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박항서가 '베트남의 영웅'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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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지금 '박항서 홀릭'] 히딩크의 뒤에는 박항서가 있었다 ②에 이어

[문화뉴스 MHN 황산성 기자] '축구 약체국을 완벽히 견인해 4강 신화를 달성하다!'

지난 2002년, 대한민국을 그 어느때보다도 붉고 뜨거운 열기로 뒤덮었던 월드컵 신화를 어렵지 않게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다. 이는 현재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이명으로 불리며 종횡무진  감독으로써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 가고 있는 박항서의 업적이기도 하다.

월드컵 이후 박항서는 같은 해에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팀을 맡게 되었다. 당시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은 월드컵 4강의 여파로 최고조를 찌르고 있었으며,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상황이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끌던 국가대표팀은 그 기세를 살려 금메달을 노렸지만, 안타깝게도 3위에 그치는 성적을 내고 말았다. 금메달에 대한 국민들의 큰 기대가 무너졌기에, 이때 박항서는 감독으로써의 자질을 의심받기도 했다. 

이 일을 여파로 다시 코치 직으로 복귀한 박항서는 2005년에 들어서야 경남 FC에 다시 감독으로 취임하게 된다. 이후로 역량을 발휘해 그가 소속된 팀을 K리그 4위까지 올리는 등, 박항서는 조금씩 '스타 감독'으로써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전남 드래곤즈, 상주 상무 등의 팀을 거쳐 선수들을 키우는데 힘쓰던 박항서는 계약이 끝난 2015년에 감독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창원시청 축구단 감독을 맡았다. 세간에선 당시 환갑이 다 되어가는 박항서에게 가지는 기대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커리어는 이대로 끝이 나나 싶었다.

그러나 박항서는 대기만성형 인물이었을까. 그의 최전성기는 모두가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던 그 때 불쑥 찾아왔다.

2017년 9월 29일, 박항서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됐다. 그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나를 선택한 베트남 축구에 내가 가진 축구 인생의 모든 지식과 철학, 그리고 열정을 쏟아부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박항서는 베트남 대표팀을 무섭게 성장시키기 시작했다.

박항서는 우선 오랜 감독 생활의 노하우를 통해 베트남 선수단의 약점이 '기술과 전술 이해도 부족'과 '체력 부족'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를 보완 할 수 있는 훈련과 수단을 병행하며 약점을 극복해냈다.

이후 박항서와 베트남 선수들은 2018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고군분투하며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첫 AFC 주관 대회 결승에 진출하고, 준우승을 달성했다.

또한 2018 아시안 게임에선 4위라는 성적을 달성했다. 동남아시아권 최약체로 취급받던 베트남 축구 대표팀을 이끄는 박항서와 선수들의 신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18년 11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은 현재 진행중인 AFF 챔피언십(스즈키컵)에서 라오스와 말레이시아를 격파하고 조 1위로 4강 진출에 성공해 필리핀을 만나 경기를 가지게 된다.

베트남 시민들은 박항서를 '베트남의 히딩크'라 부른다. 처음에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환갑의 감독이었지만, 이제는 베트남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는 베트남의 영웅이자 베트남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이 됐다.

베트남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까지 열광하게 하는 '박항서 매직', 마법 같은 그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감동의 끝은 어디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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