인집 아주머니가 키우는 개와 있었던 일을 상세히 풀어 설명하며 자신이 왜 동물원을 가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동물원에서 지금 Peter와 함께 있는 Central Park에 이르게 된 이야기까지 풀어놓지만, Peter는 여전히 시큰둥한 태도이다. 언어로의 의사소통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Jerry는 Peter에게 신체적인 접촉을 시도한다. 이에 크나큰 불쾌감을 느낀 Peter는 Jerry에게 직접적으로 화를 내고, Jerry는 벤치 따위를 지키려는 Peter를 조롱한다. 둘은 몸싸움으로 치닫는다. 이 때 Jerry가 칼을 꺼내들고, 이 칼은 Peter가 쥐게 된다. Jerry는 스스로 몸을 던지고, 치명타를 입으며 죽어간다. Peter는 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도망간다.

 

무대는 건물의 벽처럼 보이는 배경 좌우에 흑색커튼을 내린 문이 있고, 하수 쪽 벽에도 역시 같은 문이 있다. 바닥은 세 자 일곱 자짜리 나무로 된 단 20여개를 가로 세로로 이어 깔아 무대로 사용하고, 그 위에 두 개의 벤치형태의 조형물이 나란히 놓여있다.

이 극은 Jerry의 등장에서 시작해 Jerry죽음으로 끝이 난다. Jerry는 인간성 소외의 극단적인 예시를 보여주는 인물로 설정이 된다. 노숙자를 연상시키는 풍모도 그렇지만 그는 관객으로 하여금 극도로 소외되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이토록 소외된 인간이 많다는 사실을 은연중 상기시킨다. Jerry는 대다수의 사람과 똑같은 Peter에게 혼신의 열정을 다해 변화를 일으켜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자 목숨을 걸고 Peter를 동요시키려 들고 결국 Jerry는 자신의 목숨까지 던지게 된다. 드디어 그의 죽음은 Peter에게 인생의 발화점이 되었고, 이제 Peter는 더 이상 식물인간(vegetable)처럼 수동적인 인간으로 살아가지 않을 것임을 관객은 느끼게 되면서 연극은 끝이 난다.

황원규가 Jerry로 출연해 혼신의 열정으로 연기한다. 김태형이 Peter로 출연해 대부분의 중산층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어 뵈는 남성역을 호연으로 창출해 보이며, 극단 오떼아뜨르의 에드워드 올비 원작, 오순한 번역 연출의 <동물원 이야기(The Zoo Story)>를 관객의 기억에 남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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