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인쇄 매체의 쇠퇴라는 문구는 확고한 경향으로 보인다. 정보의 습득과 전달은 인쇄물보다는 액정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걸으면서 앞을 보지 않고 스마트폰에만 눈이 가 있다고 핀잔을 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쉬지 않고 들이닥치는, 손안의 정보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활자는, 이야기는, 여전히 종이 위에서 춤추기도 한다. 사랑받는다. 어느새 2016년 상반기도 저물었다. 올 상반기를 두고 새삼스럽게 책이 사랑받았던 시기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말을 시작하기 전에, 이 정도 표현을 두는 게 좋겠다. 2016년 상반기는 책이 인간에게 사랑받는 대상임을 새삼스럽게 알려준 시기였다고.

2016년 상반기, 우리에게 사랑받았던 책들. 이들은 가상으로든 실제로든 시대를 담았다. 따라서 책으로 2016년 상반기를 되짚어보는 과정은 우리가 건너온 2016년의 반절이 어떤 시간이었는지를 헤아려보는 시도가 될 것이다.

   
 

나는 동의한다 : '필리버스터: 민주주의, 역사, 인권, 자유'

2016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9일간 이어진 제340회 국회(임시회) 본회의는 우리 정치사에 있어 특별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필리버스터'란 의회 안에서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이뤄지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일컫는다. 어감조차 생소했던 이 용어는, 그날의 시간들을 거치며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통해서 각인되었다.

세계 최장시간 필리버스터, 국내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 경신 등을 남기며 끝났던 이 회의는, 3,200명의 국회 방문자 수는 물론 국회방송 시청률, 인터넷 스트리밍 누적 시청자 수 측면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이상 현상을 일으켰다.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해 진행되었던 이 하나의 "사건"은 테러방지법의 통과를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결과의 문제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걸, 필리버스터를 관심 있게 지켜봤던 사람들은 안다. 필리버스터 내내 보였던 의원들의 정치인으로서의 전문적이고 진정성 있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남겼다.

이는 필리버스터 국회 속기록의 판매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필리버스터 기간의 국회 속기록을 펴낸 '필리버스터: 민주주의, 역사, 인권, 자유'는 예약 판매 단계에서 폭발적인 주문량으로 인해 초기의 1000부 인쇄 계획을 3000부 이상으로 늘인 바 있다. 이는 4000부, 그 이상의 판매로 이어졌다. 인문 분야의 서적으로는 놀라운 결과다.

사실 이 책은 "읽을 수 없는" 책에 가깝다. 총 1344쪽이나 되는 분량은 소설이어도 독자에게 소화시키기 힘든 두께다. 더구나 '필리버스터'의 내용은 인터넷에서 요약으로든 영상으로든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가 3만 3천 원씩이나 되는 책이 어떻게 "날개 돋친 듯이" 팔릴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구매자들은 "책으로 엮어낼 만한 가치가 있는" 작업이었다고 동의를 한 것이다. 사두고 읽지 않아도, 책장에 "전시"할 뿐이어도, 책을 산 가치는 있다. 필리버스터 기간의 국회 속기록을 엮어서 내야만 한, 역사적 산물로써의 가치에 동의하는 작업이었으니까. 그렇게 필리버스터는 종이 속에 품어졌다.

   
 

여성혐오를 혐오하기 위하여 : 페미니즘 서적

2016년 상반기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최근 화두로 떠오른 페미니즘 서적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2015년 한 해에는 재밌는 사건이 있었다. '메르스갤러리'의 등장이다. 계기는 다소 뜬금없었다. 작년 메르스 파동으로 인해 '디시인사이드'에 생성된 '메르스갤러리'에서 이른바 '미러링' 행위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남성의 언어로 자행되었던 폭력을 여성이 돌려주는 형식을 취한 '미러링'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통쾌하다고 하는 이들, "메르스갤러리와 일간베스트는 똑같이 위험하다"는 구호를 외치는 이들, 과격한 양상에 불편해하는 이들. '메르스갤러리'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갈리든 해당 공간의 이용자들이 그 "거친" 말하기 방법으로 여성혐오를 끊임없이 세상에 환기시켰음은 분명하다.

이렇게 여성혐오는 비로소 존재로서 "명명"됐다. 존재한다는 건 알지만 이름 짓지 못했던 것, 그것에 이름이 매겨졌을 때, 사람들은 '여성혐오'를 어떻게 "혐오"할지에 대해 눈을 돌렸다. 이후 알라딘을 포함한 인터넷 서점에서 페미니즘을 키워드로 한 기획전을 연 것은 이러한 시류를 반영한다.

세상에 떠도는 여성혐오에 대해 알고,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방법을 알고자 하는 노력은 2016년 상반기에도 계속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발견되어버린" 혐오에 대한 관심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한강, 한국 문학을 웃게 하다 : '채식주의자',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다소 갑작스러웠을 것이다. 맨부커상이라는 이름으로든, 수상 사실 자체로든 많은 사람들에게 "얼떨떨한" 이야기였음은 분명하다. 최종 후보 6인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던 바이지만, 매번 노벨상 낙방을 겪었던 한국인에게 맨부커상 수상이란 성과는 받아들이기에 어색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강은 아버지 한승원의 대를 이은 소설가로, 대중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맨부커상 수상 이후 한강의 이름은 2016년 상반기, 한국 문학에 있어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는 판매율에서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14일 교보문고가 발표한 '2016년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및 결산 발표'(1월1일~6월13일)에 따르면 최근 몇 해 동안 평균 -4% 가량 감소하던 도서 판매가 올 상반기에 전년 동기간 대비 2% 상승으로 돌아섰다.

종합 100위권 내 도서의 전체 판매량은 2012년 이후 내리 하락세를 보이다가 올해 16.1% 상승했다. 평균 판매부수도 1만 부 수준으로 회복했다. 이러한 현상에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평이다. 지난해 신경숙의 표절 의혹으로 난항을 겪었던 창작과비평사는 한강을 통해 활짝 웃었다.

   
▲ '채식주의자'를 쓴 작가 한강(오른쪽)과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왼쪽)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맨부커상 공식 트위터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상황 자체는 조금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한강의 글은 간단치 않다. 다른 작품들과의 우위를 매기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어려운" 면이 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채식주의자'는 그 특유의 "불편함"으로 인해 "읽기 힘든" 작품으로 평이 나 있다. 결코 대중적일 수 없다고 여겨졌던 소설이 대중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출판계와 한국 문학의 환호를 이끌었던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은 어쨌든, 우리가 한강을 "발견"하거나 "재발견"하게 했다. 2016년 한 해를 떠나,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귀한 작가의 이름을 알게 한 것이다.

   
 

초판을 "간직"하다 : 초판본 시집 돌풍

14일 교보문고가 발표한 '2016년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및 결산 발표'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의아한 이름이 하나 껴 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 시집의 이름은, 새삼스럽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사정은 이렇다. 초판본의 디자인을 그대로 표지에 옮겨온,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돌풍을 일으켰던 것. 이와 더불어 김소월의 '진달래꽃', 백석의 '사슴', 김영랑의 '영랑시집',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 한용운의 '님의 침묵' 등이 초판본 디자인으로 출시되었다. 성공의 이유로는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문화뉴스 김미례 기자 prune05@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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