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 1주기·백남준 10주기 추모전 열어

 

   
▲ 서울시립미술관이 천경자 1주기 추모전과 백남준 10주기 추모전을 동시에 연다. 아이들이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문화뉴스] '한국 화단의 큰 별' 천경자와 '비디오아트의 장인' 백남준을 추모하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시립미술관이 14일부터 7월 31일까지 서소문 본관 3층에서 백남준 10주기 추모전 '백남준 ∞ 플럭서스'와 14일부터 8월 7일까지 서소문 본관 2층에서 천경자 1주기 추모전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 전시를 연다. 이를 알리기 위한 기자간담회가 14일 오후 서소문 본관 1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미술사 두 거장의 추모를 같이하게 됐다"며 "천경자 화백은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남성이 주도한 추상미술 분야에서 여성적 경험과 감성을 충분히 미학으로 표출하면서, 여성화단의 길을 개척하게 됐다. 그래서 천경자의 양식이 후세 페미니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공헌했다는 점에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 천경자 1주기 추모전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
 
이처럼 추상미술이 주도한 근대 한국화단에서 자신만의 형상화 양식으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대표적인 여성작가이자, 미술계의 큰 별 천경자는 1924년 태어나 지난해 8월 6일,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던 미지의 세계로 영원히 그 발걸음을 옮겼다.
 
조아라 큐레이터는 "1998년 천경자 선생님은 주요 작품 93점과 전 작품의 저작권을 서울시에 기증하셨다. 그리고 상설전시실에서 일부 작품의 전시가 계속 이어졌다. 1주기 전시를 하면서, 93점 전 작품을 한 번에 소개하고 동시에 외부에서 대여한 '초원' 등 여러 작품을 선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선생님께서 유학 가셨을 때, 학생 시절에 그리신 1940년대 작품부터 1990년대 미완성 작품까지 60년에 이르는 작품을 골고루 살펴보도록 했다. 이게 그분을 기리는 의미로 잘 적용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인생', '여행', '환상', 그리고 '아카이브' 섹션으로 구성됐다. 조 큐레이터는 "'인생'이라는 첫 섹션에서 대표적인 자화상이나 여인상 작업 등 초기 작품을 볼 수 있다. 이어 두 번째 섹션인 '여행'에선 여인과 꽃을 그린 화가라는 고정관념을 풀 수 있게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 천경자 추모전엔 그의 사진들이 같이 전시된다.
 
마지막 주제인 '환상'은 '초혼', '백야'처럼 몽환적인 색채와 강한 필치가 담겨 있는 1960년대의 작품들과 함께 미완성 작품인 '환상 여행' 등을 선보인다. 천경자가 상상했던 미지의 세계와 내세에 대한 관념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환상'에선 지우고 덧칠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던 작가의 치열한 작업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끝으로 조아라 큐레이터는 "유족이 남긴 사진, 기사, 삽화, 영상 등을 아카이브로 꾸며봤다"고 소개했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생전에 우리에게 남긴 93점 소장품이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다"며 "몇몇 개인소장가가 추가로 작품을 대여해주면서, 1995년 호암미술관에서 보여준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전시가 됐다. 새삼스럽게 그가 우리에게 준 93점의 기증작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동시에 자부심을 품는지 느끼게 된다"고 소감을 남겼다.
 
이번 천경자 추모전의 부제는, 작가의 저서인 '자유로운 여자'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 어디서 일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들—그 위에 인생(人生)이 떠있는지도 모른다"에서 인용한 것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매 순간 솔직하게 마주했던 작가 특유의 시적 감성을 공유하고자 했다.
 
   
▲ (왼쪽부터) 조아라 큐레이터,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단장, 홍이지 큐레이터, 에릭 앤더슨 작가가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한편, 동시에 백남준 추모 10주기 전시가 서소문 본관 3층에서 열린다. 김홍희 관장은 "백남준이 한국 미술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단순히 미술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충격과 자극을 줬다. 1980년대에 있었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년)을 필두로 한 위성을 사용한 작업 등 '우주 오페라'라 불린 작품들은 청년작가들에게 테크놀러지 아트에 관심을 주는 한편, 한국 미술계에 포스트모던 아트를 간직한 주역으로 아직도 우리 곁에 가까이 남아 있다"고 회고했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예술세계와 동시에 그의 예술적 동지인 '플럭서스'를 함께 조명한다. 플럭서스는 1960년대 초부터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이다. 존 케이지, 오노 요코 등이 운동에 함께했다. 김홍희 관장은 "플럭서스가 좀 생경할지도 모르겠지만, 플럭서스 운동을 벌인 예술가들이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고 깨부수는 무대 등을 통해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를 탄생시키는 모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관장은 "백남준을 플럭서스와 함께 조명하면서, 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전시다. 플럭서스는 변화, 유동, 이동 흐름 등을 나타내는데 완결된 작품보단 과정적 작품, 대중적 보급을 위한 소품, 많은 행위의 결과물인 자연으로 구성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플럭서스가 무엇인지를 볼 수 있으면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 백남준 10주기 추모전 '백남준 ∞ 플럭서스'
 
홍이지 큐레이터는 "세종문화회관 등 올해 백남준의 추모 10주기 전시가 여러 곳에서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선 기존 전시와의 차별을 위해, 백남준 예술의 근원을 살펴보는 플럭서스 운동에 주목 했다. 백남준이 어떻게 비디오아트를 시작했고, 예술적 상상력을 풀게 됐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고 전했다.
 
