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노래는 창작자가 어떤 의미를 갖고 만들지만, 듣는 이의 귀를 거치면서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가사를 찾아 곱씹을 수도, 다른 이는 멜로디에 집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각각의 의미를 가진 노래들이 모인 '앨범'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얘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정규앨범은 그 자체로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서사물'이다.

보통 아티스트는 이러한 앨범의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것이 앨범을 꿰뚫는 메시지이며, 수록곡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상품을 브랜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앨범은 고유의 콘셉트를 갖고 사람들에게 소개된다. 이 과정에서, 2016년 상반기에는 음악에 또 다른 요소를 결합해서 앨범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사례가 눈에 띄었다. 올해 상반기 더욱 다채로운 서사를 펼쳐낸 앨범들을 소개한다.

게임북부터 맥주까지… '장기하와 얼굴들 -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앨범아트.

장기하와 얼굴들이 지질한 삶('싸구려 커피')부터 관계의 무상함('깊은 밤 전화번호부')까지 그동안 한 앨범에서도 온갖 주제를 소화해왔다면, 이들의 정규 4집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의 테마는 '사랑'이다. 연애상담 전문가지만 자신의 사랑에는 쩔쩔매는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를 시작으로, 지난 사랑에 대한 후회를 다룬 '오늘 같은 날'까지 앨범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열 가지 사랑을 다루고 있다.

 

   
▲ '괜찮아요 콩닥콩닥게임북'의 일부. ⓒ 네이버 뮤직

앨범에 함께 담겨있는 특별부록 '괜찮아요 콩닥콩닥게임북'은 수록곡 '괜찮아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여자 주인공이 세 남자와의 만남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연애 시뮬레이션이 주된 내용으로, 각 상황에 따라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서로의 취향은 사랑에 있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노래하는 곡 '괜찮아요'처럼, 게임은 상대방의 특성에 맞추지 않고도, 자신의 감에 의한 선택을 통해 얼마든지 해피엔딩을 맛볼 수 있다. 이 게임북을 거치면 누구나 연애의 고수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뿐만 아니라, 장기하와 얼굴들 특유의 재치가 담긴 타이틀곡 'ㅋ'는 작은 공간에서 코믹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동명의 수제맥주까지 출시했다.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는 '싸구려 커피'의 센세이션을 잇는 정규 앨범의 혁명이다.

 

순서대로 들을 때 더욱 빛나는 얘기, '안녕바다 - 밤새, 안녕히'

   
▲ '왈칵'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안녕바다 공식 유튜브

안녕바다의 정규 4집 '밤새, 안녕히'의 선공개곡 '왈칵'과 타이틀곡 '그 곳에 있어줘'는 각각 2번과 3번 트랙으로, 서로 이어지는 곡이다. 안녕바다는 자신들 특유의 감성이 그대로 녹아있는 두 곡을 테마로,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의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선공개곡 '왈칵'의 뮤직비디오는 화면을 응시하며 쉼 없이 눈물을 쏟는 여자를 보여주는 원테이크 영상이다. 뮤직비디오는 '너의 눈물은 주르륵 흘러내려'라는 가사만을 직관적으로 담아내고 있어, 여자가 울고 있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 '그 곳에 있어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안녕바다 공식 유튜브

이후 정규앨범 발매와 함께 공개된 타이틀곡 '그 곳에 있어'는 맘에도 없는 모진 말에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곡이다. 이전 트랙 '왈칵'에서 '너'가 우는 이유를 그리고 있는, '왈칵'과 같은 감정선을 가진 노래다. 떠나지 말고 '그 곳'에 있어달라는 가사처럼, '그 곳에 있어줘'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며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뭔가를 발견한 뒤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그림을 완성한다.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처럼 노래 속의 '너'도 감춰져 있던 연인의 진심을 발견하고 왈칵 쏟아졌던 눈물을 멈추지 않았을까.

