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최재림, 혹은 '포우'와 만나다.

24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가난과 신경쇠약을 동반한 채 어린 시절 어머니 '엘리자베스'의 죽음, 첫사랑 '엘마이라'와의 이별, 아내 '버지니아'의 죽음 등 어두운 삶을 살았던 '에드거 앨런 포'와 그를 시기한 '루퍼스 그리스월드' 사이의 사건을 다뤘다. 최재림, 마이클리, 김동완이 주인공 '포우' 역을, 윤형렬, 정상윤, 최수형이 적대자 '그리스월드'를 맡았고 장은아, 안유진, 정명은, 김지우, 오진영, 최윤정, 최종선, 유승엽 등이 출연하며 김그림이 버지니아 커버 역으로 뮤지컬에 처음 도전하는 것이 알려져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 '에드거 앨런 포' 포스터 ⓒRANG

그런 작품에서 어둡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주인공 '에드거 앨런 포'를 연기한 최재림을 만났다. 캐릭터 이야기를 넘어서 배우에게 묻기 어려운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가 잔뜩 오는 '에드거 앨런 포' 보기 좋은 날씨에 벌어진 최재림과의 인터뷰.

※ 본 인터뷰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에어포트 베이비'에 대한 정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다. 이번 작품에선 공연 기간 중 인터뷰를 많이 안 한 걸로 알고 있다. 어째서인가.

ㄴ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공연이 힘든 편이라 홍보사 쪽에서 체력관리를 위해서 줄여준 것으로 알고 있다.

최재림 배우 처음 봤던 작품이 '넥스트 투 노멀(이하 넥투노)'였다. '넥투노'의 게이브에 대한 애착이 아직도 큰지.

ㄴ 게이브? 여전히 제가 사랑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체력적으로 떨어지다 보니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넥투노'가 또 얼마나 올라갈지. 올라가면 얼마나 할 수 있을지 하고 생각이 든다.

   
▲ '넥스트 투 노멀' 공연 장면

에너지가 넘치는 고등학생 역할이 어울려서 젊은 배우인줄 알았다. 록 사운드를 뚫고 나오는 파워풀한 목소리가 인상 깊었다. 게다가 살아있는 인물이 아니라 연기하기 어려웠을 텐데.

ㄴ 음향 발란스가 좀 안 좋았나 보다(웃음). 현실 인물이 아니다 보니 접근이 좀 쉽지 않았다. 연기는 서로 주고받는 피드백이 있어야 하는데 마지막에 아빠가 있긴 하지만 엄마 외에는 반응하는 인물들이 없으니까 접근의 어려움이 있었는데 게이브란 인물에 대해 생각하고 초연 때를 돌아보며 ‘내가 예전엔 어떻게 했지?’라고 생각했더니 나름대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만들어진 것 같다. 무대에 적응하며 초연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인물이 만들어진 것 같다.

예전 인터뷰를 찾아보니 초연에는 엄마의 환상을 대변하는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고, 삼연 때는 주체적인 캐릭터를 잡아갔다고 했는데 한예종 대학원의 영향이 미쳤나.

ㄴ 영향이 물론 있긴 있을 거다. 대학원을 가기 전과 후의 연기에 접근하는 방법이 많이 달라졌다. 꼭 대학원에서 이렇게 배웠기 때문에라고 할 순 없지만 꼭 그게 아니라곤 할 수 없는 것이 연기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했던 것과 수업을 받으면서 나름 깨달은 게 있고 연기 기법, 상대 배우와의 즉흥 연기, 수업 등을 통해 씬 안에서 호흡을 가져가는 것들. 이런 훈련을 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대본을 보는 방법이나 무대 위에서 상대 배우와 호흡하는 부분 등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부분이 지금까지 계속 영향을 주고 있겠다) 연기에 접근하는 방법이라거나, 대본 분석 능력 등은 배우기 전보다 향상됐으니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 '에어포트 베이비' 공연 장면

그다음은 '에어포트 베이비'였다. 조씨 코헨은 무대에서 퇴장도 거의 없고 극을 이끌어가는 사실상 원톱 작품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조씨 코헨'을 연기한 소감은.

