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현장 취재기

   
▲ DIMF 개막작 '금발이 너무해'의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문화뉴스] "대구의 뮤지컬 열기가 뜨겁다"는 말은 매해 들어왔던 이야기였다.

 
어디서 먼저 공연이 시작되는 것이 '곡성'의 명대사인 "뭣이 중헌디?"와 비슷하지만, 서울보다 대구에서 먼저 열리는 대형뮤지컬의 수가 늘고 있다. 12일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될 '위키드'는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먼저 막을 올렸다. 또한, '렛잇비', '레미제라블', '아마데우스' 등 대형뮤지컬이 서울보다 대구에서 먼저 공연됐다.
 
이러한 대형뮤지컬들이 서울이 아닌 대구를 먼저 선택한 이유로 DIMF의 성장을 꼽는 이들이 늘어났다. 지난 5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0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기자간담회 사회를 맡은 배우 이건명은 "무대 예술은 객석과 배우의 교감으로 이뤄진다"며 "대구의 남다른 뮤지컬 사랑 때문에, 대구 공연을 갈 때면 배우들끼리 설레는 감정을 서로 나누고 있다. DIMF의 힘이 큰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DIMF가 만든 창작뮤지컬 '투란도트'에서 '칼라프'를 연기한 그의 말이 사실인지 궁금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으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약 1시간 50분이 걸리는 대구로 떠났다. 대구를 방문한 날은 축제 중반부인 2일과 3일이었다.
 
   
▲ 대구의 중심부인 동성로에서 발견한 'DIMF' 작품 현수막.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대구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동성로를 찾았다. 동성로 인근엔 CGV 대구, 롯데시네마 동성로를 비롯한 영화관과 봉산문화회관, 문화예술전용극장CT 등 공연장들이 운집해 있는 대구 문화의 심장부이기도 하다. 이곳엔 DIMF 상연 작품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현수막은 뮤지컬을 보지 않는 시민이라도 한 번 정도는 쳐다보고 지나갈 수 있는 거리마다 볼 수 있었다.
 
근처 한일극장 앞엔 DIMF '만원의 행복' 특별부스가 자리 잡았다. 평일 오후 6시에서 8시까지,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진행되는 '만원의 행복' 특별부스는 공식초청작 5작품, 특별공연 4작품, 창작지원작 5작품 총 14작품 등 DIMF의 유료작품 모두를 만원에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뮤지컬은 비싸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단돈 만원으로 뮤지컬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이벤트 티켓 '만원의 행복' 행사는 2009년 제3회 DIMF부터 진행됐다. 더욱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게 하도록, 작품당 1인 2매로 구매 수를 제한했다.
 
   
▲ DIMF '만원의 행복' 특별부스 옆면엔 이번 축제 기간에 선보여진 작품이 소개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국적인 장마로 인해 주요 행사가 우천 취소됐다. 2일 오후 안지랑 곱창 골목에서 공연이 예정된 '딤프린지' 행사 역시 그중 하나였다. 시민 예술단과 DIMF 뮤지컬스타 입상자, 본선 진출자를 중심으로 대구 곳곳을 누비는 행사였기에 더욱 아쉬웠다. 하지만 '딤프린지'는 축제 기간 서문시장, 평화시장 등에서 진행되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오후부터 대구엔 다시 비가 쏟아졌다. 뮤지컬은 실내 공연이기 때문에 관람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교통 혼잡 등 '뮤지컬 축제'를 즐기기엔 적합한 날씨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우에 그쳤다. 개막작인 '금발이 너무해'의 마지막 날 공연 한 시간을 앞둔 시간.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로비는 이미 공연을 즐기러 온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박정숙 DIMF 총괄운영실장을 만날 수 있었다. 박 실장은 "2006년 프레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2007년부터 DIMF가 계속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 이게 과연 몇 년 갈 수 있겠느냐고 걱정했다. 10주년 무대를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걸 보면 뿌듯하다"고 입을 열었다.
 
   
▲ 대구오페라하우스 앞 광장엔 DIMF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및 포스터, 배우들의 손도장 등이 전시됐다.
 
박정숙 실장은 "축제가 끝나고 다른 지역에서 얼마 정도의 관광객이 오는지 조사하고 있다"며 "아직 수치는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았지만,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다른 지역에서 오는 관객이 많은 것 같다. 그런 분을 위해 숙박과 공연관람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다양한 패키지 상품이나 대구 관광 연계, 코레일과 관련한 KTX 할인도 제공하고 있어서 많은 이들이 관심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발이 너무해'의 개막작 선정 배경에 대해 "DIMF 10주년을 맞이해 모든 시민들이 공연을 보고 즐겁고 흥겨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개막작 선정에서 가장 큰 포인트였다. 총 10회 공연인데 티켓을 구하지 못해 난리가 난 분도 계신다. 그만큼 '금발이 너무해'에 대한 성과는 대단한 것 같다"고 답했다.
 
과연 어떤 작품이기에 '금발이 너무해'는 관객의 사랑을 받았을까? '금발이 너무해'는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2001년작 영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다. 2007년 미국에서 뮤지컬로 처음 만들어졌고, 비영어권 국가 중 2009년 한국이 처음으로 공연되어 소녀시대 제시카가 금발 미녀 주인공 '엘 우즈'를 연기했다.
 
   
▲ 공연 30분 전, 대구 오페라 하우스 로비엔 관객들로 가득찼다.
 
이번 공연은 2015-16 EPL 우승팀인 레스터 시티의 홈 경기장에서 3km 거리에 있는 '커브 시어터' 프로덕션 팀이 내한했다.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인 '엑스 팩터' 출신의 뮤지컬 스타 루시 존스가 5월 현지 공연에 이어 대구에서도 '엘 우즈'를 맡았다.
 
