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해랑 rang@mhns.co.kr 대중문화칼럼 팀블로그 '제로'의 필자. 서울대에서 소비자정보유통을 연구하고 현재 '운동을 좋아하는 연기자 지망생의 여의도 입성기'를 새로이 쓰고 있다.

[문화뉴스] 여름이 온 것만 같은 날씨, 나는 길거리에서 프랑스 배우 'YiFan(이판)'을 만났다.

그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연의 제목은 침묵 속의 외침(원제: Shouting Without Noise?)' 였다. 그의 공연은 아슬아슬했다. 그는 머리 위로 높게 책을 쌓았고, 책을 쌓은 채 줄을 탔으며, 책을 쌓은 채 의자를 이용해 묘기를 부렸다. 그리고 동시에 대사를 이어갔다.

그의 공연은 아슬아슬했다. 그리고 동시에 강렬했다. 그는 한국 공연을 위해 프랑스 어 대사를 직접 한국어로 번역했다. 그리고 한국어 대사로 공연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대사들이 가슴을 찔렀다. 사실 그 공연을 본 다수의 관객이 어린이들이어서 YiFan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명확히 전달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린이들이 언젠가 커서 YiFan의 공연을 생각하게 되었을 때, 과연 그 친구들은 아무 생각 없이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YiFan을 만난 건, 5월에 있었던 안산 거리극 축제에서였다. 올해 하반기 거리극을 기획하고 있는 입장에서 큰 규모의 거리극, 그리고 오랜 기간 잘 구축되어 온 안산 거리극 축제를 꼭 방문하고 싶었다. 안산 거리극은 지금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축제이다. 공연의 퀄리티는 기대 이상으로 높았다. YiFan의 침묵 속의 외침' 역시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놀랍고, 또 메시지가 있는 공연이었다. 나는 YiFan에게 말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YiFan의 침묵 속의 외침'은 인간의 고독(solitude)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무거운 고독이라는 주제를 서커스와 행위예술이라는 장르를 통해 아이러니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고독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대사들은 사실 공연 주인공의 고독감과 그 주변 인물의 고독감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새 공연의 주인공은 내가 되고, 내가 그 동안 일상적으로 겪어 왔던 사회 및 집단과의 분리, 그 분리에서 오는 고독감, 혹은 사회 및 집단 내에서 느껴지는 고독감 등으로 전신에 퍼져왔다. 그 집단은 가족이라고 예외는 없다. 친구여도 예외는 없다. 나와 관계를 맺는 모든 것들은 나를 외롭지 않게 하는 것이지만, 때때로 나는 그 관계 속에서 고독감을 느낀다.

   
 

YiFan의 대사는 어느새 YiFan이 사용하고 있는 도구와 YiFan의 몸짓과 결합한다. 줄 위에서 흔들리는 YIFan, Yi Fan 머리 위에 불안하게 쌓여있는 책, 그리고 책을 쌓은 채로 이 모든 행위를 이어가는 YiFan. 그 불안함은 고독이란 주제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은 오롯이 나 혼자서 불안함을 줄타기하듯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관습과 관계는 책을 통해 나에게 전해지지만, 그것은 그거 머리 위에 쌓이고, 나는 이제 타인과 사회와의 관계까지 나의 어딘가에 짊어진 채로 불안함이라는 줄을 타야 하는 것은 아닌가?

고독은 무엇인가? 고독한 무용수는 누구인가? 라고 YiFan은 묻는다. 그러면서 YiFan은 끊임없이 줄을 타고, 돌고 돈다. 그렇게 공연은 절정을 향해간다. 나는 그 절정에서 고독감이 해소되기를 무척이나 바랐다. 어느새 공연 주인공의 고독감이 내 고독감이 되었고, 나는 답답하고 슬펐다. 그래서 이 고독감이 반드시 해소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YiFan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철학적이고 깊은 그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 인간의 최고의 벗은 개이다. 하지만, 개의 최고의 벗은 사람이 아니다. 다른 개일 뿐이다"

고독감은 해소되지 않았다. 나의 최고의 벗에게 나는 최고의 벗이 아니다. 고독의 절정에서 절망감을 맛 본 것만 같았다. 고독은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인간의 과업일지도 모른다. 그래 내가 고독감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하였구나. 어쩌면 고독은 고독이라는 그 존재 자체로 나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사람보다, 그 어떤 관계보다 고독과 나의 관계가 밀접할지도 모른다.