ㄴ 공연은 2주였지만 창작지원을 받아 올라간 공연이었다. 준비 기간은 굉장히 길었다. 전체적인 공연 준비 기간은 8년 정도에 제가 참여한 기간도 2013년부터 3년 정도. 그래서 조씨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들인 시간은 무척 길었다. 한예종 졸업작품으로 시연하며 처음 만났는데 그때는 많이 달랐었다. 저도 같은 인물을 계속 반복하며 만나고 대본이 개발되고,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계속 맞추며 이해도가 높아진 것 같았다. 마치 이것과 비슷하다. 같은 공연을 계속하다 보면 전작에서 놓쳤던 것, 아쉬웠다고 생각되는 부분, 좀 더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채워지고 그림이 선명해지면서 인물이 발전해왔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2주 동안 공연하며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조금씩 만들어져온 인물을 공연한 거다.

어설프게 '한국말을 연기하는' 조씨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연기의 비결이 있는지.

ㄴ 제가 따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주변 사람들 특징을 따라 하는 것. 꼭 연예인이나 가수 모창이 아니라 주변 사람 흉내를 좋아하는 데 처음 어설픈 한국말을 연기할 땐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하는 것을 많이 모방했다. 근데 흉내 내다 보니 점점 어설픈 한국말을 '과장되게' 하는 지점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진 않을 텐데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본 공연 하기 전에 2015년 5월에 리딩 시연을 했었다. 그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이하 지크슈)'를 연습할 때라 마이클리 형과 처음 작업을 할 때였다. 마이클리 형이 한국말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닌데 자기만의 억양이 있지 않나. 그래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그렇지. 한국말을 배운 미국 사람은 저렇게 말을 하겠지. 지나치게 강조해서 이야기하지 않지.' 하고 느꼈고 이외에도 이것저것 많이 참고했다. 비결이 딱히 있다기보단 한글과 영어의 어순이 다르다는 것. 된 발음과 일반 발음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듣기에는 ㄱ 이나 ㅋ 이나 똑같이 k 발음으로 들린다는 것. 그런 하나하나의 디테일, 외국인이 느끼는 한국말의 뉘앙스를 많이 생각했다.

   
▲ 마이클리 배우의 '에드거 앨런 포' 공연 장면 ⓒRANG

마이클리 배우와는 그때부터 알게 됐나.

ㄴ 2009년, 10년쯤 KBS '음악 창고'란 프로가 있어서 그때 처음 봤고 작업을 같이 한 게 '지크슈'부터였다.

마이클리, 김동완 배우를 모니터하며 느낀 점이 있는지.

ㄴ 두 배우다 장점이 많다. 마이클리 형은 경험이 많고 인물을 해석하면서 깊게 들여다보는 눈이 있다. 어떤 상황을 줬을 때 일반적인 접근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말로 설명하려니 어렵다(웃음). 연기하는 정서가 무척 깊다. 어떻게 보면 무대 위에서 하는 제스쳐, 눈빛, 손짓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는 대단한 배우다. 동완이형은 자기가 무대 위에서 하고 싶은 호흡을 다 쓸 수 있는 자유로운 배우다. 연기할 때 굉장히 대담한 선택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들이 효과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을 보면 저런 자유로움과 담력을 보면 연예인으로서 오랫동안 활동한 구력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다.

   
▲ 김동완 배우의 '에드거 앨런 포' 공연 장면 ⓒRANG

한예종 대학원 입학 후 작품을 보면 '넥투노'는 살아있지 않은 사람, '에어포트 베이비'는 유대인 집안에 입양된 한국인, '지크슈'에선 유다, 이번 '에드거 앨런 포'는 천재 문학가다. 어려운 캐릭터들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캐릭터를 고르는 기준이 뭔가.

ㄴ 작품과 캐릭터에 흥미를 느껴야 한다. 연기를 예로 들면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동네 아저씨, 동네 형, 친구를 연기하는 것보단 만나기 힘든 인물들, 일상적이지 않은 인물,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 회장님(웃음), 동네 노숙자인데 알고 보면 수학천재라거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훨씬 흥미롭지 않나. 퍼즐을 풀어도 3x3줄짜리보단 100PCS짜리 맞추는 게 더 재밌고, '틱택토'보단 '스트리트파이터'가 긴장감이 넘치고. 그런 정도의 차이인 것 같다. 예가 너무 별로인 것 같다(웃음). 도전의식이 더 큰 것, 모험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흥미가 가지 않는가 싶다.

