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취향까지 엿볼 수 있는 그들의 ‘인생영화’들

[문화뉴스 문화공감] 취향은 바뀐다더니. 드라마 ‘덕후’였던 에디터는 영화에 빠지게 됐다. 

첫 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드라마 몰아보기를 즐겼던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짧으면 한 시간 반 만에 결론이 나는 영화가 좋더라. 드라마를 진득이 보는 것보단 여러 영화를 연달아 보는 게 영양가 있는 것 같달까.

시간과 내 눈꺼풀이 허락한다면야 영화는 하루에 몇 편이고 볼 수 있다. 마구잡이로 제목이 끌리는 영화, 오늘은 기분이 우울하니 재밌는 걸로, 이전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감독 영화로 쭉- 감상하는 건 나름 신나는 일이다.

한 영화를 여러 번 돌려보는 것도 재미다. 이해할 수 없었던 대사들,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장면들, 그리고 다시 들어도 좋은 그 음악. 보고 또 봐도 흥미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영화는 아마 누군가에게 ‘인생영화’일 테다.

누가 '이 영화 인생영화임!'하고 추천하면 구미가 확 당기기 마련. [Created by Freepik]

누군가에게 영화를 추천받았을 때 ‘이거 정말 내 인생영화’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혹 하게 된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봤던 영화 중에 이 작품 제일 오졌다’라는 의미기도 하니까. 

해서 또 지인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더랬다. 에디터는 드라마 덕후였다고 말했지 않았나. 영알못이라 지인들이 추천해준 인생영화를 몇 편 봤다. 그 중 정말 별로인 것도 있었지만,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은 작품도 많더라.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에 빠진 분들, 여기 모이시라. 여러분이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장르별 인생영화를 닥치는 대로 가져와봤다.

 

# 스트레스는 NO, 재밌고 유쾌한 영화

“재미없는 장면이 없는 영화” - 스파이.2015

신박한 스파이 영화, 스파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박살 내버린다. [영화 '스파이' 스틸컷]

처음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땐 잘빠진 슈트를 입고, 뒷주머니에 총을 찬 멋진 남자가 떠오르더라. 그런데 영화를 틀자마자 이게 웬걸. 상상하는 것 이상의 스파이가 등장한다. 음. 예를 들자면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어머나’같은 트로트가 나오는 느낌? 당황하긴 했지만 새롭고 재밌더라.

영화 속 멘트도 정말 쎄다. 그냥 ‘주세요’라고 말해도 될 일을, 굳이 코 뼈를 부서뜨리고 뺏어가는(...) 아주 격정적인 영화다. “상상하는 것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은 이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재미도, 대사도, 연출도, 노래도 여러분의 예상대로 흘러가진 않을 테다.

 

“우울했던 날에 이 영화 보고 웃으면서 운 기억이 있어서”  화이트 칙스.2004

안겨있는 저 분이 바로 분장을 한 FBI 요원입니다(...) [영화 '화이트칙스' 스틸컷]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FBI 남자 요원 둘이 쌍둥이 자매로 위장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뭐 그 과정에서 남자와 데이트도 해야 하고, 클럽에서 댄스 대결도 해야 하는 등 고난과 역경이 줄줄이 등장하는데 그 해결 과정이 정말 유쾌하다. ‘캣 콜링’을 하는 남자들에게 걸걸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욕설을 쏟아내는 장면은 크...b 그 장면은 여러 번 봐도 속 시원하더라. 

 

#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좋아

“‘그 시대엔 누구나 독립투사지’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라면 이들처럼 나라를 위해서 치열하게 살 수 있었을까?’라고 다시 돌아보게 돼서” - 동주.2015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다 보고나니 눈과 귀를 맑은 물에 헹군 듯 하다"라고 평했다. [영화 '동주' 스틸컷]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는 ‘새드엔딩’일 수밖에 없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희생을 했고, 그런 안타까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니까. 이 시대의 영화를 외면하는 분들은 다 이런 이유에서겠다.

당시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모두 나라를 위해 노력을 했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부끄러워할 줄 알았더라. 이렇게 간단히 영화평을 남기는 게 죄송하리만큼 다들 치열하게 살았던 일제강점기, 그리고 윤동주 시인. 그의 시와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다. 

 

“‘우주와 시간을 가로지른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영화 안의 메시지가 좋아서”  인터스텔라.2014

'인터스텔라' 뿐만 아니라 같은 감독의 작품인 '인셉션'도 인생영화라 꼽는 분들이 많더라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

인터스텔라는 인류의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우주로 떠난 탐험가들의 이야기다. 영화 속에 이해하지 못할 과학적인 상식이 나오긴 하지만 패스하더라도 영화의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정말 잘 만든 영화이지 싶다.

3시간에 달하는 긴 영화지만 지루하지 않다. 우주 전문가들도 인터스텔라의 블랙홀을 보고 ‘경이롭다’라고 표현했으니, 영화 속 우주의 퀄리티가 장난 아닌 건 증명된 사실이겠다. 시간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우주는 정말 별로지만 말이다. 

 

# 애니메이션이 짱이지

“영화에 나오는 OST, 풍등 신. 진심 띵작이다”  라푼젤.2010

크. 이분이 실존인물이었다면 김태희, 전지현님만큼 아름다우셨을 것. [영화 '라푼젤' 스틸컷]

긴 머리에 땡글땡글한 눈이 매력인 소녀. 라푼젤은 참 아름답다. CG를 잘 모르지만 이 영화가 그걸 잘했다는 건 알겠다. 4D로 보지 않아도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다. OST는 어떻고,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When will my life begins’이라도 들어보시길! 세상 귀엽고 흥겹다!

