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위로를 건네는 에세이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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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문화공감] 그런 날도 있다. 정말 별거 아닌 말에 한 방 맞고 정신을 못 차리겠는 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주눅 들어 온종일 서러운 날. 내 우울이 눈에 보이는 형태였다면 아마도 쑥쑥 자라나 저기 저 하수구 밑바닥을 뚫고 내핵까지 도달했을 것이 분명한 날. 누가 ‘툭’ 건들기만 해도 콸콸콸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오늘.

유난히 마음이 소란했던 하루였다. 우울은 날 건들지 말라며 버럭버럭 화를 내고, 자존감이란 아이는 저기 저 구석에서 나올 생각도 안 하고, 자신감은 이른 여름 휴가를 떠나버렸는지 온데간데없다.

평소와 같은 날임에도 우울함이 극에 치달을 때가 종종 있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이런 날은 시끌벅적 왁자지껄한 곳으로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떠드는 것도 방법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하면서 내 우울은 잠시 회피하는 것. 그렇지만 그것마저 버거운 하루가 있더라. 설웁던 오늘의 나를 그냥 내버려 두고 싶은 날이.

참 요란했던 하루를 누구의 방해도 없이 조용히 정리하고 싶은 날. 찐한 사람과 찐한 술 한 잔보다, 애정하는 노래를 가만히 듣는 것 보다,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으며 내 위를 학대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위로법이 있다.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꽤 괜찮은 처방. 바로 혼자만의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이다. 머리가 아픈 날에 책을 읽는 게 무슨 위로가 되겠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겠다. 홀로 갖는 시간이 대부분 그렇겠다만, 책을 읽는 시간은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시간이다. 그땐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주책맞게 눈물이 나더라도 그냥 펑펑 울어버릴 수도 있다. 생각 없이 손에 집히는 책을 고르더라도, 설령 그게 유치한 만화라 하더라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버거운 날엔 책을 읽는 것도 위로가 되더라. [Created by Freepik]

에디터는 이럴 때 ‘에세이’를 읽는 편이다. 평소 좋아하는 장르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힘듦은 겪는 이들의 토닥임을 받는 것 같달까. 나를 모르는 이들에게 위로를 받는 건 꽤 괜찮은 기분이더라.

저 쓰레기통에 나를 집어 던지고 싶기도 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싫어진 날. 그런 날 읽기 좋은 에세이를 몇 권 소개해 드리려 한다.

잠깐, 오늘 같은 날 알코올이 빠져선 안 된다고? 딱 맥주 한 캔만 꺼내서 가져오시라. 취하면 책이 온통 젖어버릴 수도, 또 내일의 내가 감당 못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 생각보다 까다로운 나와 잘 지내는 법
 : 나는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 이영희

생각보다 까다로운 나, 가끔은 나도 제어하기 힘들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소음이 있으면 집중하지 못한다. 불빛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음악도 정해놓은 볼륨이 있다. 좋아하는 장르의 책이 명확하다, 해서 다른 책들은 쉽게 손에 가지 않는다. 영화관 스크린을 앞 사람의 뒤통수가 가리자 홧김에 나간 적도 있다.

생각보다 나는 까다롭다. 조울도 어찌나 심한지, 이리저리 널뛰는 기분은 정말 나도 맞추기 힘들 지경이다. 이런 나를, 누가 좋아할 수 있을까? 하물며 나 자신도 제대로 나를 좋아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나는 누구보다 나와 잘 지내고 싶다. 지친 하루를 보낸 나를 스스로 혼내고 싶지 않고, 더 이상 나 자신과 기 싸움하고 싶지도 않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은 괜찮다고 위로하면서 내 잘못에는 엄격한 나. 이런 나를 다정하게 보듬자는 거다.

나를 위로하기란 어렵고도 쉽다. 일단 나를 좋아해야 한다. 그 누구보다도. [PxHere/Creative Commons CC0]

생각보다 까다로운 나는 어쩌면 나 자신만 사랑할 수 있다. 피가 섞인 가족들도 나의 어떤 면은 정말 싫어할걸? 오로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라는 거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 나를 엄청나게 보듬어주고 싶지 않은지.

나를 사랑하는 단계는 생각보다 꽤 복잡하다. 저 밑바닥에 떨어진 자존감도 끌어올려야 하고, 내 탓만 하는 더러운 습관도 고쳐야 한다. 위로가 필요한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하는 법 정도는 책을 통해 상세히 아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지 모른다.