이야기 보니 특별히 캐릭터의 선정 기준이 예전보다 변하거나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ㄴ 좋은 퀄리티가 있는 작품. 배역의 크기보다는 그 안에서 재미있는 배역. 흥미가 가는 배역 위주로 골라왔던 것 같다.

'넥투노'는 굿맨 패밀리의 이야기, '에어포트 베이비'도 입양아의 가족 찾기, '에드거 앨런 포'도 '엄마'나 '버지니아' 등이 중요하다. 세 작품 모두 가족에 관한 이야기인데 가족에 대한 애착이나 특별한 코드가 있는지.

ㄴ 대부분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니 생각의 일반화를 하는 건 다소 성급하겠지만(웃음) 제게는 가족이 무척 중요하다. 나름 화목하게 자라고 엇나감 없이 자라왔다고 생각한다. 말로 표현하거나 자주 집에 찾아가진 않아도 가족을 굉장히 사랑한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제겐 따듯하고 언젠가는 내 가족을 가지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물론 지금도 박칼린 선생님, 오민영 음악감독님, 전수양 작가님. 사회에서의 가족이 있다. 나의 영역에 속하는 울타리를 만들고 싶은 생각. 안정성을 추구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가족과 관련된 작품을 골랐나(웃음). 그냥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다.

   
▲ '에어포트 베이비' 기자간담회 중 박칼린 연출

방금 언급한대로 평소 박칼린 연출이나 오민영 감독, 전수양 작가와 특별한 친분을 이야기했는데.

ㄴ 세분과는 정말 가족이다. 매일 보고 매일 이야기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이야기한다. '내년에 같이 뭐하자' 이런 이야기를 하기보단 매일매일, 같이 여행을 가고, 집에서 잔디를 깎고, 모여서 요리를 해먹고, 끊임없이 무엇을 같이 하는 연장선에 있다. 그게 일 적으로 간다면 '에어포트 베이비'를 또 올리게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작품이나 '넥투노'를 다시 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는 것처럼. 박칼린 선생님은 이 모임을 '이너서클'이라고 부르는 데 이 안에선 항상 뭐든 같이 하려고 노력한다. 뭐든 나누려고 하고, 운전을 대신 해주거나 일하는데 김밥이라도 사다 줄 수 있고. 공연이나 행사로 바쁠 땐 선생님이 직접 운전을 해다 주시기도 할 정도다. 서로 항상 챙겨주고 크건 작건 도울 수 있는 부분을 늘 생각한다.

진짜 또 하나의 가족인 것 같다.

ㄴ 그렇다. 어찌 보면 진짜 가족보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기도 하고(웃음)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이 올라올 계획은 없는 건가.

ㄴ 제가 알기론 아직은 없다. 저는 배우의 입장이고 제작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또 하게 된다면 '이쯤 해서 작품이 올라갈 텐데 어떠냐'하고 기존 배우나 스탭과 이야기를 할 거 같다. '넥투노' 같은 경우 공연 시작하며 삼연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다. 하지만 그동안 한 것 중에 제일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배우들 입장에선 '또 올라갈 수도 있겠구나' 하고 추측만 하고 있다.

공연도 분명 돈이 오가는 상업적인 작품이니 흥행 이야기를 안 할 순 없겠다. '넥투노'의 경우 제주 공연이 계획됐다 취소된 것으로 안다.

ㄴ 다들 아쉬워했다. 제주도 갈 수 있었는데(웃음).

제주에서 공연해본 적이 있나.

ㄴ 아직 없다. 제주도에서 행사는 한 번 해봤다.

제주도는 공연 기회가 많이 없는 것 같다.

ㄴ 제주도에 가는 이유가 대부분 관광하러 가지 않나. 자연, 좋은 음식, 여유로움을 즐기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다. 제주도를 가는 일 자체가 하나의 휴양인데 거기까지 가서 공연을 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거다. 부산, 제주, 대구, 전라 등 지방은 아무래도 공연문화가 자리 잡기에는 다른 재밌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아쉬운 일이다.