 

두 가지 세계의 충돌과 융합, '실리카겔 - 두 개의 달'

   
▲ ⓒ 실리카겔 공식 페이스북

'두 개의 달'은 작년 EP 앨범을 발매하며 데뷔한 실리카겔의 첫 싱글이지만, 정규앨범 못지 않게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 곡이다. 이 곡은 문제적 난쟁이들에 대해 얘기하는 처음과 끝의 나레이션, 그리고 그 사이의 긴 연주로 양분할 수 있다. 각 파트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이질적이지만, 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하게 하나의 곡으로 합쳐진다. 상반된 곡이 충돌하면서 '두 개의 달'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밴드 실리카겔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보컬, 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의 다섯 명과 VJ 3명으로 이뤄진 8인조 시청각 밴드다. 실리카겔의 무대에서는 다섯 멤버가 기괴함과 유쾌함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주하는 동안, 나머지 세 명이 실시간으로 브이제잉을 하며 영상을 만든다. '두 개의 달' 뮤직비디오 역시 곡을 만든 구경모가 각본을 쓰고 두 명의 VJ가 연출을 맡았다. 게다가 연주하는 다섯 명조차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곡을 작곡한다. 소속사의 말처럼 "자칫하다 콩가루 되기 십상"이지만, 이들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경계를 넘나들며 실리카겔만의 곡을 만들어낸다.

그 어디에도 없었던 음악과 공연을 선보이는 이들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 선발되는 등, 데뷔하자마자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두 개의 달'은 이러한 독보적인 신예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명작이 아닐까.

 

흐릿하면서도 선명한 음악과 앨범 발매, '밤신사 - 실화를 바탕으로'

   
▲ '실화를 바탕으로' LP 음반.

작년 12월 카세트테이프로 발매됐던 밤신사 1집 '실화를 바탕으로'가 지난 4월엔 LP로 발매됐다. 타이틀곡 '밤신사'를 제외한 나머지 수록곡은 어느 음원 사이트에서도 서비스되지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의 불공정한 음원 유통과 수익 분배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결정이지만, 카세트테이프와 LP판의 복고적인 이미지는 밤신사의 진솔한 음악과도 딱 맞아떨어진다.

'실화를 바탕으로'는 전체적으로 흐릿한 인상을 주는 멜로디를 가졌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탄탄하게 균형 잡힌 밴드 사운드가 돋보인다. 앨범의 제작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투박한 카세트테이프와 LP로 발매되고 유튜브에서나 전곡을 맛볼 수 있는 신인 밴드의 음악이, 사실은 합숙하며 원테이크로 녹음하고 영국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을 거친 노련한 뮤지션들의 작품이라니. 무심하게 건네는 깜짝 이벤트 같다. 음악도 앨범 유통도 '밤신사' 그 자체다.

 

눈과 귀로 만나는 다채로운 사랑 얘기, '장범준 - 장범준 2집'

   
▲ '장범준 2집' 앨범아트.

지난 3월 발매되자마자 뜨거운 인기를 얻은 '장범준 2집'은 발매되기 전 웹툰 '금세 사랑에 빠지는'의 BGM으로 선공개됐다. '20대의 사랑을 그린 앨범인만큼, 웹툰 역시 갓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의 풋풋한 사랑을 다뤘다. 담백한 그림체로 짙은 감성을 담아내는 박수봉 작가의 만화와 이에 어우러지는 멜로디, 만화 중간에 수록된 가사는 앨범에 대한 팬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즐거운 마지막화가 되길 바란다"는 앨범은 2CD와 만화 400여 쪽이 결합된 구성으로 발매됐다. 앨범은 불완전하기에 가장 설레는 사랑을 다룬 '사랑에 빠졌죠(당신만이)', 좀 더 확신을 가지고 기꺼이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는 '사랑에 빠져요' 등을 통해 20대의 사랑을 섬세하게 노래했다. 두 달간 웹툰을 통해 선명하게 각인된 덕분에, '장범준 2집'은 1만 장 한정 판매가 시작된 즉시 매진됐다.

문화뉴스 김소이 기자 lemipasolla@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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