“이번 생을 더 잘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자꾸 이번 판은 망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 자극적이지만 ‘팩폭’에 위로 받기
 : 버티는 삶에 관하여, 허지웅

이 책을 접하기 전 주의할 점. 찌질했던 언젠가의 내가 싫어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구든 다 그런 경험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쉽게 나서지 못한 순간들, 누구나 숨기고 싶은 치부들.

다들 똑같다. 우리처럼 외면하고 싶은 것은 회피하고, 다들 그렇게 산다. [PxHere/Creative Commons CC0]

다들 똑같이 산다. 쉽게 총대를 메고 나서지 못하고, 부당했다고 여겨지는 일에 ‘이 비겁한 XX!’라고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한 일이겠다.

그렇게 마음속에 켜켜이 묻어놨던 찌질함을 예상치 못하게 툭 건드리는 게 바로 이 책이다. 순간 솔직하지 못해 외면하고 싶었던 나를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책. 어영부영했던 그때의 나를 채찍질한다.(조금 아플 수도 있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주변을 책임질 일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책임진다는 건 말처럼 고상한 일이 아니다. 더럽고 치사한 일이다.
내 소신이 아니라 남의 소신을 지켜주어야 하는 일이다”

물론 저자가 ‘팩폭’만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가장 회피하고 싶은 부분을 ‘콕’하고 건드릴 뿐. [Pixabay/CC0 Creative Commons]

한 순간이라도 ‘버텼던’ 경험이 있다면 책에서 수많은 나를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책속에서 자신의 경험 뿐 아니라 영화 속 인물까지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그 비판의 대상이 바로 ‘나’로 투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자신이 받은 알량한 상처의 총량을 빌미로, 타인에게 가하는 상처를 아무것도 아닌 양 무마해버리는 비겁합’ 같은 표현으로 말이다. 진정 ‘팩폭(팩트폭력)’ 아닌가. 내 아픔에만 급급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어제의 나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다.

소개해 드린 책들은 모두 다 소중하고 좋은 책들이지만, 에디터가 엉엉 울면서 읽고 큰 위로를 받았던 책이 바로 ‘버티는 삶에 관하여’다. 뭐, 에디터의 눈물샘은 비정상적으로 활발히 일하고 있긴 하지만. 속상하고 힘든 일이 쌓여 지칠 때 다시 꺼내 보는 책 중 하나다.

■ 우리는 모두 보노보노 같은 사람들
 :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

에디터는 보노보노를 이상한 하늘색에 말도 늦게 하는 물개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말이다. [TV다산북스 유튜브 캡처]

손톱보다 작은 두 눈에 분홍색 조개를 안고 있는 하늘색 해달. 처음 보노보노를 만났을 땐 썩 좋은 첫인상은 아니었다. 일단 어렸을 적부터 성격이 급했던 에디터는 말이 느린 보노보노를 답답해했고, 하늘색을 싫어했고(!), 걱정이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쟨 왜 저럴까, 왜 까부는 포로리, 포악한 너부리에게 한 마디도 못 할까. 그래놓고 왜 놀기는 쟤네랑 놀까? 답답해!

그 어린 마음에 보노보노는 참 속 터지는 만화라고 생각했다. 아. 결정적으로 그 만화가 너무 늦은 시간에 했다. 밤 11시? 어린이는 잠들어야 할 시간이니 보노보노가 더 지루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7~8살의 나이라면 다 그렇지 않을까. 숲속에서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배경보다는 삐까뻔쩍한 변신을, 소소한 일상보단 정의의 이름으로 누굴 구해야 하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졌던 보노보노의 이야기가 이제는 큰 위로가 되더라. [Created by Freepik]

그렇게 좋은 시절은 다 가고 쑥쑥 자라 성인이 되고, 이 책으로 다시 보노보노를 만나게 됐다. 왜 어린 시절의 내가 보노보노를 지루하게 느꼈는지 잘 알게 됐다. 보노보노는 참 어른이 된 우리들 같더라. 쉽게 상처받고, 곤란해하고, 또 참는 게 습관이 돼버린 우리들.

“보노보노, 살아있는 한 곤란하게 돼 있어. 살아있는 한 무조건 곤란해. 
곤란하게 사는 방법 따윈 결코 없어, 그리고 곤란한 일은 결국 끝나게 돼 있어.
어때? 이제 좀 안심하고 곤란해 할 수 있겠지?”