작품의 상업적인 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ㄴ '잘되면 좋은 것' 아닐까. 배우가 공연 외의 사업에 대한 비즈니스적인 부분까지는 생각하기 어려운 거 아닐까 싶다.

이제 단순히 공연을 즐기는 것 외의 다른 컨텐츠, 상품 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ㄴ 그런 차이점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브로드웨이에서 올라가는 공연은 관광객을 위한 공연이다. '브로드웨이'라는 명소를 구경하러 오는 세계 각지의 관광객을 위해서 공연이 올라가는 곳. 하지만 한국은 내국인을 위한 공연이란 차이점이 있다. 나머지 공연 외의 컨텐츠는 이제 조금씩 발전하는 중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전에는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이젠 뮤지컬 관객층도 많아졌고, 점점 더 개선되지 않을까 싶다.

   
 

왜 이 질문을 꺼냈냐면 '에드거 앨런 포' OST 내달라는 요청이 많다(웃음)

ㄴ 제가 배우니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안다. 창작 뮤지컬이면 그냥 만들면 그만인데 라이선스 작품이지 않은가. 그래서 특히 OST는 라이선스 관련된 비용이나 계약 절차가 복잡한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제작사 입장에선 OST를 만들고 싶겠지만, 이런 문제로 가격도 비싸지고 공연 기간이 길어야 6개월, 3개월 혹은 2주 정도인데 그 안에 OST를 또 따로 만들어서 팔고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들었다. 그리고 배우 입장에서는, 인간적으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웃음) OST를 따로 녹음하는 일은 정말 힘들다. 공연과 달리 좋은 곡을 위해 계속 녹음을 다시 해야 하고, 실황의 경우에는 또 모든 캐스트 조합을 고려해서 내야 하고. 여러모로 쉽게 '만들자'하고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돈 이야기를 너무 많이 물어본 것 같다(웃음). '에드거 앨런 포' 이야기로 돌아가면 '포우'는 리뷰에서 짚었듯이 옷 색깔로 나눠봤을 때 '포우'만이 색이 있는 옷이고 나머지는 흰색 옷과 검은 옷만 입고 등장한다는 점에서 등장인물들이 사실 '나'와 '나머지'로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포우'에게 '그리스월드'도 '나머지' 중 하나로 보였다. '얜 뭔데 날 괴롭히지?' 랄까. 최재림이 생각하기에 '포우'가 보는 '그리스월드'는 어떤 느낌인가.

ㄴ 위선자다. 위선자. 어떤 열려있는 시선을 갖지 못한 사람. 본인의 시선에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하는 사람. 가사와 대사에 모든 생각이 담겨있다. '예술의 본질을 이해 못 하는 자. 권력을 좇는 자' 그 시대에 종교가 가진 힘이 매우 컸다. 청교도 사상은 매우 엄격했고, 사상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고 예술, 일, 성생활 등 모든 것이 신에게 다가가는 도구로 쓰였다. 나 자신을 깨끗하게 만들어서 신에게 바치기 위한 도구. 그 세상 자체가 '포우'에겐 싫었을 것 같다. 위선적이고 자연의 본질을 거스르는 행위로 보였을 텐데 그 중심에 있는 목사가 당대 예술을 휘어잡는 평론가, 문학가로서 군림하고 있다. 그런 '그리스월드'가 나의 글을 무시하고 나를 하찮게 보는 것이 어떤 역겨움, 분노로 다가왔을 것 같다. 열등감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그의 글을 비평하고 독설을 내뱉고 했던 것 같다.

   
▲ '에드거 앨런 포' 공연 장면 ⓒRANG

실제 인물은 '포우'보다 '그리스월드'가 나이가 어리고, '버지니아'의 경우도 실제 나이 차이가 크게 났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에서 그런 나이 설정은 어떤 영향을 미쳤나.

