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곡성'

[문화뉴스] 2016년 상반기 영화계의 키워드는 '無천만'이었다.

자연스레 대중이나 매스컴은 스크린 독과점으로 이뤄진 '검사외전'이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초반 성적을 보고 이들이 천만 영화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검사외전'은 970만,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867만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언제부터인가? 천만 영화가 없다면 자연스레 "한국영화 망했네"라는 이야기를 하는 의견이 등장했다. 하지만 관객 숫자에만 집착하면, 오히려 그것이 한국영화가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의견 역시 공존한다. 관객과 작품 자체의 힘이 아닌 외부의 힘으로 이뤄지는 천만 영화가 '곡성'의 명대사처럼 "뭣이 중한디?"라는 뜻이다. 후자의 의견을 좀 더 '중하게' 생각하며, 숫자가 아닌 다른 의미가 있는 영화들을 상반기 결산을 통해 소개한다. 각 영화엔 관람 당시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섹션에 소개한 감상평도 같이 기재한다.
 
   
▲ 영화 '캐롤'
 
레즈비언이여 일어나라!…'캐롤'
양기자의 코멘트 : 연출부터 연기, 촬영구도, 음악, 조명, 프로덕션 디자인, 의상까지 모두 섬세한 수작.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 배려, 관심 그리고 사랑이었다. 오랜만에 본 진짜 사랑 이야기. 라스트 씬은 그야말로 푹 빠지게 된다. 10/10
 
개봉 전부터 '아트버스터'의 조짐이 보였다.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캐롤'이 빠진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 미국 현지 언론들의 기사가 있었다. 심지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선 각각 5부문, 6부문 후보에 올랐음에도 무관으로 끝난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만큼 '캐롤'의 힘은 컸다. 31만 관객을 불러모으며, 상반기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에서 '싱 스트리트', '나의 소녀시대'에 이은 3위에 올랐다.
 
'캐롤'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자전적인 소설 '소금의 값'을 원작으로 하며, 지난해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미국영화연구소 선정 올해의 영화, 주요 영화비평가협회상 메인상 수상을 차지한 '레즈비언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는 평과 함께 작품을 번역한 황석희 영화번역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후 황석희 번역가는 상반기 '데드풀', '엑스맨: 아포칼립스'와 같은 블록버스터부터 '스포트라이트'와 '사울의 아들'과 같은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작까지 다양한 작품을 번역해 호평을 얻었다.
 
   
▲ 영화 '동주'
 
이준익 감독의 다른 뚝심, '동주'
양기자의 코멘트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이 영화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스크린 과점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강하늘의 연기가 이토록 찬란하고 아름다웠던가. 이준익 감독 필모그래피에 가장 인상적으로 남을 작품. 흑백의 미학. 8.5/10
 
어둠의 시대에 평생을 함께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였다. 역사를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왕의 남자'와 '사도'의 이준익 감독은 잊힌 시인과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기 위해 메가폰을 잡았다. 그리고 이러한 뚝심은 관객 동원과 함께, 이준익 감독에게 제5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을 안겼다.
 
116만 관객을 불러 모은 '동주'는 단순하게 신파적인 소재로 애국심을 강요하는 여타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관객들이 주체적으로 역사를 되돌아볼 힘을 준 것이었다. 이 힘은 뒤이어 개봉한 일본군 '위안부' 소재 영화 '귀향'의 성공과도 이어졌다. 한편, '동주'의 인기에 힘입어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복간은 대형 인터넷 서점 상반기 베스트셀러 5위권에 들며, 윤동주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 영화 '주토피아'
 
디즈니가 만든 또 하나의 다양성영화, '주토피아'
양기자의 코멘트 : 디즈니가 만드는 '동물농장'. 미 대선을 앞두고 이런 여우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다니. '벅스 바니'를 넘어서는 토끼 캐릭터의 등장. 요즈음 이렇게 속편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디즈니 스튜디오 애니가 있었나? 샤키라는 덤. 8.5/10
 
'주토피아'는 개봉 첫 주, '데드풀'과 '검사외전'에 밀려 3위로 주말 박스오피스에 진입했다. 하지만 관객의 입소문과 함께 2주차 관객이 1주차 관객보다 더 많은 '개싸라기 효과'를 받았고, 기어코 4주 만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최근 개봉 4주면 IPTV로 직행하는 분위기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이후 '주토피아'는 꾸준히 상위권에 랭크됐고, 5월 중순이 되어서야 10위권을 벗어났다. 최종 박스오피스 기록은 470만이었다.
 
단순히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귀여워서 박스오피스 역주행 현상이 나온 것이 아니다. 작품에 나오는 동물 캐릭터들은 인간의 세상과 유사한 '주토피아'에서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하나의 사회를 일구고 살아간다. 동물의 문명화라는 상징성과 더불어,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힘든 추리극과 추격전의 줄거리구조도 애니메이션의 패러다임 변화를 고민하는 디즈니를 엿보게 했다. 특히 동물들을 통해 약자와 강자, 인종차별, 여성의 권리 신장 등 사회적 이슈를 비유적으로 보여줬다. 그야말로 온 가족이 생각하면서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영리함이 묻어난 결과였다.
 
