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든 노년의 배우…'최종병기 활'과 '끝까지 간다'의 교집합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사연을 품고 있는 외딴 산. 탄광 붕괴 사고 이후 죽음을 안고 있는 땅이 되어버린 이 산엔, 정체불명의 존재가 떠돌아다닌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노파의 신고로 그 산의 고목 밑에 금이 묻혀 있다는 정보를 얻은 동근(조진웅). 주민에겐 금의 정체를 황철석이라 숨기고, 은밀히 엽사들을 모아 '금' 사냥을 준비한다.
 
그때, 금의 정체를 알게 된 노파가 등장하고, 그 사실을 마을에 알리려 한다. 이를 막아서는 엽사들에게 저항하다 추락하는 노파. 그들은 이 사고를 은폐하려 하지만, 우연히 기성(안성기)과 노파의 손녀 양순(한예리)이 이를 목격한다. 그리고 엽사들도 이들을 발견하고, 스산한 산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는데…. 이 산엔 어떤 사연이 있으며, 기성과 양순은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총을 든 노년, 유사 서부극
한국 영화에서 노년의 배우가 장총을 뽑아 든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더구나 험한 산악 지대를 배경으로 총격전을 벌인다는 점에서 '사냥'은 낯설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장르이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영화의 시작부터 총격전이 있었고, '서부극'이라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사냥'은 '경찰'이라는 공권력이 산속의 사건을 흘려보내는 동안, 노년의 총잡이가 자신의 신념, 판단으로 행동한다. 그는 총으로 악인을 심판하고, 약자를 지킨다는 점에서 서부극의 무법자와 유사함이 보인다. 총이라는 도구가 가지는 힘, 그 폭력성이 가지는 특성 때문에 이러한 플롯, 구도가 가능한 게 아닐까. 현상금이라는 욕망, 목적이 다른 것으로 대체(영화를 통해 확인) 되었지만, '사냥'은 유사 서부극 같았고, 이러한 장르를 볼 수 있어 즐거웠다.
 
'사냥'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총잡이 남자들이 겹쳐져 보이기도 한다. 상처를 입고 귀환한 남자가 과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붕괴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속 남자들은 '사냥'의 기성과 닮았다. 사냥의 기성 역시 상처받은 과거가 있고, 그 과거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안성기의 연기 변신을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는 참 많이 뛰었고, 기존에 잘 볼 수 없던 야생적인 느낌의 인물을 소화함으로써 여전히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증명한다. 외국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로버트 드니로, 모건 프리먼 등이 다양한 장르에서 노인의 역할의 폭을 넓혔었다. 그처럼 '사냥'도 한국영화계의 노년이 다양한 역을 맡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진웅의 연기 변신(?)도 재미있다. '사냥' 속의 드라마 '시그널'의 무전기를 든 형사라는 설정은 같은데, 이재한 형사와는 달리 비열한 악인이다. 관객은 이재한 형사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이렇게 빨리 다가온 것에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최종병기 활', 그리고 '끝까지 간다'
'끝까지 간다'는 쉴새 없이 쫓고 쫓기며 긴장감을 밀어붙였고, 스릴러로서 재미와 완성도를 모두 성취, 좋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였다. '최종병기 활' 역시 추격전이 주된 플롯이었고, 740만 명이 관람한 흥행 영화였다. '최종병기 활'의 활은 총으로, '끝까지 간다'의 도심이라는 공간은 산으로 대체된 '사냥'은 이 영화들의 제작진이 함께한 만큼, 추격전의 액션과 스릴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외형적 완성도와 달리, 플롯과 인물 간의 드라마는 불친절하고, 약한 편이라 혼란을 줄 수도 있다. 전·후반에 배치된 드라마와 중반부 추격전의 조화가 아쉬운 편이다. 그리고 '사냥'의 몇 부분은 이야기의 틈이 너무 커, 내용을 바로 이해하는 데 애를 먹을 수도 있다. 이처럼 이야기의 균열이 보인다는 것은, 역으로 추격전이 드라마를 압도할 만큼의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끝까지 간다' 그 이상을 기대한 관객에게 아쉬움을 줄 수 있다.
 
   
 
 
'산'이라는 공간
'사냥'의 무대인 산은 이 영화의 분위기, 갈등을, 그리고 플롯을 만드는 공간이다. 앞서 언급한 서부극과의 가장 큰 변별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부극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건, 사막이라는 황량한 공간인데, 이와 달리 산은 나무라는 장애물과 험악한 지대의 영향으로 총격전이 일어나는 형식이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리고 산악지형은 숨을 곳이 많고, 감출 것도 많은 불안한 공간이다.
 
그 속에서 인물이 살기 위해 어떻게 변하고 산에 적응하는가를 담을 수도 있다. '사냥'의 이우철 감독도 산이 인물에게 주는 영향을 담기 위한 연출에 노력했다고 하니, 이 점을 생각하며 관람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산을 얼마나 잘 배치하고, 이용하고 보여줬는가. 작년의 '대호'와 올해의 '곡성'이 '산'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잘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사냥'의 산은 단순한 배경일까. 혹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공간일까. 영화가 끝난 뒤의 의견들, 그리고 한국의 총격전을 담아낼 다음 장르 영화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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