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人] 전 세계 유일 노벨문학 박물관… "문학에 대한 무관심 두고 볼 수 없었죠"
  • 문화뉴스 김소이
  • 승인 2016.06.09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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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사진과 영상이 콘텐츠를 지배하는 시대다. 사람들은 짧으면서도 강렬한 콘텐츠를 통해 재미를 느끼고 정보를 얻길 원한다. 이에 따라,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곰곰이 곱씹어야 하는 문학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고 나서도 라디오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빳빳한 종이를 한 쪽씩 넘겨가며 읽는 문학의 맛은 그 자체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세계문학박물관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든 작가들의 작품 초판본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가까이에서 책 냄새를 맡고 문학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정경혜 관장을 만났다.

 

   
 

세계문학박물관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ㄴ박물관을 만든 건 장인제약 지경환 대표다. 한 기업의 대표로서 바쁘게 살다보니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문학을 접했는데, 2009년 우연히 '데미안' 초판본을 접하고 본격적으로 문학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국내문학, 세계문학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모으고 기증도 많이 받았는데, 노벨문학의 비중이 많아서 세계문학박물관이라 이름을 짓고, 노벨문학을 중심으로 박물관을 꾸렸다. 노벨문학상의 인지도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초판본이 가지는 가치가 높기도 했고. 그리고 지금은 내가 관장으로서 박물관을 관리하고 있다.

다양한 문학작품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ㄴ경매를 통해서도 가져오긴 하지만, 직접 출판사에 문의하고 중고 서점을 뒤지기도 한다. 그렇게 노력하고 출판사에 연락을 드리다보니 지금은 문학동네, 한국문화번역원 등에서 직접 기증도 해주신다.

문학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ㄴ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 책 욕심이 많아서 책을 사면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지도 않을 정도였다. 학창 시절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서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독일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영국의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등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필사하면서 문학을 더 좋아하게 됐던 것 같다. 문학을 좋아하고 글을 쓰면서 마음이 풍요롭고 감성적인 사람이 됐다(웃음).

 

   
 

작품을 모으는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일이 있다면.
ㄴ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우크라이나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초판이 러시아어로 출간됐으며, 한국어 번역본도 있다. 엄밀한 의미의 초판은 러시아어로 된 것이지만, 한국어 번역본이라 해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쌓이기 때문에 번역본 초판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의 번역본은 2012년 '새잎'이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출판한 것이다.

수상 발표가 난 이후 출판사 사장님께 연락해 기증을 부탁드렸을 때, 그 분께서 "나도 가지고 있는 게 없는데 고향 방에 한 권 남아있을 것 같다"더니 직접 본가까지 내려가 찾아와서 선뜻 기증해주셨다. 정말 감동적이고 감사하더라. 이후 지인을 통해서 러시아어로 된 실제 초판본까지 구했다. 그리고 수상 발표가 나자마자 바로 전시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기업에서 직접 나서 문학 박물관을 만들 때, 주위 반응은 어땠는가.
ㄴ처음에는 '세계문학박물관을 만든다는 것'에 놀라워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많이 보여주셨다. 백석의 유일한 시집 '사슴' 초판본을 전시한다는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물관을 한 번 스쳐가는 정도의 의미로만 생각하시더라. 지금도 문학에 관심 있는 개인이나 학술 단체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시지만, 전반적으로는 다들 무관심하다. 직접 정부나 지자체에 연락을 해봐도 적극적인 반응이 없었고. 비단 우리 박물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문학이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 자체가 부족한 것 같다.

 

   
 

세계문학박물관 내부는 어떤 컨셉으로 구성했는가.
ㄴ노벨문학상이 가치 있는 상인만큼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얘기가 많다.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등 언어권별 컨셉, 혹은 '잃어버린 세대' 등 개별적인 테마의 컨셉 등을 생각했다. 작년부터 교육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하다 보니 전체적인 개괄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연도별로 배치했다. 단체 관람객이 많이 방문하다 보니 전시관 중간에 있던 쇼케이스를 비우는 등 동선도 단체 관람에 맞게 변경했다.

