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에 반발하는 시위자들 거센 항의에 구치소 빠져나가는데 40여분 소요
[문화뉴스] 박근혜 전 정권의 비서실장이었던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주역 김기춘(79)이 6일 새벽 562일만에 석방됐다.
이날 김 전 실장의 석방에 반발한 시민단체 회원들 200여명이 거센 항의가 이어지며 경찰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김 전 비서실장은 앞서 1심에서 직원 배제 혐의로 징역 3년을 받았다. 2심에서는 1급 공무원 사직 강요 혐의 추가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김 전 실장은 현재 상고심이 대법원에 잔류한 상태지만, 5일 자정이 지나 구속기한 18개월을 채워 석방됐다. 대법원은 김 전 실장의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구속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날 김 전 실장은 시의자들의 욕설과 비난을 들으며 자정 5분 경 구치소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그럼에도 쉽게 분을 삭히지 못한 시위대가 그가 탄 차 앞을 막으며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시위대의 규모는 200여명으로 석방 1시간 전부터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 앞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등을 두고 양승태 사법부와 거래한 의혹을 규탄했다.
시위대는 김 전 비서실장의 차에 물병을 던지기도 했고, 경찰의 통제 속에 차가 빠져나가기 전까지 40분 가까이 걸렸다. 차는 곳곳이 찌그러지고, 유리창 앞문에 금이 가는 등 손상을 입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지난해 1월 21일 새벽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혐의로 구속 수감된 바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문화계 인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은 국가지원에서 배제되는 등 차별을 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비서실장은 유신시대 때 공안검사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려왔다.
유명한 일례가 1975년 발생한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사건이다. 당기 김 전 비서실장은 북한 측의 스파이로 잠입한 혐의로 무고한 21명의 유학생을 간첩으로 만들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2009년 고문과 협박으로 인한 허위자백이 밑바탕이 됐다고 결론내렸다. 이를 발판으로 사건 피의자들은 재심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도 했다.
이 사건 수사의 책임자인 김 전 비서실장은 이때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 권력을 축적했고, 비서실장을 역임할 때에도 ‘왕(王)실장’과 ‘기춘대원군’ 등 별명으로 불렸다.
검찰은 1심 재판부에 공소유지를 근거로 구속을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에 제출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각각 세월호 보고조작 사건과 보수단체 불법 지원 사건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