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동숭아트센터를 매진시켰나. 그들이 밝히는 '라흐마니노프'

[문화뉴스] 21일부터 8월 25일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오세혁 연출, 박유덕, 김경수 배우와 함께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실존 음악가 '라흐마니노프'가 1897년 초연된 교향곡 1번이 평단의 혹평을 받으며 신경쇠약이 심해져 작곡을 하지 못한 3년 동안에 주목했다. 그때 그를 치료해 준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와 라흐마니노프의 만남을 그린 창작 뮤지컬이다. 오세혁 연출의 첫 뮤지컬 작품으로 주목 받았다. '라흐마니노프' 역에 박유덕, 안재영, '니콜라이 달' 역에 김경수, 정동화가 출연한다.

힘들게 진행한 인터뷰였다. 프리뷰 티켓이 오픈 직후 매진(휠체어석 4석 포함 452석)됐다는 소식을 듣고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라흐마니노프' 팀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반적인 인터뷰와 달리 작품에 관한 정보가 공개된 것이 적어서 자유롭게 3인에게 이야기를 맡겼다. 햇볕이 뜨거운 어느 날, '라흐마니노프'와 만난 평소보다 조금 더 긴 인터뷰.

   
 

우선 프리뷰 티켓 매진에, 1차 티켓도 흥행 중이라고 들었다. 팬들에게 감사 인사 부탁한다.

ㄴ 오: 제 팬은 별로 없어 보이니 배우분들이 하시는 게 좋겠다.

ㄴ 박: 우선 감사드리고 저 때문에 표가 많이 팔린 건 아니니까 같이 하는 배우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다. 그 보답에 성원하게끔 프리뷰 기간이지만 본 공연인양 퀄리티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고민해서 하겠다. 많이,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다. 감사드린다.

ㄴ 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많이 놀랐고 역시 '라흐마니노프'의 힘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저희도 많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준비해서 좋은 작품 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겸손하신 것 같다(웃음). 다들 자기 덕분은 아니라고….

ㄴ 오: 이 작품이 그런 작품인 것 같다. 어떤 솔직한 자신을 알게 되는 작품이라 겸손해지는 것 같다. 저도 요즘 성격이 변했다. 작업하는 것이 있으면 막 자랑하고 홍보하는 걸 좋아했는데 이번 작품은 그렇게 못하겠다. 작품 자체가 진심이 담겨있고 실화다 보니 예전처럼 까불지 않게 되고 진심으로 다가가게 되고, 부정을 탈까 봐 조용히 지낸다. 술도 집에서 마신다(웃음). 정말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있다.

니콜라이 달 박사의 이야기도 정말 실화인가.

ㄴ 오: 정말 실화다. 단지 한 줄의 기록이 남아있다. 니콜라이 달 박사(이하 달)가 라흐마니노프(이하 라흐)에게 심리치료를 했다. '당신은 좋은 작곡가고 당신은 좋은 곡을 쓸 수 있다.'라고 매일매일 이야기해줬다더라. 별것도 아닌 한 줄이지만 계속해서 읽다 보니 용기가 생겨 쓰게 됐다. 달은 라흐를 치료해준 의사기도 하지만 가장 가까운 팬, 관객이란 느낌으로도 생각이 됐다. 그래서 요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실화 기반의 이야기라면 상대적으로 극적인 사건이 적다 보니 재미가 없을 수도 있는데, 극적 개연성, 재미에 대해 고민한 부분이 있는지.

