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공동수상자 데보라 스미스, 수상 이후 국내 첫 기자회견 참석

 

   
▲ 데보라 스미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 영문 번역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뉴스]

"번역가가 원작의 충실도를 높이기 위해, 작품 일부분이 불충하게 번역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원작의 정신에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충실하게 번역한다." - 데보라 스미스

 
지난달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한강과 공동으로 수상자인 '채식주의자'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29)가 국내 최대 규모 책 문화 잔치인 '제22회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았다.
 
15일 오후 '제22회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린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코엑스홀에서 데보라 스미스의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데보라 스미스는 6년 전 한국어를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해, 안도현의 '연어'(영제 'The Salmon Who Dared to Leap Higher'), 한강의 '채식주의자'(영제 'The Vegetarian')와 '소년이 온다'(영제 'Human Acts')를 번역했다. '채식주의자'는 데보라 스미스가 한국어를 배우고 3년 만에 번역한 작품이다.
 
데보라 스미스는 케임브리지 대학 영문학 학사와 런던 SOAS 현대 한국문학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지난해 틸티드 악시스 출판사를 설립해 대표로 있고, 한국문학번역원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틸티드 악시스 출판사와 한국문학번역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한국문학 3종을 시리즈로 내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 코엑스홀에서 데보라 스미스의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이어 데보라 스미스는 앞으로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으로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서울의 낮은 언덕'을 각각 10월과 내년 초에, '올빼미의 없음'을 2018년 초에 출간할 예정이다. 또한, 한강의 '흰'도 내년에 출간할 예정이다. 또한, 미국 문학 번역가 협회의 연례회의에 배수아 작가와 함께 참여해 뉴욕 등지에서 낭독행사를 펼칠 계획이다.
 
'제22회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데보라 스미스는 개막일 열린 기자회견을 비롯해 19일 오전 코엑스 A홀 전시장 내 책만남관 1에서 '한국문학 세계화, 어디까지 왔나'라는 주제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한다. 구병모의 '위저드베이커리' 번역가인 이르마 시안자 힐 자녜스가 참석해 '주요 언어권별 주목받고 있는 한국문학 번역가'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기자회견을 준비한 한국문학번역원의 김성곤 원장은 "번역은 원고라는 건축물을 허물어서, 자재를 배로 실은 후에 다시 건축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환경에 맞게 비슷한 건축물이 세워지는 것"이라며 어느 번역가의 말을 인용했다.
 
이어 김 원장은 "우리가 번역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러한 번역인데, 데보라 스미스가 훌륭하게 해줘서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게 됐다. 데보라 스미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문학을 계속 번역해 세계에 알리려는 포부를 갖고 있다"고 인사말을 남겼다. 데보라 스미스는 질의응답에 앞서, 발제문을 발표했다. 발제문과 함께 취재진과의 회견 내용을 정리했다.
 
   
▲ 한국문학번역원의 김성곤 원장이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기자회견에 온 소감을 듣고 싶다.
ㄴ 데보라 스미스 :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수상 이후, 한국 미디어에서 번역의 어려운 점이나 수상 소감을 듣는 등 여러 질문을 했다. 하지만 번역은 겸손한 작업이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면 안 된다는 내용의 선배 번역가 말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책이나 컴퓨터로 작업할 때 가장 행복하다. 대중에게 말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글로 작업하는 것이 편했다.
 
상을 받았다고 내가 번역이나 한국문학에 대해 남들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상을 받았다고 한국문학을 번역한 다른 분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다. 내 번역이 인정받은 건 기쁘지만, 행운이 있던 것이었다. 한강 작가, 바바라 지트워,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와 같은 에이전트 등 여러분의 도움이 없다면 이런 성취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맨부커 상은 공동으로 만들어진 상이다.
 
또한, 나보다 앞서서 문학 번역을 통해 '문학적 감수성'이 중요한 창조 행위로 선보여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현재의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만들어준 선배 번역가들이 개인적으로 호명된 두 사람뿐 아니라 전체 번역계의 쾌거라고 이야기해줘서 감사하다. 여기에 번역이 '작품을 창조적으로 다시 쓰는 작업'이라는 것을 인정받아 감사하다.
 
