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가격과 푸짐한 양, 정겨운 맛으로 사랑받는 뚝도시장 '서울맛집' 마리아 대표와의 인터뷰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 일로 illo@mhns.co.kr. 스타트업 기업 '유니브랩'의 멤버이자 프로젝트 밴드 '일로'에서 활동하는 뮤지션. 좌우명은 "자신감 없는 겸손함은 비굴함이다.

[문화뉴스] 성수동에 위치한 재래시장, 뚝도시장 '서울맛집'에는 이모 아닌, 젊은 언니가 있습니다. 성수동 아띠스트 여섯 번째 주인공은 스물다섯 나이에 직접 밥집을 운영하는 서울맛집의 '마리아' 사장님입니다.

분주한 점심시간 이후, 저녁 장사 준비를 하기 전에 밥집언니 마리아씨를 만났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장소는 성수동 호텔아띠 11층에 있는 가든 디럭스! 해가 지기 전이라 더울까 걱정했는데 선선한 바람에 시원한 전경까지, 탁 트인 야외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려니 기분까지 선선해지더군요.

'서울맛집'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ㄴ '서울맛집'은 제가 사는 동네, 성수동 뚝도시장 안에 있는 밥집입니다. 싸go! 맛있go! 양많go! 일명 쓰리go 법칙을 지켜가면서 직접 운영하고 있답니다.

성수동 토박이라고 하셨는데, 성수동 자랑좀 부탁드려요.
ㄴ 사실 예전 같으면 친구들이 동네에 놀러 와도 정말 갈 데가 없었어요. 그래서 친구들한테 우리 동네 놀러 오라고 하면 절대 안 오고, (웃음) 근데 지금은 친구들이 먼저 성수동에 이런저런 이벤트 등이 있다면서 찾아오더라고요. 동네가 변화하고 좋아진 만큼 찾아오시는 분들이 확실히 많아졌어요.

어떤 이유로 젊은 나이에 식당을 열게 됐는지 
ㄴ제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님께서 30년째 음식을 하고 계셔요. 두 분 모두 일을 하셔서, 어렸을 때 종종 식당에 가서 직접 도와 드렸죠.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그 일이 재미있어 보이는 거예요. 그때는 어린 마음에 힘든 것도 모르겠고, 마냥 멋있고 좋아 보였던 것 같아요. 나도 나중에 크면 장사를 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막상 자라고 보니 장사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돈을 모아야 하잖아요? 그런 마음에 상업고등학교를 진학했죠. 상고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빨리 취업을 했어요. 스무 살도 아닌 열아홉부터요.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아빠가 식당을 열자고 제안하셨어요. 사실 그때는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1년이 되지도 않았을 때라. 첫 사회생활에 설레는 마음도 컸고요. 당장 식당 오픈을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웃음) 어쨌든 아빠는 제가 스무 살이 되기만을 기다리셨던 것 같아요. 그런 아빠의 제안과 제 어렸을 적 꿈이 지금의 식당을 오픈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죠.

   
 

처음 식당부터 시장에서 시작하신 건가요?
ㄴ 아, 그때는 지금의 여기가 아니고 한양대 앞이었어요. 당시 저는 스무 살이었고, 대학교 앞이니까 가게에 오는 손님이 대부분 또래인 거예요. 분식집을 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되게 즐거웠어요. 또래들이 손님이니까. 친구가 되기도 하고, 놀러 오면 음식을 내어주면서 장난으로 일을 시키기도 하고요. (웃음)

첫 가게는 어땠나요?
ㄴ 대학교 앞에서 장사했을 때, 식당 운영 시간이 지금은 11시까진데. 그때는 거의 12시가 넘어서까지 할 때가 많았죠. 운영시간이 길어도 자본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하 다 보니까 상황이 악화되었고, 계속 매출이 나오지 않다 보니 그대로 접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솔직히 처음에 시작할 때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약간 반강제적으로 했었는데. 막상 문을 닫으려고 하니까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요.

다시 가게를 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ㄴ 직장생활을 1년 정도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어요. 그 일이 저와는 정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죠. 매일 책상에 앉아서 반복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힘들 것 같더라고요. 내가 왜 여기 있고, 여기서 대체 뭘 하는 거지? 정신적으로 힘든 것보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예전에 장사하던 기억들이 떠올랐죠. 그 무렵 동대문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게 어떠냐고 아빠가 다시 한 번 권유해주셨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하기에는 어느 정도의 위험 부담이 있잖아요? 이게 잘 될지도 모르고 못 될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얼마간은 직장에서 일이 끝나면 동대문에 가서 장사했어요. 투잡을 뛴 거죠.

식당 말고 다른 걸 할까, 고민하진 않았나요?
ㄴ 다행히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감사하게도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식당 일에만 전념해도 괜찮은 상황이 되었어요. 어떤 일이든 그렇겠지만, 어린 나이에 장사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쉽지는 않았어요. 예전에는 되게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는데, 이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많이 활동적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주변 분들도 그렇게 말씀해주시고요.

