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젊은연출가전 '가까스로 우리' 10일부터 26일까지 열려

 

   
▲ 연극 '가까스로 우리'의 한 장면.

[문화뉴스] "'우리는 오늘도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글을 봤다. 남아있는 자체가 때로는 감사하고 기쁜 것이 되면서, 동시에 무섭고 무의미한 일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걸 함께 나눌 수 있으면 한다."

 
퓰리처상 수상 극작가 손톤 와일더의 '가까스로 우리(The Skin of Our Teeth)'가 박지혜 연출과 만나 올려진다. 국립극단의 '젊은연출가전' 시리즈 12번째 작품으로 소개되며, 10일부터 26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된다. 국내에선 '위기일발', '벼랑끝 삶' 등 제목으로 번역된 바 있지만, 거의 공연되지 않은 작품이다. 박지혜 연출은 '가까스로', '간신히'라는 원제의 관용구 의미와 관계를 중시하는 원작 의미를 부각하고자 '가까스로 우리'를 붙였다.
 
결혼한 지 오천 년이 된 '앤트러버스' 부부를 중심으로 소개되는 '가까스로 우리'는 하루도 무사한 날 없이 '가까스로' 살아가는 한 가족이 등장한다. 전 인류사에 대한 풍부한 비유, 상징이 담긴 원작을 박지혜 연출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인물 간 '관계'에 집중했다. 자연재해, 전쟁 등 '앤트러버스' 가족을 끊임없이 뒤흔드는 생존 위협에도 인간을 지탱한 힘은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9일 오후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연극 '가까스로 우리'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손상규, 황순미, 양조아, 안병찬, 김예은, 양종욱 등 배우가 출연한 1막 시연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엔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박지혜 연출이 참석했다. 작품 선정 의도와 관객들에게 전하는 관극 포인트를 들어본다.
 
   
▲ 박지혜 연출(왼쪽)과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오른쪽)이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올해 국립극단의 주제인 '도전'과 이 작품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ㄴ 김윤철 : 그동안 한국연극계 신진 연출가를 여럿 '젊은연출가전'을 통해 소개했다. 국립극단의 올해 주제는 '도전'인데, 미학적, 형식적 주제를 시도하겠다는 큰 틀에서 어울리는 작품을 선택했다. 박지혜 연출이 '가까스로 우리'라는 제목으로 원작을 번역하고, 번안을 새롭게 하면서 고생 끝에 이 작품이 나왔다. 손톤 와일더가 '우리 읍내(Our Town)' 빼고는 국내에서 공연이 잘 안 되는 작가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쓰였는데, 손톤 와일더는 참전용사였다. 그래서 직접 전쟁을 체험하고, 누구보다 삶과 죽음의 고뇌를 가진 작가가 됐다. '우리 읍내'도 마찬가지이지만, 모든 작품이 우주에서 시작해 공연 현장으로 축소되는 과정이 있다. 작품이 편지를 보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하는데 그 편지의 주소가 우주, 세계로 시작해 어느 마을 집으로 내려오는 장면이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기독교적 성경에 나오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 창세, 홍수, 전쟁 등 성경에 나오는 주요 사상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이름이 '앤트러버스'(Antrobus)인데, 그리스어로 뜻이 '인류'(Anthropos)다. 그래서 개인 등장인물이 아니라, 인류가 살아온 주요 이정표를 겪는 초역사적 인물로 구성됐다. 위기에 처한 순간을 다룬 작품을 다루는데, 그 위기를 인간이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보여준다. 또한, 그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이 '도전'이어서 우리 주제와 맞물리기도 한다.
 
박지혜 연출은 굉장히 좋은 연출자다. 방 하나를 꾸며 놓고, 연극으로 풀어가는 게 관습과는 거리가 먼 연출이다. 어쩌면 미니멀리즘이라고 할 수 있고, 연극의 가장 근본적인 놀이적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의 여러 가지 위기가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시대적 특성과 연극을 탈 관습적으로 선보이는 연출적 도전을 소재로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됐다.
 
   
▲ 박지혜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가까스로 우리'를 선택한 이유는?
ㄴ 박지혜 : 작품을 3~4년 전 미국 서점에서 우연히 봤다. 폴라 보겔이라는 작가의 희곡을 검색하다가, '가까스로 우리'의 서문을 그가 쓴 것을 확인하게 됐다. 손톤 와일더는 '우리 읍내' 밖에 몰랐는데, 호기심으로 읽어보니 웃으면서 봤다.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의미와 상징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작품 세계가 희극적이면서도 날카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어서, 작품을 고르게 됐다.
 
원작과 수정된 부분이 있다면?
ㄴ 박지혜 : 대본에 극장 이름을 밝히게 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그것을 노출하면서 이것은 연극이라는 것을 알린다. 공간성을 느낄 수 있는 지명들을 넣어서 소극장판, 서울역이라는 '공간'에 있다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또한, 배우들이 실제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있다. 리허설 과정에서 같이 찾아냈는데, 새롭게 수정된 부분이다.

본인이 소속한 극단 양손프로젝트 단원과 국립극단 단원의 협업은 어땠나?
ㄴ 박지혜 : 우리 극단 배우들이 함께하고, 국립극단 시즌단원과도 함께한다. 안병찬 배우는 알고 있었고, 황순미 배우는 처음이었고, 김예은 배우는 새롭게 캐스팅해서 공연하게 됐다. 극단 양손프로젝트에선 자주 배우와 연출이 경계 없이 난상토론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엔 양 극단 배우가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았고, 어떤 시너지가 생겨날지 걱정했다. 개인적인 도전이었고, 다행히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정말 재밌었다. 각자 대사를 해석하거나, 수정하는 일을 하던 방식대로 했는데, 만족스러운 과정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선보이고 싶은 것은?
ㄴ 박지혜 : 이 작품이 위기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위기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으려 하고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가 중요한 것 같다. 여기선 빙하와 홍수, 전쟁이 나오지만, 일반적인 가정 안에선 외부 자극을 통한 위기가 있다. 1막에선 '앤트러버스'가 희망을 느끼지 않는 순간이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등장한다. 오래된 빙하시대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가족 관계와도 비슷하다고 본다. 또한, 2막과 3막을 지나면 수많은 모습이 중첩된다. 그게 현재 가족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맞닿아있다.
 
김윤철 : 연습을 지켜봤다. 박지혜 연출이 세상에 대해 전망을 하는데 원작보다 당연히 어둡다. 폭력, 악을 상징하는 인물과 어떠한 제도, 발명을 통해 인류의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가치가 갈등하고 충돌하는 장면이 강조된다. 훨씬 어둡지만, 시의적인 접근이라고 본다. 또한, 박지혜 연출 역시 인류의 희망을 포기하는 기본적인 것은 있지만 '가까스로' 유지하려 한다.
 
   
▲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보충 설명을 하고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박지혜 : 원작보다 어두운 점을 갖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 작품을 작업하면서 든 생각이 살고 있다는 것이 과연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낙관적, 비관적으로 사는 것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우리는 오늘도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글을 봤다. 남아있는 자체가 때로는 감사하고 기쁘지만, 동시에 무섭고 무의미한 일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걸 함께 나눌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김윤철 : 요새 우리가 확실히 위기다. 같이 경험해 보시고, 위기를 소재로 한 박지혜 연출 작품을 같이 함께하고 싶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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