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자유의 소망, 민화 바로알기

미국에서 출판된 한국의 민화를 소개하는 도서 [책거리] / 자료제공 = 정병모 교수

[문화뉴스 울트라문화] 김병기 화백은 민화야말로 진정한 우리 그림이라 하였다. 우리의 심성 깊은 곳에서 우러난 그림이 민화란 뜻이다. 민화의 소재는 중국회화나 궁중회화 등에서 빌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우리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다. 같은 포럼에서 성패 스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민화야말로 우리의 사상, 정서, 감각 등을 담은 그림이기 때문에 한국화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2월 솔거미술관에서 열린 경주민화포럼 행사 때다. 103세이신 김병기 화백이 100살 미만짜리인 우리에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이런 말씀을 했다.

“민화는 어디서 온 게 아니야. 저절로 나온 거야”

도 1. 『한국의 회화, 조선의 회화』, 헤이본샤平凡社, 2008년. / 자료제공 = 정병모 교수

일본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헤이본샤平凡社에서 간행한 『한국의 회화, 조선의 회화』(도 1, 2008년)의 표지 그림은 한국의 민화인 까치호랑이다. 민화 책인가 해서 살펴보았더니, 일본 학자들이 중심으로 쓴 한국회화사 책이었다.

만일 한국에서 발간한 한국회화사라면, 고구려고분벽화나 정선의 금강산도와 같은 그림이 표지에 등장했을 것이다. 민화에 대한 한국과 일본 학자들의 인식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더욱이 이 책에서는 한국에서 발행된 한국회화사와 달리 민화가 당당하게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

민화는 진정한 한국화라 볼 수 있다. 성철스님 말씀처럼, 우리의 정서, 우리의 취향, 우리의 이야기가 우러난 그림이다. 오늘날 한국화는 수묵화 혹은 문인화가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갖고 있는 문인화론, 문인들의 격조 있는 그림이 다른 부류의 그림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 이데올로기가 현대 미술에까지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수묵화 혹은 문인화가 주인의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지만, 현대 미술에서도 그러한 지위가 유효한지 의문이 든다.

물론 민화도 기존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다. 모티프의 상당수는 궁중회화나 문인화의 신세를 지고 있다. 하지만 그 영향은 모티프나 기법에 그칠 뿐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감성은 민화적이고 한국적이다. 더욱이 중국적인 것도 있고, 더러 서양적인 것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 또한 금세 한국적인 그림으로 탈바꿈된다.

외래의 영향은 소재의 제공에 그칠 뿐 본질적인 것을 건드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민화가 민화적이고 한국적인 이미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민화작가는 자유롭게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대로 표현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

조선시대의 끄트머리를 장식한 민화는 오방색의 원리를 충실히 활용하면서 화려함을 발산했다. 오방색으로 금수강산의 맑고 따뜻한 빛깔을 냈다. 이러한 색감은 우리의 자연에서 우러난 미감이다. 한국적인 특색은 우리가 익숙한 자연의 빛깔에서 쉽게 감지할 수 있는데, 민화가 그러한 색감을 내었다.

도 2. 책거리문자도 20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각 95.0 X 32.0cm, 개인소장 / 자료제공 = 정병모 교수

문자도와 책거리가 결합된 작품(도 2)이 있다. 이 그림이 책거리인지 알아차리려면, 조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른쪽 색면 구성은 책갑을 납작하게 그것도 평면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현대 추상화나 다름없다. 그런데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쉽게 판별할 수 있는 어항 속의 연꽃이 보여 추상화라는 말끝을 흐리게 한다. 한 걸음 물러나, 추상과 구상의 조화로 보면 된다.

재미있는 점은 연밥을 쪼고 있는 물총새와 연잎들이 책갑 사이를 파고들어 간 모습이다. 책거리와 연꽃그림이 마치 전통 목조건축의 짜임처럼 자연스럽게 엮여 있다. 더욱이 아래 연잎 사이의 공간을 살짝 비워 둔 신의 한 수에 무릎을 치게 한다. 책거리와 연꽃그림의 컬래버레이션인 것이다.

색상은 눈부실 정도로 화려하다. 강렬한 원색을 쓴 탓도 있지만, 주황색 바탕에 녹색 무늬, 녹색 바탕에 주황색 무늬처럼 보색의 대비효과를 능숙하게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아름다운 추상화, 아니 구상화가 강원도 무명화가의 민화라는 사실이다.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의 작품을 방불케 하는 현대적인 책거리도 알고 보면, 전통에 충실하게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평면적이고 추상적인 공간 구성이다. 또한 서양화를 방불케 할 만큼 사실적인 궁중 책거리는 민화 책거리에서 역원근법을 비롯하여 전통적인 시점을 바탕으로 표현주의적인 이미지로 재구성됐다.

민화의 자유로운 구성은 사실성을 뛰어넘어 표현주의적인 이미지 세계를 나타냈다. 민화가 전통 회화임에도 우리에게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고 현대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는 까닭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도 3. 까치호랑이 19세기말 20세기초, 종이에 채색, 76 X 55cm, 일본 마시코참고관 소장 / 자료제공 = 정병모 교수

민화에서는 권위나 권력을 끌어내리고 인정하지 않았다. 백수의 왕 호랑이를 ‘바보호랑이’로 만들고(도 3), 중국에서는 신처럼 받드는 삼국지의 영웅들을 망가뜨려 그렸다, 아마 다른 나라의 그림에서 이 정도의 배짱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적어도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유례가 없다. 민화가들은 불룩 솟은 것은 깎아내리고 움푹 파인 것은 메워 나갔다. 그들이 소망한 것은 평등한 세상이었고, 지금도 그 소망은 변함이 없다. / 글·자료제공 정병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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