ㄴ 오: 딱 한 줄만 남아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이 실화를 관객에게 보여줄 때 어떤 면을 보여줄 것인가. 그래서 라흐와 달 간의 진심을 최대한 우리가 고민해서 전달해보자고 했다. 그 진심은 사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과 마음이 흐르고, 변하는 과정이 있었겠지 않나. 때론 말이 없어도 변하기도 했고. 그래서 그 단계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웃음이나 유머가 흐르더라도 억지스러운 코믹이 아니라 둘의 부족하거나 때론 힘들고 아프기도 한데서 나오는 웃음. 감동이란 것도 마음이 통하는 순간의 포인트를 찾으려고 했다. 이상할 수도 있는데 노래와 음악이 흐르는 속에서 말을 하지 않아도 될 순간이 온다 싶으면 대사를 비워내고 있다. 둘이 이야기를 많이 했겠지만, 이야기만으로 치료된 것은 아닐 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서로 통하는, 공기가 달라지는 순간이 있었을 테고 그 순간을 찾고자 한다. 공연 때까지 잘 찾아질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

   
 

실제로 연습을 하는 배우들 입장은 어떤가.

ㄴ 박: 같은 곳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연습은 어떤 연습보다 굉장히 수월한 느낌이다. 잘 순항하고 있다는 생각. 오 연출님이 말하는 것, 라흐와 달이 보는 것, 음악 감독님이 보는 것. 다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보는 방법이 다를 순 있다. 선글라스를 쓰고 보거나 안경을 쓰고 보거나 하면서. 하지만 목표는 같은 것 같다. 그래서 작업이 재밌게 진행되는 것 같다. 열띤 토론도 하고, 가끔 우스갯소리를 하다 길을 찾기도 하고. 갑자기 침묵이 오다가 '어 이게 좋은 것 같은데?' 하고. 그래서 전 굉장히 맘 편하게, 재밌게 어떤 작업보다도 쉽게 접근하고 있다.

ㄴ 김: 연습과정이 그래프가 확실하다. '대박->어떡해?->오 너무 좋은데?->아… 큰일 났네…' 이런 부분이 있어서 오히려 재밌는 것 같다. 기대치가 높기도 하고 그에 따른 부담도 있는데 우린 또 그것에 맞게 찾아가는 것 같다.

ㄴ 오: 단계가 여러 가지로 있다면 연습 초반은 '와 너무 좋다~' 하면서 했다. 이게 1단계라면 이후엔 거기에 만족이 안 되고, 진심이 통하는 순간을 찾아야 하는데, 처음엔 잘 되는 것 같아도 진심이 될수록 자기 스스로 진심이 아니면 힘들어지지 않나. 그래서 이런 부분을 찾느라 힘들다. 목적지를 모르겠다는 건 아니고 아 이번엔 이 길로 가볼까. 이런 거다. 공연 날짜가 이만큼인데 이렇게 가봐도 되나? 하는 즐거운 갈등이다. 최종 목적지는 확실히 있지만,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 저도 사실 많이 떨린다.

ㄴ 김: 여백의 묘미가 느껴지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 저 같은 경우 여백이 생겼을 때 대사로 채워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다. 이번 작업을 통해 여백을 잘 살릴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고 싶다.

ㄴ 오: 이 여백이 우리에게도 생소할 수 있다. 저도 뮤지컬을 해본 적이 없으니. 그런데도 계속 가보고 싶은 것은 공연 때 좋은 순간이 올 것만 같다. 찾지 못했던 뭔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끔은 식은땀이 흐르며 불안할 때도 있다. 우리가 연습 때 찾았던 여백 속의 진심이 무대에서 안 찾아지면 어떡하지. 하는 거다. 하지만 핵심은 진심만 가지고 있다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연극 연출과 뮤지컬 연출의 차이점이 있나. 아니면 '라흐마니노프'만의 차이점이라거나.

ㄴ 오: 보통 서로 잘 모르면 '그러려니' 싶은 것이 있다. 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란 것도 했었지만 놀란 것이 뮤지컬 배우들이 연기를 정말 잘한다. 겉으로 보이는 연기력이라기보단 인물을 찾아가는데 정서를 생각하고 거기까지 다가가는 과정이 치열하고 적극적인 부분이 있다. 저는 극단(극단 걸판)에 속해있어서 극단 배우들과 작업을 많이 하는데 극단은 연출이 확고히 있으니 배우들이 '연출님 이거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서로 재미가 없다. 연습이란 건 하기 전에 준비해서 연습실에서 같이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데 극단 작업의 경우 그런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연습실에 오면 뭔가 준비가 돼 있다. 배우들이 생각하고 메모하고 자기 준비를 해와서 보여주니까 그런 점이 좋더라.