   
 

평소 일하실 때, 시장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해요.
ㄴ 저는 이 동네 토박이고, 예전부터 부모님 일을 도와 드렸으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제 얼굴을 알고 계셔서. 덕분에 많은 격려와 용기를 받으며 시작할 수 있었죠. 처음엔 나이 어린 사람이 음식 장사를 시작한다는 것에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주셨던 분들도 있는데, 요즘은 점점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봐주세요. 가게에 와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에 가게가 있어요. (웃음) 근데 그런 가게에 젊은 사람들이 손님으로 오니까. 대체 뭘 보고 거기까지 찾아오는 건지. 어르신 분들은 신기하신 거죠. SNS 활용법 등, 가게 홍보와 운영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시기도 하고. 시장 안에 계신 분들이 대부분 60대 혹은 70대까지, 아무래도 어르신 분들이 많으니까요. 동료라고 말할 수 있는 또래가 아직까진 거의 없는 상태지만, 앞으로 조금 더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뚝도시장 '서울맛집'엔 주로 어떤 손님들이 오나요?
ㄴ 원래는 이 동네에 유명한 게 '수제화거리'라고, 구두로 유명한 동네였어요. 부모님이 대림창고 앞 사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하실 때도 손님 가운데 구두 장인분들이 많았어요. 그분들이 그때의 저를 알아봐 주셔서 가게에 손님으로 오시기도 하고, 요즘은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분들이나 작가분들도 오세요. 몇 년 전부터 SNS를 시작해서 그걸 보고 와주시는 분들도 늘어났고요.

저번엔 SNS에 올라간 음식사진만 보고 일본에서 저희 가게를 찾아오신 분도 계셨어요. 처음엔 엄마도 휴대폰만 잡고 있는 것 같다고 탐탁지 않아 하셨는데. 이젠 저보고 어디 나가지 말라고 하세요. 손님들이 꾸준히 오니까. (웃음)

뚝도시장 '서울맛집' 만의 특색이 있다면 
ㄴ 사실 저도 여자고, 또 젊잖아요. 사소하게는 그릇이나 식기구, 인테리어까지 욕심이 나는 부분은 많죠. 하지만 식당 처음 오픈할 때의 마음처럼. 맛과 양으로 승부를 겨루려고 해요. 식당 사진 보셔서 알겠지만, 양푼! 뚝배기! (웃음) 그런 게 많아요. 그래서 새로 여는 3호점도 인테리어에 큰 비중을 두진 않을 것 같아요. 밖에서 볼 때는 평범한 식당처럼 보이는데, 막상 들어와 보면 젊은 사람들이 자주 올 것 같은 분위기로 연출해보려 해요.

   
 

주력상품처럼 식당에서 밀고 있는 음식은?
ㄴ 숯불 메뉴요! 처음에 그 메뉴는 술을 찾고 안주를 찾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만들게 됐는데, 지금은 그걸 일반 식사로도 많이 찾으세요. 3년 정도 되어가는데 가격은 딱 500원 올렸어요.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맛을 뽑아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런 걸 가성비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격은 올리지 않을 생각이고, 추가로 메뉴를 만드는 것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을 거예요.

'마리아'님만의 비장의 레시피가 있다면?
ㄴ 냉면, 국수의 육수 말고도 비빔밥에 들어가는 양념장까지 직접 다 만들거든요. 특히 비빔밥에 들어가는 볶음고추장은 식욕을 돋우는 빨간색이지만, 그만큼 강렬하거나 자극적이진 않아요. 적량을 넣어 비비시면 아주 맛있는 빨간 비빔밥을 드실 수 있죠.

   
 

아빠는 광주, 엄마는 무안 분이셔서 기본적으로 손맛이 좋으세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깨너머로 두 분의 손맛을 배우고 있어요. 새로운 레시피가 있으면 항상 기록하는 편이에요. 아빠도 갖고 계신 레시피북이 있거든요. 아빠한테도 늘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빠, 떠날 때는 꼭 그 책 나 주고 가!"라고. (웃음)

일을 하면서 언제 가장 힘들고 지치나요?
ㄴ 엄마는 어깨가 안 좋으시고, 저도 손목에 염증이 생겨 몇 달 동안 고생하고 있고요. 의사선생님은 여기서 더 무리하면 나중에 못 쓸 수도 있다고 하시는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고, 또 건강 걱정도 되고 해서 마음이 한 번씩 복잡해질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것 또한 제가 잘 관리하면서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상황에서도 일하면 여전히 재미있어요.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원래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주는 일도 좋아해요. 나중엔 밥차까지는 아니어도 음식을 바탕으로 일정 부분 봉사하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맛집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ㄴ 누구나 입맛이 다르잖아요? 그 입맛을 전부 맞출 순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식당을 하는 입장에선 충분히 욕심나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어떤 입맛의 손님이 오셔도 맛있게 드실 수 있는 집. 그런 집이 맛집이 아닐까 생각해요. '서울맛집'의 목표도 똑같아요. 어떤 메뉴를 내놓아도 비교적 많은 손님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는 일. 손님이 맛있게 잘 먹었다는 한마디가 제겐 아주 큰 힘이 되니까요.

'맛집언니'로서의 삶은 어디까지 계획하고 있나요?
ㄴ 이건 아빠의 꿈이기도 하고, 제 꿈이기도 한데요. 꼭 이 동네가 아니더라도 건물 하나를 사서 (웃음) 가족이 더 많았으면 층마다 다른 음식점을 했을 텐데 하면서 아쉬워하기도 해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의 백종원처럼, 다양한 음식을 라인업하고 외식업계를 한번 평정하고 싶어요. (웃음) 사실 이런 꿈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는 제안은 많았지만, 아직은 제 그릇이 그만큼은 아닌 것 같아서 모두 거절했어요. 지금 하는 '서울맛집'을 단단히 세워 놓고 다음 일들을 진행하고 싶어요. 아직은 다른 일을 벌이고 둘 다 집중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어서요. 그래서 아마 2년 안에는 어느 정도의 실현이 될 것 같긴 해요.

저는 손님들께 제 이름 때문에도 말을 많이 듣는 편인데, 성이 '마' 이름이 '리아'라서 천주교냐고 묻는 분들도 꽤 계시고. 30대로 보시는 분들도 있고. 손님들이 장난으로 하시는 말씀이지만, 처음에는 아주머니라는 호칭에 조금 상처도 받았죠. 근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언제까지 밥집 '언니'일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야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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