ㄴ 작품에서 나이 언급은 없지만, 배우들이 실제 사실에 따라서 연기했다. 그렇다고 '버지니아'의 경우 일부러 어린 연기를 하려고 하진 않았지만, 실제 인물이 몇 살이고 몇 살 때 이런 일이 일어났고 하는 부분은 인식하고 연기했다. 지금 관점에서 보기엔 '버지니아'와의 나이 차이, 사촌 관계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을 수 있지만, 역사적 사실과 그 시대의 문화를 고려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버지니아'가 죽으면서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 날 동정했던 거지'라고 생각한게 실제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부분이 반영됐다고 볼 수도 있나.

ㄴ 어, 옆 대기실에 은아 누나가 있는데 한 번 물어봐야 하나(웃음). 연출님이 원하신 부분은 '버지니아', '엘마이라', '엄마' 이 세 명의 여성이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포우'의 인생을 지배했다. '포우'는 '엘마이라'와 '버지니아'에게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 거다.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이 이성적으로 다가온 것이 '엘마이라'고, 내가 너무 어릴적 병으로 돌아가신 '엄마', 하지만 이젠 내가 어른이 돼서 지켜줄 수 있는 부분이 투영된 게 '버지니아'였고. '버지니아' 입장에선 아픈 모습을 동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포우' 입장에선 꼭 동정이 아니라 이 여자를 보호해야 하므로, 이 여자는 내가 보호해야 하고, 나는 이 여자를 사랑하니까 결혼했다고 생각한다. 사랑 대신 동정이 아니라 사랑의 형태가 달랐다고 할까.

   
▲ '에드거 앨런 포' 공연 장면 ⓒRANG

박영석 대표 인터뷰를 보면 공연 중 계속해서 피드백을 받고 있다고 했는데 혹시 공연 초반과 연기가 달라진 부분이 있나.

ㄴ 아니다. 그렇지 않다. 깊이가 더 깊어질 수는 있지만, 배우들이 자기 맘대로 공연 중 연기를 바꾸는 경우는 절대 없다. 연출의 의도, 음악감독의 해석 하에 만들어진 공연이다. 그 위에 안무 감독의 동선 하에 이루어진 합이고. 그런데 어느 날 배우가 '어 나 이게 이건 것 같다'하고 바꿔버리면 공연 자체가 달라지기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연습 때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 디렉션을 받았지만 이해가 부족해서 노력해도 안개가 껴있던 부분이 공연하면서 명확해질 수 있다. 관객이 느끼기엔 '어 연기가 달라졌네?' 할 수 있지만, 배우 입장에선 더 명확해진 거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 움직이는 이유, 행동에 대한 정확한 정당성이 생겨서 달라져 보이는 거다. 제작사 입장에서의 피드백과는 다른 부분이다. 다음 프로덕션 준비하면서 대본, 무대, 의상 등 여러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들이고. 같은 배우가 같은 프로덕션에 들어간다면 같은 연출이 할 땐 더 깊어질 수도 있고, 다른 연출이 하신다면 그 연출의 해석을 또 따라가게 될 거다.

   
▲ '에드거 앨런 포' 최재림 프로필 이미지 ⓒRANG

그렇다면 초반 공연을 보신 분들에게 '깊어진' 포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이야긴가.

ㄴ 초반에 보셨던 분이라면 지금 또 오신다면 저뿐 아니라 전체적인 공연. 각 인물이 공연과 밀접한 상태로 본래 인물에 가깝게 그 인물의 옷을 입은 상태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공연 초반에는 시작하는 흥분감, 설렘, 밀어붙이는 힘이 있었다면 지금은 격양됐던 에너지가 침착함으로 바뀌면서 배우들이 스스로 컨트롤하는 에너지로 더 높아진 긴장감과 밀도를 볼 수 있을 거다. 관객에게 '퍼주는' 에너지가 아니라 관객을 '잡아당기는' 공연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번 더 보러 와달라'(웃음)

ㄴ 당연하다(웃음). 한 번 더 보러 오시면 정말 감사하다.

2017년 재연 이야기가 벌써 나왔다. 들은 적 있나.

ㄴ 박영석 대표님에게 지나가며 듣긴 했다.

한 번 더 '포우'를 연기할 의향이 있는지.

ㄴ 저를 불러주신다면 당연히 감사히 해야 한다. '다시는 안 해' 이런 일은 정말 드물다(웃음). 그런 상황이 정말 많지는 않은 데 있다면 작품이 배우와 안 맞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한 번 맡았던 역할은 또 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인터뷰 헤드라인은 ''포우' 한 번 더 하고 싶다.'