   
▲ 영화 '스포트라이트'
 
아카데미 작품상을 넘어, 언론의 참 의미를 묻다…'스포트라이트'
양기자의 코멘트 : 단순히 아카데미 몇 관왕이라는 말보다, 적어도 취재보도론 수업에서 이 영화는 앞으로 부교재가 되어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선보여질 것이다. 자극적 사건을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취재의 여정으로만 보여주는 큰 울림. 9/10
 
매해 2월 말 혹은 3월 초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언제나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그만큼 세계 영화 시장에서 미국의 할리우드가 주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는 방증이다. 특히 올해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드디어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것이 화제가 됐다. 하지만 가장 먼저 받는 각본상과 가장 마지막에 받는 작품상의 주인공은 '스포트라이트'였다. 수상결과가 나오기 전 개봉된 '스포트라이트'는 29만 관객이 지켜봤다.
 
'스포트라이트'는 2002년 가톨릭 교회에서 수십 년에 걸쳐 벌어진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한 미국 3대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팀 기자들의 실화를 다뤘다. 마크 러팔로, 레이첼 맥아담스, 마이클 키튼이 작품 속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열혈 기자로 분해 멋진 연기 앙상블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언론의 불신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 모범적인 저널리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정표를 제시했다. 어찌 보면 언론이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반성도 이어졌다.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재개봉 열풍은 어디까지 이어질까?…'인생은 아름다워'
양기자의 코멘트 : 홀로코스트를 다루면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책임져주는 거의 유일한 영화. 무슨 말이 필요한가. 당당한 걸음으로 자식에게 윙크하고 저세상으로 떠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흘러나오게 된다. 10/10
 
다시 보고 싶은 명작의 재개봉은 어느덧 극장가 트랜드가 됐다. 지난해 말 '이터널 선샤인'이 재개봉되어 개봉 관객 수를 훌쩍 뛰어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극장가에 재개봉되는 영화의 수는 늘고 있다. 올해 초 '인터스텔라',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아이맥스 재개봉을 시작으로, '무간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성월동화', '냉정과 열정사이' 등 다양한 영화들이 재개봉됐다. 관객들은 다시 보고 싶은 명작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수입사 역시 비수기 시즌의 틈새 공략을 할 수 있어서 좋다는 분위기다.
 
물론 이런 재개봉 영화들이 대형 멀티플렉스가 운영하는 다양성영화 상영관에 배치되어, 다른 독립·예술영화들이 상영 기회를 잃었다는 문제 역시 동시에 제기됐다. 한편, '이터널 선샤인'의 바통을 이어받은 올해 상반기 재개봉 흥행작은 로베르트 베니니 감독·주연 작품인 '인생은 아름다워'가 차지했다. 12만 관객을 동원했는데, 1990년대 당시 20~30대 관객과 현재의 20대~30대가 나란히 극장에서 쏟아내는 웃음과 눈물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 영화 '곡성'
 
영화를 보고 '토론'할 힘을 줬다…'곡성'
양기자의 코멘트 : 옛날 미국의 청소년들은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로 '록키 호러 픽처쇼'를 극장에서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이 영화도 그런 면에선 강렬하다. '검은 사제들' 같은 한국형 엑소시즘이 많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건 무시무시하게 대단하다. 9/10
 
언론 시사회가 끝나고 머리에 해머를 맞은 듯한 느낌에서 작성한 단문 평에도 드러나듯이 '곡성'은 무시무시하게 대단했다. 외지인이 나타난 후 시작된 의문의 사건과 기이한 소문 속 미스터리하게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곡성'은 현재 685만 관객을 동원 중이며, 상반기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다. 스포일러를 피해가며 영화를 지켜본 관객들은 결말을 지켜본 후 다양한 토론을 펼쳤다. 그것이 '곡성'이 준 가장 큰 성취였다.
 
흔히 이야기하는 '틀에 찍혀 나온 공장영화'들이 한국영화를 위태롭게 한다는 여론이 조성된 틈에 나온 참신한 영화였다. 관객들은 이 배역이 악역인지, 이 장면은 어떤 의미인지를 놓고 설전을 펼쳤다. 어찌 보면 획일화된 해석만 등장하는 영화의 달콤함에 길든 대중들에게 던지는 나홍진 감독의 미끼였는지 모르겠다. 한편, 나홍진 감독은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발생했을 경우 그 피해자는 도대체 어떤 연유로 그 피해를 보아야 하는 것일까 생각했고, 그 원인을 찾고 싶었다"며 연출의 계기를 밝혔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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