최종적으로 번역 작업은 편집자의 의사 결정이 수반된다. 번역가가 원작의 충실도를 높이기 위해, 작품 일부분이 불충하게 번역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원작의 정신에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충실하게 번역한다. 다른 번역가와 마찬가지로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원작에 대한 교만과 부주의가 아닌 충실도 때문에 자신의 불충을 허락한다. 번역이 원작을 보강하는 역할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부실한 번역은 우수한 작품을 회복할 수 없을 수 있게 할 수 있다. 최고 수준의 번역을 하더라도 좋지 않은 작품을 고전의 명작으로 만들 수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 '채식주의자'를 쓴 작가 한강(오른쪽)과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왼쪽)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맨부커상 공식 트위터
 
'채식주의자'에 대한 나의 번역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성은 번역가가 달성할 수 없는 가치임에도, 오역할 때 번역가들은 좌절감을 느끼고 낙심하게 된다. 그런데도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나아갈 수 있다. 나의 한국어 능력이 처음 배운 이후로 좋아졌고, 번역 오류가 있더라도 독자의 이해를 저해하지 않은 점은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나는 부와 명예를 위해 번역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작품을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채식주의자'가 그런 경우다. 한강 작가의 치밀한 구조, 강렬한 이미지, 시적 어휘가 마음에 들었고, 가장 뛰어난 작가로 인정해줘서 기쁘다. 많은 학자나 작가, 일반 독자가 하나같이 한강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을 날을 고대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한국문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늘어났다.
 
영국과 한국의 출판문화엔 차이가 있다. 양국 개인과 기관에도 차이가 있다. 논의의 차이를 고려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양국 시스템의 옳고, 그름과 타당성은 말할 수 없다. 양국 문화의 인내심과 헌신적인 노력은 작품의 출발보다 중요하다. 건설적인 논의를 위해 이러한 대안적 견해도 필요하다. 앞으로 내가 번역 커뮤니티에 속한 것이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겸손과 협동을 말하고 싶다. 감사하다.
 
영문 교열까지 직접 담당하나?
ㄴ 영어로 번역하면 영국의 전문 교열가가 오타나 현시대와 맞지 않는 상황, 이름과 같은 부분에 대해 교정을 한다. 영문에 대한 교정 작업만 있고, 영문 번역에 대한 교정 작업은 하지 않는다.

직접 작품을 창작하고 싶은 경우는 있었는가?
ㄴ 사실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문장단위로 번역을 하게 되는데, 플롯이나 인물 구상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다. 작가가 글을 쓰다가 막히는 게 있는데, 그런 것이 없다는 게 장점이다. 2시간이나 10시간의 원문을 번역하면, 2시간이나 10시간의 번역 분량이 나옴을 예상할 수 있다. 소설가에 대한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 ⓒ 한국문학번역원
 
'채식주의자'를 번역하면서, 한글 표현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ㄴ 굉장히 많이 있었다. 사실 번역을 3년 전에 해서 당장 말을 할 순 없다.
 
번역가로 일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있을 것인데 그 부분에선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나? 혹시 한국 문화에 능통한 전문가팀이 있나?
ㄴ 한국 문화 전문팀을 두고 있지 않은데,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한국인 친구가 있어서 현재 상황을 물어볼 순 있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책으로 스스로 찾는 혼자만의 작업을 주로 한다. 문화적 현상을 재현하는 것은 민감한 일이다. 영국 독자는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주는 것이 한국에 대한 첫인상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번역할 때 '소주', '선생님', '만화'를 그대로 섰는데,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독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그래서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 '만화'를 '코리안 망가'라고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도 왔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문화적 개념을 타국 문화에서 탄생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설득도 했다.
 
번역하는 책이 쌓여갈수록, 독자는 그 문화에 대한 친밀도나 친숙도가 생겨난다. '채식주의자' 번역 이후 '소년이 온다'를 번역했다. 다음 번역에선 '형', '언니'를 영어 그대로 쓰는 시도를 했다. 독자가 번역한 작품을 읽을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속 전달하면 이상적으로 '스시', '요가', '센세'라는 표현을 서구권에서 다 알듯이, 그런 한국의 일상적 표현도 알게 될 것으로 본다.
 
   
▲ '제22회 서울국제도서전'과 동시에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16 디지털북페어코리아'의 '창비' 출판사 부스에 '채식주의자'가 전시됐다.
 
'채식주의자'가 상반기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강 작가도 대중적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졌는데, 데보라 스미스는 일상이 바뀌었나?
ㄴ 개성이 강한 작품은 번역 국가에서 스테디셀러가 되기도 한다. 책의 독자가 적당히 재밌는 게 아니라 '흠뻑 빠지게 되는' 개성 있는 작품일 때 그럴 수 있다. 한국에선 내 이름이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다. 조금 달라지나 싶었다. 이메일과 전화 연락도 여기저기 며칠간 왔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해지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요즘엔 사무실이 아니라 집에서 컴퓨터 끼고 일하고 있다. 이 자리 오기 전까지 내가 그렇게 유명해졌나 싶다.
 