ㄴ '포우' 연기는 정말 힘들긴 하다(웃음)

'에드거 앨런 포' 공연이 정말 힘들긴 하다. 목 관리를 안 한다고 들었는데 여전한지.

ㄴ 특별히 없다. 잘 쉬려고 할 뿐이지. 마사지를 받는다거나 꼭 뭘 챙겨 먹는다거나 그런 게 보통 '목관리 방법'을 묻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특별히 그런 일은 없다. 그냥 잘 먹고 잘 쉬려고 한다. 날씨가 무거워서 식욕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그날그날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공연 전 날은 컨디션 관리하려고 하고, 공연 후엔 몸이 피곤하니까 일상에 지장 없게끔 일찍 자려고 한다.

기본적이지만 꼭 지켜야 할 것들.

ㄴ '집에 가면 꼭 날달걀에 설탕을 뿌려 먹습니다.' 그런 관리는 안 한다(웃음)

내가 연기하는 '포우'에서 특별히 어떤 장면이나 어떤 연기를 더 집중해서 봐달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

ㄴ 특별히 '이 부분에서 이 장면을 봐달라'는 것은 없다. 어느 한 부분이 특출나게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공연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의 흐름, 인물이 변화되는 과정을 관객이 잘 따라오실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제 의무이자 공연에서의 목표기 때문에 그걸 최대한 잘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관객이 잘 보셨다면 '내가 할 일을 잘했구나' 하는 거고, 그 날 그 부분을 실패했다면 무대에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거고. '특정 부분을 유심히 봐주세요.' 하는 부분은 없다.

   
▲ 뮤지컬 '트레이스 유'에 출연하는 최재림 ⓒ장인엔터테인먼트

트레이스 유 연습도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작품인가.

ㄴ 두 남자의 이야기고, '이우빈'이란 캐릭터를 맡았다. 홍대 락클럽의 운영자다. 저랑 가까운 사이인 '구본하'가 나온다. 이야기를 꺼내면 굉장히 스포일러가 많은 극이라서 자세히는 어렵다.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들이 나오고 제 캐릭터는 큰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비밀을 '구본하'에게 감추고 싶어 하며 또 폭로하게 되는.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고, 락클럽이 배경이라 락 음악도 많이 나오고 마지막의 반전까지 굉장히 재미있는 공연이 될 것 같다.

못해본 배역이 있다거나,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가.

ㄴ 예전에는 '뭐 하고 싶다. 뭐 하고 싶다.'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제가 좀 머무르지 않게, 배우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뒤쳐지지 않게 스스로를 계속 나아가게끔 하는 일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작품이든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이거나, 제가 공부를 더 한다거나 어떤 선택을 하면서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많이 생기는 게 제 바람이다.

SNS 열심히 하시는 것 같다.

ㄴ 눈팅 위주다(웃음). 공연하면 홍보도 하고(웃음). 친구수락 열심히 하고.

그럼 뮤지컬 외에 관심이 있는 분야가 또 있는가.

ㄴ 어렸을 땐 만화랑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아했다. 근데 거기 뺏기는 시간이 너무 많아져서 안 보고 있다. 영화 보는 것, 놀러 다니는 것, 여행하는 것, 친구들과 술 한잔하는 것 다 좋아한다. 하지만 컨디션 관리를 위해서 안 하고 있다(웃음). 마지막인데 좀 슬픈 답변이 됐다.

공연에서 팬의 존재는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에드거 앨런 포'는 여러 번 보는 열정적인 팬들이 많이 봐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을 사랑해주시는 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면.

ㄴ 우선 첫 번째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다. 어찌 보면 작품의 숨은 매력이랄까. 예를 들어 조명, 작품의 분위기, 인물의 개성 등 세세한 부분을 사랑해주시고 또 보러와 주시고. 캐스트마다의 매력을 찾아서 봐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고 대단하다고 느낀다. 또 최재림이라는 배우를 좋아해서 찾아와주시는 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항상 관객 여러분이 할애하신 시간과 돈에 누가 되지 않게 계속 열심히 공연하겠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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