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다중시간' 기획전 방문

▲ 백남준 예술가

[문화뉴스] "콜라주가 유화를 대체하듯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 백남준, 1974.

백남준 하면 비디오 아트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단순히 미적으로 훌륭해서 그가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현대미술보다 다비드상이, 모나리자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낀다. 또한, 미술관에 가본 경험이 있다면 현대미술 분야에 있는 작품들이 도대체 왜 아름다운 건지, 왜 저게 미술관에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현대미술은 개념적으로 이해되고 감상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미술관에 전시된 소변기(마르쉘 뒤샹, '샘')도 캠벨 깡통들(앤디 워홀, '캠벨 수프')도 나아가 오늘날의 기이하고 이상한 실험영화들도 이해해볼 수 있다. 그래서 개념미술은 양식이 아니라 정신에 입각한 현대 미술이 된다. 자, 백남준의 작품과 그의 담론을 이어가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개념적으로 감상해보자.

경기도 용인에 있는 백남준 아트센터에는 백남준의 드로잉을 비롯한 설치 미술과 비디오 아카이브가 소장되어 있고, 백남준의 담론을 확장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예술을 위한 기획전들이 개최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획전은 "다중시간(Wrap around the time)"이다.

▲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기획 중인 '다중시간'

백남준은 전쟁 이전인 1932년 서울에서 5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집은 섬유 공장을 했으며, 그는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공부했고, 서울과 홍콩에서 중학교를 일본 가마쿠라 고등학교에 다녔고 도쿄대학교에서 음악과 미학을 전공했고, 아놀드 쇤베르크의 음악으로 졸업 논문을 썼다.백남준은 예술가의 역할이 미래에 대한 사유라고 보았으며, 기술을 기반으로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작업했다. 그의 예술관에 걸맞게 그의 전 생애를 보면 그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새로운 국면을 찾아가는 예술가였다. 백남준은 후기에 '바이 바이 키플링', '손에 손 잡고'와 같이 시간을 바탕으로 하는 작업을 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친다.

1956년에는 독일로 넘어가서 뮌헨대와 프라이부르크 음악학교, 쾰른대학에서 현대 음악을 전공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두 명의 스승을 두게 된다. 한 명은 이화여대 음대 총장인 신재덕, 다른 한 명은 "4분 33초"로 알려진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다.

▲ '바이올린을 위한 독주' ⓒ열음사

음악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지속해서 전위예술가들과 교류한 백남준의 작품은 초기부터 급진적인 예술을 보여준다. 그의 대표작품으로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하나'가 있다. 이는 바이올린을 내리쳐 부수는 해프닝으로 청각을 시각화했으며, 해프닝 자체가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논쟁이 더 중요하게 된다.

즉, 음악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던 바이올린을 깨뜨릴 때 나는 소리 역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매번 그 소리가 같은가? 미술관에서 이런 퍼포먼스를 벌였다면, 깨진 바이올린은 미술관에 전시될 것인가? 계속해서 아카이빙될 가치가 있는가? 이러한 개념과 비판적 정신들을 통해 그는 독일 플럭서스 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그러나 플럭서스는 다다이즘과 비교되며 혁신과 비판보다는 단순한 유희에 가깝다고 비판받게 된다. 

기획전 '다중시간'은 백남준의 정신을 이어받은 기획자들이 작가 혹은 작품을 추천하여, 백남준의 작품을 모티브로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그중 서현석 기획자, 우지노 작가의 '플라이우드 도시 구역'은 백남준의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하나'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이는 나무 건축물과 사운드 기계를 결합하여 헤어드라이어부터 블렌더, 드릴 등의 다양한 가전제품들이 전자 음악 밴드와 비슷한 로큰롤 음악의 사운드처럼 재생된다.

▲ 우지노의 '플라이우드 도시 구역' ⓒ백남준 아트센터

작가는 이를 통해 현대의 물질문명 속 대량 소비를 비판하고, 나무와 가전제품들을 기이하게 모아두어 현대 사회 자체를 대변한다. 백남준의 작품처럼 감각을 서로 전이시키고, 파괴적인 형상을 띈다. 또한, 일부러 전자 어댑터들을 보이게 함으로써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미술관에 전시되기보다는 비판 정신과 개념을 보여주는 예술이 된다.

