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시작하지 않았다면, 늦지 않았다.

[문화뉴스] 일본의 제국주의 상징의 논란으로 인해 전시 시작 이틀 전 전시장의 갑작스러운 전시 취소 통보로 인해 국내의 많은 원피스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줄 뻔 했던 원피스 전시회.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26일 시작하였고, 당초 일정보다 2주 정도 연장된 9월 21일까지 진행된다.

그만큼 정치적 역사적 논란의 여지를 떠나 원피스가 국내에 굉장히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시 기간의 연장이 보여주듯 성황리에 진행 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피스 '15년차 팬'인 나 역시 뒤 늦게 관람 일정의 막바지에 이르러 지난 주말 출항(?)하기 좋은 날을 골라 관람을 다녀왔다. 사실 이러한 전시일수록 평정심을 유지해야만 혹시나 찾아올 실망감과 허탈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기에,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첫 번째로 열리는 전시이니 만큼 의미가 깊고, 평소 관람하던 전시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기에 행복감이 몰려왔다.

   
 

뒤늦게 찾아가 전시의 막바지라고 생각했었으나 관람객이 붐벼 번호표를 받아 대기하는 등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요번에 전시되는 내용은 애니메이션의 내용 중 가장 역동적이고 가장 강렬한 시기의 이야기로 주인공인 루피가 처형 위기에 처한 형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내용으로 전시는 만화의 내용 흐름에 맞추어 구성되어 있었고, 평소 원피스의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치 애니메이션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만큼 나름 잘 짜인 구성을 보여주었다.

   
 

한정된 공간 안에 표현하기에 만화 자체의 내용이 방대한 것을 고려한다면 주요 장면을 잘 선정하여 표현했고 전시 공간에서 공간으로 넘어가면서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내용들이 또 다른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즐거웠던 점은 다양한 캐릭터 앞에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별거 아닌 것이지만 의외로 굉장한 즐거움을 느꼈다.

마치 어린 시절 놀이동산에 처음 갔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마음껏 올라타고 즐기는 놀이기구는 아닐지라도 움직이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는 이미 전시된 캐릭터들이 살아서 움직이기라도 하는 듯 역동적이고 활기찬 전시로 남았다.

평소 아껴두었던 용돈을 털어 오랜만에 피겨도 하나 구입했다. 사실 몇 푼 안 되는 장난감 하나였지만, 그 앞에서 살까 말까를 30분간 고민했다. 그런 고민도 30살이나 먹은 아저씨지만, 엄마가 저 장난감을 사줄까 말까를 두고 한참을 고민하던 어린아이처럼 진지하고 진지했다. 구입하고 나오는 발걸음은 당연히 날아갈 듯 가벼웠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 그것이 내가 그토록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입가에 미소가 조금씩 번져온다. 만화 영화에 열광하지 않은 어린이가 있을까? 어린이었던 적이 없는 어른이 있을까? 학자금 대출, 지난달 카드 값, 미래를 위한 저축, 적금, 대출금, 보험료, 핸드폰 요금. 돈 쓸 일은 왜 이리도 많은 것인가.

   
 

돈 벌기는 또 왜 이리도 힘든 것인가. 나 역시 집을 사기 위해 빌린 은행돈에 이자, 곧 있을 2세를 위한 저축과 먼 미래를 대비한 적금 등에 하루 한 달돈 벌기에 바쁘다. 당연히 그렇다. 그렇다고 항상 돈에 쫓기며 굳은 얼굴로 미래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가끔은 열심히 번 돈으로 뒤로, 뒤로 시간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어른인 척 그만하고 마냥 어린이처럼 뛰어놀기도 하자.

   
 

키덜트도 좋고 놀이공원도 좋다. 내가 다녀온 것은 전시회 하나지만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취미 생활이면서 시간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아직도 시작하지 않았다면, 늦지 않았다.

[글] 아띠에터 김민식 artietor@mhns.co.kr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30살 유부남이자 소싯적 한 춤(!)한 이력의 소유자. 홍대역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디자이너다.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