작가는 만화 속 인물과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터놓는다. 그리고 말한다. 우린 모두 보노보노 같은 사람이라고. 끊임없는 고민과 걱정으로 하루를 채우는. 대단한 꿈 없이도 하루를 묵묵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 ‘완벽한 혼자’가 되고 싶은 사람
 : 혼자가 좋은데 혼자라서 싫다, 이혜린

혼자가 좋은데 혼자라서 싫다. [Created by Freepik]

“사람은, 그 존재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그보다 더 큰 스트레스는 내가 그들 없이 혼자 잘 먹고 잘살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난 늘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했고, 누군가를 등쳐야 했으며, 누군가를 구해야 했다“

혼자가 좋다. 아마도 내향적인 분들이라면 이 말에 공감하실 듯하다. 집에서 뒹굴뒹굴 홀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시간이 짱이고, 하루를 오롯이 집에서만 보냈다면 그게 바로 최고의 하루가 아닐까 싶다. 크.

혼자라서 싫기도 하다. TV 속 웃긴 장면을 보며 파안대소하다가도, 혼술을 하며 멍하니 그 순간을 즐기다가도, 가끔은 통화목록을 뒤적거리는 것도 그 때문이겠다.

그렇지만 막상 누군가 함께 있기엔 부담스럽고, 정말 아이러니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살아갈 순 없을까? 저자 역시 책에서 말한다. ‘정말 완벽한 혼자가 되고 싶다!’

책은 혼자서 ‘잘’ 노는 법도 몇 가지 소개해준다. 마음껏 망가지면서 음악 듣기, 완연히 혼자 즐기는 영화감상의 좋은 법 등등.

자신만을 위한 일기에서까지 정의로울 필요는 없다. 저자가 그랬다! [Created by Jannoon028-Freepik]

에디터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유출되면 큰일 나는 일기 쓰기’다. 저자가 말한 가장 중요한 점은 나 스스로 정당화하고, 사람들 앞에 포장해서 끄집어 내놓는 ‘나’ 말고, 진짜 내 마음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한 번 해봤는데, 정말 그 일기는 완벽하다. 일기의 주인공도 나, 선한 사람도 나,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 된다. 비현실적인 일이지만 뭐 어때. 내 일기고 유출될 일도 없다.

욕설로 도배를 해도, 잔인한 묘사를 해도, 조금 과장을 보태도 괜찮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일기가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자존감 높이기에도 정말 큰 도움이 되니 한 번 해보시라.

 

■ 24시간을 버텨내기 힘들어진 요즘

여러 가지 고민이 끊이질 않는 요즘은 하루가 참 길다. [PEXELS/CC0 License]

글쎄, 요샌 유난히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아침이 오는 것이 싫고 가끔은 무섭기까지 하다. 더 무서운 건, 나 자신이 점점 더 싫어진다는 거다.

중심을 잃고 비틀비틀 대는 날들이 잦은 요즘. 고민에 고민이 더해지니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더라. 이러다 보니 ‘에라 모르겠다’며 포기해 버리게 된다.

‘포기하면 편해’라곤 하지만 그것을 빙자한 자학은 좋지 않다. 그래서 오늘 에디터가 에세이를 추천한 것이다. 좀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내가 저 사람만큼 찌질하진 않구나’라는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위로하라고, 가끔은 ‘나와 같은 사람들도 많구나’하고 위로받으라고.

소란했던 하루의 쉼표, 맥주보단 에세이 한 권이 더 시원할 때가 있다. [Max Pixel/CC0 Public Domain]

요즘은 혼술보다는 혼책이 대세란다. 그만큼 요즘 술보다 책에 위로를 받는 분들이 많다는 뜻이겠다. 술로 정신을 흩트려 고민을 잊는 것보다야 에세이로 생각의 환기를 시키는 편이 오히려 괜찮을 터다.

어색한 위로를 건넨 에디터의 주저리를 듣는다고 고생 많으셨다. ‘당장 다가올 내일에 대한 걱정은 집어넣으시고, 오늘을 이겨낸 나에게 충분한 위로를 건네자’ 아, 이 위로는 너무 뻔하지 않나. 그렇지만 에디터는 정말 위로에 재능이 없다. 여러분의 마음을 토닥여줄 글들은 바로 저 책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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