문학관을 만들 때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ㄴ문학관을 설립하기 전 국내의 여러 문학관에 다녀왔는데 아쉬운 점이 많았다. 대부분의 문학관이 먹거리, 볼거리 위주의 관광 상품에 끼워져 있는 느낌이었다. 막상 들어가 보면 꼭 봐야할 작품 없이 내용은 부실하고. 많은 사람들이 감각적인 콘텐츠를 선호하지만, 문학관만큼은 책냄새가 나고 시간을 뛰어넘어 작가를 만났을 때 전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다. 그래서 공간을 작품과 작가 위주로 구성하고, 아날로그 감성을 살렸다. 책 향기가 살아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문학관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시 외에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ㄴ박물관이라는 특성 상, 교육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역사교육과를 전공한 지라, 직접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별도의 운영비나 인력 없이 혼자서 진행하기 때문에 벅차긴 하지만, 열정 있는 학생들이 올 때면 보람차다.

박물관은 평생교육기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아, 아동부터 성인까지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와서 배우고, 뭔가를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박물관은 딱딱한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놀이터처럼 와서 노는 곳이다. 지역의 주민들이 평생 동안 놀러와서 즐기고, 그 안에서 뭔가를 깨달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

외곽에 위치한 문학관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ㄴ처음 박물관을 설립할 때는 레스토랑과 박물관이 결합된 형태를 계획했다. 해외 관광객들이 와서 숙식을 해결하고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추진이 잘 안 돼서 이후 1층의 레스토랑을 지금의 카페로 바꿨다. 카페는 나를 비롯한 박물관 직원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아무래도 파주에서도 외곽에 위치해있다 보니,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 예전엔 브로셔를 갖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돌아다니고, 페이스북 페이지도 만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홍보를 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크지 않더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세계문학박물관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ㄴ작년 9월부터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중고생들을 많이 만나고 있는데, 그중 문학과 책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이 가끔 있다. 교육 프로그램을 막 진행하던 당시, 정말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나중에 글도 쓰고 박물관에서도 근무하고 싶다는 학생이 있었다. 프로그램 중에 질문도 많이 하고 내 전화번호도 가져가더라. 기특해서 박물관 입장권을 선물로 줬는데, 한 달 뒤에 부모님 손을 잡고 다시 왔다. 그 학생의 어머님께서도 아이가 내 자랑, 박물관 자랑을 그렇게 많이 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는데,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있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문학에 친근감을 가질 수 있을까.
ㄴ항상 책을 가까이 둬야 한다. 책을 침대 옆에도 두고, 화장실에도 놓고, 외출할 때도 들고 다녀야 한다. '책을 베고라도 자면 외워진다'는 말도 있지 않나.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항상 책이 널려 있으면, 어느 순간 책, 그리고 문학이 마음에 와 닿는 계기가 온다. 마음이 답답해서 순간적으로 책을 펼쳤을 때 어떤 구절이 꽂히는 것처럼.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주위에 책이 없으면 불안할 정도로, 문학이 삶 속에 스며들게 되더라.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ㄴ나는 시를 쓰는 사람이다. 매일 박물관에서 근무하다 보니 아직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부지런히 작품을 써서 가까운 시일 내에 두 번째 개인시집을 내고 싶다.

그리고 책을 통해서 매일 깨닫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를 들어, 맹자가 얘기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4단을 사람들이 책을 통해서 알고는 있지만, 실제 가슴에 새기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나. 책을 통한 크고 작은 깨달음을 피부로 느끼고 가슴에 담아서,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책 '어린 왕자'에 사랑하는 방법,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답게 담겨있는 것처럼, 이러한 문학을 읽으면서 그 내용과 닮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문화뉴스 김소이 기자 lemipasolla@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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