'노벨문학상'이야기가 맨부커상 이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번역이 한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에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ㄴ 사실 한국에서 노벨상이 이렇게 관심이 많은 것에 대해 조금 당황스러웠다.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쓰고, 독자가 그 작품을 잘 감상하고 즐기게 되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나 싶다. 상은 상일 뿐이다.
 
한강, 안도현, 배수아 작가의 작품을 번역했다. 각기 다른 특성이 있는데, 한국 작품을 선택하면서 어떤 작품을 선호하나?
ㄴ 한강, 배수아 작가의 작품을 많이 했다. 배수아 작가 작품은 개성적이고 독특한 점이 끌려 번역하게 됐다. 번역가에게 도전이 되고, 까다로운 번역을 하는 것은 즐거운 작업이다. 문학성을 보고 작품을 선정하냐고 묻는데, 줄거리, 인물, 배경 등이 고정이 되어 있는 것보다 문체나 스타일에 좀 더 관심이 있다. 정보전달 이상으로 흥미로운, 독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문장을 번역하는 데 관심이 있다.
 
   
 
 
출판사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ㄴ 번역 외에 내 추가 작업은 외국에서 영어가 아닌 언어로 된 작품을 출판하는 것이 있다. 틸티드 악시스 출판사를 작년에 설립했다. 아시아권 현대문학을 세계에 소개하기 위한 작업이다. 한국문학번역원과 MOU를 맺어서 연간 1권씩 시리즈로 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번 도서전을 기회로 만나 계약하길 고대하고 있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했을 때의 느낌은? 또한, 작품의 정신을 어떻게 번역하려 하는가?
ㄴ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을 때, 탁월한 작품이라 생각했다. 이미지가 강렬했고,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또한, 3부작 연작소설이어서 세 명의 화자로 서술이 되는 것이 독특했다. 번역으로도 매력적이었고, 독자에게도 그러할 거라 생각했다. 영국에선 연작소설 개념이 없어서 신기했을 거라 봤다. 전체적인 내러티브가 독자를 이끌고 있고, 단편을 보면 시각적으로 작품이 독자의 기억에 남는다.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에서 뽑을 수 있는 정신은 애틋함과 공포였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작품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잘 관리되고 통제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도 무심하고 차갑지 않은 문체에 주의를 기울여 번역했다. 작품의 정신을 어떻게 다른 언어로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구체적인 정신이 아니라 이 정신이 살아나고 있는지 아닌지를 작업을 하면서 느낄 수 있게 된다. 작업을 하면서 문체에 젖어들고, 흐름을 타고 갈 때 그 정신이 살아난다.

한국문학을 보는 안목이 생겼을 것인데, 매력은 무엇이며 발전의 걸림돌이 있다면?
ㄴ 한국문학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답하기 어렵다. 다양한 작품과 작가가 있기 때문이다. 독자마다 작품의 취향이 다르다. 이제 점점 외국에서 번역한 한국문학 출간작품이 등장할 것인데, 더 많은 독자를 얻을 것이다. 문학의 확산 속도는 누리는 독자의 수가 대중문화보다 적어 느리다. 걸림돌에 대해선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해 기여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한데, 한국문학번역원 같은 기관이 있다. 긴밀한 협조가 있으므로, 일하는 사람으로 한국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은 앞으로 무궁무진할 것이다.
 
   
 
 
작품의 오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ㄴ 항상 내 능력 범위 내에서 번역하려 한다. 오역에 대한 해소 방안이 있는지 모르겠다. 더 많은 번역작업을 하면서, 익숙한 표현이 늘어나면 오역의 가능성이 줄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언어를 배워서 번역한다면 어떤 언어를 배우고 싶나?
ㄴ 베트남어를 배워서 하고 싶다. 한국문학과 마찬가지로 그 언어를 배우기 전엔 작품을 읽을 수 없다. 특정 작품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베트남 문학의 위치가 한국문학 위치와 영국에선 비슷하다고 본다. 영국에선 두 국가의 문학 인지도가 낮다. 하지만 어떤 문화권이든 간에 훌륭한 작가와 작품이 있으므로 인지도가 낮은 문화권의 작품을 번역해서 선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빨리 언어를 습득해서 번역하게 된 비결이 있다면?
ㄴ 6년 전부터 한국어를 배웠지만, 2013년에 '채식주의자'를 번역했으니 3년 만에 번역한 것이었다. 한국어를 배운지 1년 만에 배수아 작가의 작품을 번역했을 때도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어 공부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다른 외국어를 구사할 수 없으므로, 습득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난지는 모르겠다. 구체적인 목표와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어서 열심히 공부한 것 같다. 한국문학 작품 중 좋은 작품을 접하면서, 빨리 더 습득하게 된 것 같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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