독일 쿤스트할레 브레멘과 국내 기업 및 개인 소장가들의 소장품 200여 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백남준, 조지 마키우나스, 요셉 보이스, 오노 요코 등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플럭서스 일원으로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백남준이 전성기 시절 제작한 대형 멀티 모니터 설치작품들을 한 자리에 펼친다.
 
전시의 제목인 '백남준∞플럭서스'는 백남준이 뫼비우스 띠처럼 엮여 잇는 백남준과 플럭서스의 무한관계 및 백남준 이후 끼친 무한한 영향력과 순환적인 연결고리를 의미한다. 전시는 '플럭서스는 ∞', '참여갤러리', '크라잉 스페이스', '백남준은 ∞' 총 4개의 섹션 구성을 통해 시작과 끝이 정해지지 않은 자유로운 관람을 의미한다.
 
   
▲ 천경자 1주기·백남준 10주기 추모전 기자간담회가 14일 오후 서소문 본관 1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이날 기자간담회엔 플럭서스 초기 멤버인 덴마크 출신의 에릭 앤더슨이 참석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크라잉 스페이스'를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개인적인 추모의 장소를 전달한다. 동료를 추모하는 전시에 초대된 작가는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눈을 향해 불어오는 강풍과 눈이 시릴 정도의 과잉된 색채에 압도되어 억지로 눈물샘을 자극함으로써 '추모'의 의미를 전복시키고 진정한 눈물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개막식 다음 날인 15일엔 에릭 앤더슨의 아티스트 토크도 열린다.
 
에릭 앤더슨은 "이렇게 서울에서 오래되고, 좋은 친구인 백남준을 기리는 노력에 함께해 영광이고 기쁘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백남준의 예술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리고 새로운 백남준을 발견하는 측면에서 이번 전시는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플럭서스를 함께 조명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플럭서스가 없었으면 백남준도 없었을 것이고, 백남준이 없었다면 플럭서스가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에릭 앤더슨은 "한국에서 꼼꼼하게 백남준 작품과 플럭서스 작품을 모두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전시 작품도 뛰어나고, 전시 구성이나 디자인 모두 훌륭하다. 그런 측면에서 월드클래스 전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구겐하임 미술관도 이런 전시를 열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 백남준 추모전에 전시된 백남준 사진 아카이브.
 
'크라잉 스페이스'를 만든 이유에 대해 에릭 앤더슨은 "'크라잉 스페이스'이지만, 슬픈 울음이 아니라 기쁜 울음으로 함께해주길 바란다"며 "백남준도 그걸 원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15점이 선보여지고, 약 200여 점의 소품을 포함한 플럭서스 전시가 함께한다. 백남준의 유가족이 소장한 '시집 온 부처'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플럭서스 전시의 애로사항을 묻자 김홍희 관장은 "대부분 비과정적인 작품이면서, 행위의 결과물을 보여주기 때문에 전시를 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신선하고 재미있었다"며 "플럭서스의 특징은 대중적 보급을 위해 큰 오브제를 사용하는 것보다, 소품이나 아이디어 자체를 텍스트화해서 조그만 플라스틱 통에 넣어 책처럼 보여주는 활동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도 그런 것이 많이 있다. 현재까지 플럭서스 정신은 살아 있어서 2~3세대 플럭서스 운동이 진행 중이다. 주요 작가인 에릭 앤더슨이 70대 노장 작가이듯이, 1세대 플럭서스는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플럭서스를 유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에릭 앤더슨도 "1958년 백남준이 유럽에 처음 올 때, 당시 비주얼아트는 독선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아방가르드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백남준이 유럽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씬에 예술이 녹아들 기회가 된 것 같다. 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유럽 사람들과 어울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플럭서스는 미술운동이기 했지만, 전형성이 없었다. 메니페소토가 있는 것도,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플럭서스에 참여하는 인물들은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이뤘다. 미국, 캐나다, 유럽, 일본 등 각 나라를 망라하면서 같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플럭서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음악이면 음악, 그림이면 그림, 조형이면 조형처럼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곳에 다양한 형식으로 존재하는 표현방식과 크기가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는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아이디어였다"고 설명했다.
 
에릭 앤더슨은 "플럭서스 정신 덕분에 미술은 단순하게 미술관에 전시되거나, 화가가 그림을 앉아서 그리는 것이 아니게 됐다. 예술은 우리 일상생활 일부가 됐다. 예술이 어디든지 존재하는 것이 플럭서스라고 보고 있어서, 그 정신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립미술관은 백남준 작가 서거 10주기를 기념해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49년까지 12년의 성장기를 보낸 집터가 위치한 종로구 창신동에 '백남준기념관'을 조성한다.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백남준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소개하는 버츄얼 뮤지엄, 백남준 예술의 모태가 된 40년대 창신동 시절의 문화 지리적 경험과 생각을 소개하는 아날로그 디오라마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홍희 관장은 "앞으로 소장품을 더 잘 관리해 시민과 국민에게 보여드리도록 하겠다"며 "그의 옛 한옥 터를 매입했고, 우리 미술관이 조성하고 운영하게 된다. 7월 20일 생신 때 기념관의 완공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공정이 늦어져 11월에 선보이게 될 예정이다. 7월 20일엔 공간특성을 알려주는 행사가 열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글]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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