장면, 장면이 작품이긴 하나 풍등 신은 정말 아름답다. 애니메이션 속으로 풍덩 들어가고 싶었던 건 처음이랄까.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완전 흥행한 ‘겨울왕국’보다 ‘라푼젤’이 더 재밌더라(소근소근). 에디터를 믿고 한번 보시길. 기분 좋아지는 애니메이션임은 분명하다.

 

“‘죽은 자들의 날’이라는 주제가 새로워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음”  코코.2017

꽃잎으로 꾸며진 저 아리따운 다리를 건너면 사후세계로 갈 수 있다. [영화 '코코' 스틸컷]

멕시코에서는 매년 10월 31일에서 11월 2월까지 죽은 자들을 기린다. ‘죽은 자들의 날’이라 불리는 이 명절에 세상을 떠난 이들이 1년에 한 번 가족, 친구 등을 만나러 내려온다고 믿는 것이다.

지인은 이 영화 속의 사후세계를 믿고 싶다고 하더라. 영화처럼 자신이 잊지 않으면 나보다 먼저 떠난 이들이 그 세계에서 저를 기다릴 수 있지 않냐고, 평생 잊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오히려 이 친구의 감상평 덕에 이 영화가 더 짠하고 와닿더라. 애니메이션이 유치하다고? 이 영화를 보시길. 아마 생각이 확 바뀌실 거다. 

 

# 영화는 로맨스지

“남자 주인공, 진짜 내 이상형이야. 완전 내 인생영화임”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2018

피터와 함께 라면 흑현대사 따위 뿌셔 뿌셔!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스틸컷]

짝사랑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지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정면 돌파라며 바로 고백하는 분들도 있다. 여러 방법 중 주인공 라라 진은 편지를 택했다. 바로 편지를 쓰는 것.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론 편지를 발송하진 않는다. 그냥 일기장 역할을 하는 편지일 뿐이니까.

그런데 그 편지가 발송됐다! 문제는 편지를 받은 이들 중에 언니의 구 남친도 있다는 점(...) 흑현대사를 진행 중인 여자 주인공. 핫한 남자와 ‘계약 연애’로 지긋지긋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남자가 정말 정말 잘생겼고, 몸도 좋고, 스윗하고, 센스까지 넘친다. 계약 연애가 REAL! 사랑이 되는 순간, 크.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는 영화다.

 

“요즘 완전 일에 찌들어 사는 나랑 비슷해서. 이 짜증나는 일에도 뭔가 배우는 건 있겠구나 싶게 해줘서”  상사에 대처하는 로맨틱한 자세.2018

워커홀릭인 상사 덕에 24시간 사무실에서 못 벗어나는 이들. [영화 '상사에 대처하는 로맨틱한 자세' 스틸컷]

하이퍼 리얼리즘. 일상이나 영화나 어찌나 바쁘고 바쁜지. 상사는 어찌나 제멋대로인지, 고되고 비현실적인 일만 콕콕 골라서 시킨다. 새벽 3시에 퇴근하라면서 2시간 뒤에 보자는 뭐냐. 30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10분 만에 정확하고 간결하게 줄여오라는 건 도대체 무슨! 말! 이냐고! 내가 컴퓨터인가? 몸이 여러 가지로 분열해야만 할 수 있는 결과물을 원한다.

워커홀릭인 상사를 ‘칼퇴’시키기 위해선? 연애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깜찍한 발상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 있는 연애조작단이 바로 이 영화 주인공들이다. 영화는 왠지 조잘조잘 말을 건네는 친구를 보는 느낌이다. 귀엽고, 상큼해! 일상 속 로맨스를 꿈꾸는 분들. 이 영화는 어떠신지!

 

# 여러분의 인생영화는?
누군가 여러분에게 “인생영화가 뭐야?”라 물으면, 그 가벼운 질문에 엄청난 고민을 하게 된다. 어쩐지 내 취향을 평가 당해버릴 것만 같아서, 모두에게 작품성을 인정받은 명작의 이름을 대야 할 듯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별 재미도 없었던, 하지만 대단히 유명한 작품을 거론했던 경험도 있다.

에디터의 지인 역시 그 질문에 “뭔가 제대로 된 영화를 말해야만 할 것 같아(...)”라며 부담스러워하더라. 근데 사실 ‘인생영화’라고 해서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평론가가 별 다섯 개를 주던, 지인이 ‘이 작품은 명작이야!’라며 열변을 토하던, 자신이 끌리지 않는다면 그건 ‘인생영화’에 해당하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여러분의 마음을 쏙 든 영화가 중요하단 얘기다.

내가 재밌게 봤다면 그것은 인생영화. 그리고 매번 바꿔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다고! [Created by Freepic.diller - Freepik]

에디터가 ‘인생영화’라며 가지고 온 리스트를 보시라. 여러분이 기대하던 영화들은 아닐 테다. 이는 위의 영화를 폄하하는 말이 아니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대부’, ‘마지막 황제’처럼 ‘인생영화’로 늘 거론되는 영화들은 아니다. ‘인생영화’란 본인의 마음에 들고 또 영화 속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인생영화’에 대한 질문은 그 사람의 취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더라. 여러 저러 지인의 대답을 들었을 땐, 묘하게 자신과 비슷한 작품을 좋아하고 있더라. ‘라푼젤’을 좋아한다던 언니는 주인공과 같이 사랑스러운 눈을 가졌고, ‘상사를 대처하는 로맨틱한 자세’가 좋다는 지인은 여자 주인공처럼 꽤 특이한 개그를 구사한다. 신기해라.

그럼, 남들에겐 쑥스러워 말하지 못했던 여러분의 인생영화는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 오래된 영화가 아니라도 좋다, 흥행을 하지 않았어도 좋다, 평론가가 혹평을 쏟아낸 영화라도 좋다. 그냥 편하게, 말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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