1막은 '엘 우즈'의 남자친구 '워너'가 자신은 미래지향적인 여자와 함께 꿈을 이루고 싶다며, '엘 우즈'가 금발이라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서양에선 "금발은 멍청하다"라는 과학적 근거도 없는 속설을 믿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엘 우즈'는 낙담하지 않고, '워너'를 다시 차지하고 결혼하기 위해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한다. 그러나 로스쿨엔 금발 미녀에 대한 편견을 이겨내고자 열심히 살아가는 '엘' 만큼이나 똑똑하거나 '금수저' 집안의 학생들로 가득하다.
 
   
▲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의 한 장면. 루시 존스(가운데 분홍색 옷)가 '엘 우즈'를 연기했다. ⓒ DIMF
 
하지만 '엘 우즈'는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결국 까다로운 '캘러한' 교수의 인턴으로 채용되며, '캘러한' 교수의 소송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엘 우즈'는 사회적인 편견에 맞서 싸우는 지혜를 얻게 된다.
 
메인 테마곡인 'So Much Better'가 끝나고 난 후 열린 인터미션에서 지나가던 한 관객은 "정말 재밌다 아이가"라고 외치기도 했다. 5월 영국 공연과 비슷하게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는 꾸며졌다. 마치 투시도면을 보는듯한 핑크색 무대는 브로드웨이 쇼처럼 크게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소품들은 아기자기했다. 그리고 배우들의 노래는 주·조연 가리지 않고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공연 커튼콜이 끝나고 배우들은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와 단체 사진을 찍고, 관객들과 다시 한 번 호흡하는 시간을 가졌다. 관객들은 배우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관객과 배우, 모두가 함께 뮤지컬을 즐겼다는 점은 매우 인상 깊었다. '뮤지컬의 도시'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 루시 존스를 비롯한 '금발이 너무해' 출연진이 마지막 공연 후 단체사진을 찍었다. ⓒ 루시 존스 인스타그램
 
루시 존스 역시 본인의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엘 우즈'를 연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재밌다. 그녀를 통해 나에 대해 더 알게 됐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됐다. 이번 공연을 본 모든 한국 팬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다음날인 3일에도 대구엔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이날 봉산문화회관 가은홀에선 DIMF 창작지원작인 '로렐라이'의 마지막 공연이 펼쳐졌다. 진정한 '뮤지컬 도시'라면 창작지원작과 같은 소소한 매력이 있는 작품에도 관객이 꽉 차야 하지 않겠냐는 검증 아닌 검증을 위해, 한 시간 전부터 근처 카페에 앉아 관객의 입장을 지켜봤다.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졌고, 우산을 접으면서 들어오는 관객들이 하나둘씩 입장했다. 좌석 뒤편에서 공연을 관람할 때는 객석에 빈자리가 없어 보였다. '로렐라이'는 독일 라인 강 바위 언덕에서 아름다운 자태와 노래로 뱃사람을 홀린다는 로렐라이 전설을 모티브로 한 판타지 뮤지컬이다. 가상의 항만도시 '카르마'를 배경으로 전설이 새롭게 재해석 된 작품이다.
 
   
▲ 뮤지컬 '로렐라이' 마지막 공연 후 배우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DIMF가 앞으로 이런 창작 작품에 대한 지원을 넓혀가고 있으며, 제2의 '투란도트'를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기회였다. 관객들도 커튼콜에 많은 격려의 박수를 배우들에게 전해줬다.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서울에서 대구까지 온 20대 여성 관객은 "창작지원작이라서 대학로에서 봤을 때보다 좀 더 나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렇진 않아서 아쉬웠다. 하지만 내용과 넘버를 좀 더 수정한다면 좋은 작품이 될 것 같다"며 "DIMF가 좋은 취지로 뮤지컬 창작 작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방문 소감을 남겼다.
 
올곧게 성장하고 있는 DIMF는 이제 '겨우' 10살이다. 사람으로 치면 걸음마를 뗀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사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때다. DIMF 배성혁 집행위원장은 "과거엔 직접 섭외를 하면서 많은 부분을 설명했지만, 이제는 외국 많은 작품이 참여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이 온다"며 "차후 10년이 지나면,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처럼 참가작들이 공연장을 직접 빌려서 공연하는 자신감도 생기고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 공연이 시작되기 30분 전, 봉산문화회관 가은홀의 풍경.
 
한편, 최근 인근 지역에서 열리는 '선배' 문화축제들이 위기에 빠졌다. 거창국제연극제가 개최를 포기한다는 내홍 끝에 진행 중이고,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정상적 개최를 놓고 난항에 빠졌다. 대구뮤지컬페스티벌에 대해서도 여러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배성혁 집행위원장도 "위 사태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며 "전 세계엔 여러 뮤지컬 페스티벌이 있지만, 제작자, 극장주, 투자자 등 전문가를 위한 축제가 대부분이다. DIMF는 규모 면에서 예산은 적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고 한다. 창작지원작을 무대에 세우는 것도 국내에서 처음 시작했지만, 그 지원 금액에 대해 욕심이 차지 않는다"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밝혔다.
 
11일 오후 'DIMF 어워즈'를 끝으로 10번째 축제를 마무리할 DIMF는 대구광역시 지원금 19억원, 국비 지원금 5억원 등을 포함해 모두 30억원가량의 예산으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지역 축제로는 적지 않은 금액이나, 서울에서 열리는 대형뮤지컬 예산 약 100억에 비하면 부족한 비용이다. 문화융성 시대, 대구를 넘어 세계로 나가는 뮤지컬 축제를 위해 좀 더 안정된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 "다시 오고 싶다"라는 말이 진심으로 우러나올 수 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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