플럭서스 운동 이후 백남준은 1963년에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변조하여 예술작품으로 표현하면서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에 들어섰다.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비디오를 사용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이때 백남준은 관객들이 외부에 매달아 놓은 자석을 움직일 때마다 전자 시그널의 이미지가 방해를 받는 '자석 TV'를 전시했다.

그동안 수동적으로 미디어를 받아들인 관객들은 이제 스스로 텔레비전의 시그널을 창조하고 패턴을 만드는 주체자가 되었으며, 백남준은 이 시기부터 미디어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했다

▲ 자석 TV ⓒ백남준 아트센터

'다중시간'에는 이를 모티브로 이영준 기획자와 김소라 작가가 참여하여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서로 야유하고 들이받고 괴롭히며 혼란으로 치닫는 두 점의 집요한 질주'를 전시했다. 전시장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름모꼴의 어두운 방 안에 세 줄기의 빛이 있다. 양쪽의 모서리에는 두 개의 스피커가 있는데, 한쪽에서는 사람 목소리가, 다른 스피커에서는 베이스 기타 소리가 난다.

스피커는 숨어있고, 관객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른 소리, 다른 양의 빛을 받게 된다. 소리는 서로 공존했다가 교란했다가 돕는 척했다가 방해하기도 한다. 사람 소리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언어가 아니라 단순한 소리이다. 베이스 기타 역시 선율을 가진 멜로디가 아니라 단순히 소리가 나온다.

백남준의 '자석 TV'의 전자 시그널처럼 전시 속 두 소리는 서로가 시그널이 되어 존재한다. 음악만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채 말뜻을 전달하는 사람만이 지존이 아니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에서와 같이 관람객들은 단순히 존재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 본질이 무엇인지 스스로 탐구해간다. 

 

1973년 백남준은 '글로벌 그루브'를 통해 이전의 비디오 조각과 비디오 행위예술을 결합한 믹스드 미디어 기법을 창시한다. 이는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었으며, 기존에 미술관이 예술을 보여주던 기능을 텔레비전이 대신함으로써 플랫폼의 확장을 가져온다.

또한, 음악과 춤을 활용하여 기존의 예술을 자신의 예술적 기반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글로벌 그루브'의 전자적 이미지는 선형적 시간을 보여준 현대적인 시대에서 즉각적이고 현존하는 지금 이 시각을 보여주는 포스트 모던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이후 실험영화에서 시간을 기반으로 한 작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전자적 이미지, 픽셀 화, 실재하는 시간을 드러내는 방식 등이 있다.

다음으로 백남준은 1984년 뉴욕과 파리, 베를린, 서울을 연결하는 최초의 위성중계 작품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했다. 미스터 오웰은 빅브라더를 보여준 소설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을 의미한다. 근대에 TV가 빅브라더로서의 미디어적 기능을 했다. 백남준은 작품을 통해 빅브라더, 판놉티콘으로 상징되는 미디어의 감시적 기능을 비판하고 파괴를 도전했다.

▲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백남준 아트센터

전 세계의 서로 다른 시간을 동시간으로 연결하면서 이제 미디어의 기능도 그러한 헤게모니로부터 벗어나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바이 바이 키플링', '손에 손잡고'와 같은 시간을 기반으로 한 전 세계적 작업으로 연결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의 정신을 기억하게 해주는 상징적 작품이 된다.
 

▲ '손에 손잡고' ⓒ백남준 아트센터

'다중시간'에 전시된 한유주 기획자, 김태용, 류한길, 로위에 작가의 '시차의 교차'는 위의 작품들을 기반으로 창작되었다. 글쓰기라는 행위와 그 행위 때문에 생성되지만,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음악, 그리고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함께 생성되는 문장을 통해 다각도의 시도를 전개하고 있다. 이는 시차에 대해 실존적 의미로 변환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언어, 문학, 음악, 영상 등 탈 장르적이고 탈 시간적으로 전시된다.

▲ '시차의 교차' ⓒ백남준 아트센터

몇 해 전, 우리는 한국의 수동적인 교육이 부른 거대한 사고를 목격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대의 시간이다.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합치고, 수동적인 미디어의 헤게모니를 파괴하고 변형하려 노력했던 백남준의 개념적 작업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그래서 포스트 모던시대에 현대미술은 단순한 미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 정신과 개념으로 접근했을 때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뉴스 김진영 기자 cind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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