불안감 위에 서 있을 때면, 나는 늘 혼자였으니까. 슬픔에 휩싸여 나 자신을 가누지 못할 때에도 나는 늘 혼자였으니까. 혼자라는 것이 절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은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혼자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둘로 태어나지 않았고, 둘로 죽지 않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혹은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위로는 받을 수 있지만, 결국 그 위로도 나 혼자 받는 것이다. 나 혼자다. 나 혼자. 그러므로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필연적으로 고독하다. YiFan은 결국 고독감을 해소해주지 않음으로써, 고독을 해소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우리의 운명적인 고독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길거리에서 만난 이국의 배우는 나에게 이런 묵직한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 배우와 공연에 매료되었다. 몸짓으로 그리고 짤막한 대사로 삶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 YiFan에게 고마웠다.

공연 후 YiFan과 직접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YiFan과 이메일 인터뷰를 시도했다. YiFan은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왜 공연의 주제를 고독(Solitude)으로 잡았는가. 왜 대중에게 '고독' 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나?
ㄴ 고독이라는 건 실질적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이다. 그리고 이 주제는 어느 나라에서라도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이다. 나는 예술은 사람들에게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정치나 종교처럼 말이다. 그래서 고독이라는 주제를 택했다.

대중들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개인적으로는 고독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공연을 본 사람들은 고독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

'고독' 이라는 주제는 매우 무겁고 진지한 주제다. 반면 서커스는 코믹적인 요소가 섞인 장르이다. 굳이 이렇게 상반되는 요소를 결합시킨 이유는? 
ㄴ 서커스는 어떤 주제에도 접근할 수 있는 장르이다. 정말 모든 주제에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서커스는 내 비전이기도 하다. 유머러스하고 코믹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또 서커스는 건강하고,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커스와 고독이 결합할 수 있었다.

공연에서 사용된 도구들, 가령, 줄, 책, 의자 같은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 공연 내내 이러한 도구들도 흔들거리는 모습이었고, 당신도 책을 쌓은 후부터 계속 흔들거렸다. 이러한 흔들거림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ㄴ공연에 사용된 모든 도구는 의미가 있다. 때때로는 감정적인 의미가 있기도 하고, 때때로는 상상 속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공연을 접하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다양한 의미를 찾았으면 한다. 때때로 어린이들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설명이나 해석을 하곤 한다.

공연장에서 하는 실내 공연을 선호하는지, 아니면 거리 공연인지 궁금하다 
ㄴ나는 공연을 한다면 장소는 상관없다. 어느 곳이건 좋다. 소극장은 물론 매우 큰 극장에서도 공연을 해봤고, 서커스 텐트에서도 공연을 했었다. 그렇지만, 거리에서 공연하는 것이 제일 좋기는 하다. 거리 공연은 모두를 위한 공연이기 때문이다. 그 공연은 돈이 없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고, 자주 공연장에 가지 않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다. 나는 이것이 매우 좋다.

그리고 거리에서 공연을 하면 기분이 좋다. 햇살, 바람(너무 세지만 않다면…하하하) 등 자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 속의 외침(Shouting Without Noise)'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이야기는?
ㄴ나는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각자의 메시지를 찾았으면 한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들이 직접 느끼는 것에 비해 덜 중요하다. 즉, 관객들의 영혼과 마음이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어떤 관객들은 내 공연이 정말 재미있는 공연이라고 이야기하고, 때때로 어떤 관객들은 정말 슬펐다고 이야기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개에 대해서, 또는 다른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런 다양한 감상과 느낌들은 정말 환상적이다.

단지, 그저 내 공연에서 관객들이 마음에 담아갔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에 대한 정직함과 우아함, 아름다운 정도다.

당신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다른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었는데, 혹시 '침묵 속의 외침'과 관련된 작품이 있는지 
ㄴ나의 모든 작품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나는 그것을 'Human circus'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내 작품들은 휴먼서커스라는 큰 틀 아래 엮여있다.

안산 거리극 축제는 어땠나?
ㄴ안산 거리극 축제는 정말 좋았다. 축제 내내 유토피아에 있는 것만 같았다. 봉사자들, 국내외 배우들, 기술자들은 거의 함께 살다시피 했다. 안산 거리극 축제의 기획자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다. 그는 연극 연출가이기도 한데, 매우 영리하고 감각적인 사람이다. 스텝들 역시 정말 친절했다.

안산 거리극 축제가 여러 해 동안 계속되었으면 한다.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함께 웃고, 이야기하고, 꿈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반대로 우리 삶이 일과 소비(무언가를 사는 행위)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우리는 정말 불행할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었으면 한다. 한국이라는 나라, 문화, 언어, 예술 모두 정말 마음에 든다. (한국 공연을 위해서 3개월 정도 한국어 공부를 했었다.) '하이 서울 페스티벌'과 다른 거리극 축제에 다시 와서 공연을 하고 싶다. 

   
 

YiFan은 한국에서 다시 공연을 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지금은 스페인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 거리극에서 YiFan을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그리고 또 더 많은 국내외의 멋진 예술가들을 만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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