구체적으로 뭘 준비하셨는지(웃음).

ㄴ 김: 저는 뭐 특별히 준비한 것은 없고…

ㄴ 오: 예를 들면 그런 거다. 예를 들면 달 박사가 치료를 이렇게 했다던데 이렇게 해볼까요. 비올라 애호가였다는데 이건 어떨까요. 하는 식의 의견. 인물에 대해 조사를 계속하고 갖출 수 있는 것을 갖춰오고 그런 부분들이 너무 좋다. 어떨 때는 대본에만 매달리는 배우들이 있다. 우리(극단 걸판)가 했던 '페스트'란 연극을 예로 들면 '까뮈'의 '페스트'를 가지고 연극을 한다. 그럼 '까뮈'는 어떤 사람인지 '페스트'는 어떤 소설인지 알아가야 하지 않나. 우리 극단이 그렇게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든 거다(웃음). 어쨌든 공연을 만든다면 대본 외에도 그런 여러 연구도 같이 해야 한다 생각하는데 이런 점에서 뮤지컬 배우들이 강하더라.

   
 

김경수 배우는 인터뷰마다 맡은 배역을 위해 특별히 준비하거나 공부한 부분들이 있었다. 달 박사에 대해 공부한 것이 있는지.

ㄴ 김: 책을 하나 사둔 게 있다(웃음).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신경정신과 이야기인데 사놓기만 하고 제대로 읽진 못했다(웃음). 기본적으로 팩트에 대해, 내가 언제 태어났고 라흐는 언제 태어났고 둘은 어떻게 만났고 등등. 이런 부분에 대해 열심히 찾아봤다. 연습실에 가선 상대 배우와 호흡 맞춰보고 디렉션 받으면서 극을 어떻게 꾸려갈지 상상하고 있다.

달 박사의 경우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찾기 어렵겠다.

ㄴ 김: 아쉽게도 달 박사는 사진도 노년 시절 사진만 한 장 나온다. 그 시절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몇 년도에 태어나서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해준 사람. 이게 다다. 그의 책도 한 권 없어서 막막하지만 상상하며 구축하는 과정도 재밌는 것 같다.

ㄴ 오: 굉장한 것은 라흐가 달을 위해서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헌정했다는 것이다. 어떤 심리학자도 그런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프로이트에게 바친 곡이 있을까. 그래서 협주곡 2번을 듣다 보면 뭔가 달 박사에 대한 것이 보이는 느낌이다.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데 따듯한 사람이고, 라흐 말을 많이 들어주는 사람이 아닐까 싶더라.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잡아가는 과정에 도움이 됐겠다.

ㄴ 오: 생각해보면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니까 사진도 별로 안 남아있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조용한 사람.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많이 듣고 있는지.

ㄴ 박: 많이 듣고 있다. 어떤 심정으로 썼을까. 곡을 들으며 이 사람이 뭘 말하고 싶을까 생각해보고 대본과도 비교해본다. 내가 라흐도 아니고, 동시대 사람도 아니지만 내가 이 음악을 쓴다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말을 하면서 썼을까. 순전히 멜로디만 듣거나, 음악이 뭘 말하는가 생각하며 들을 때도 있고, 그럼 대본과 음악의 언어가 일치하는 것은 어디일까 생각도 한다. 이런 식으로 다방면으로 곡을 들어보고 있다. 랜덤으로도 들어보고. 1-2-3-4로 들어보고 2-3-4-1도 들어보고 3-2-4-1도 들어보고.

수학을 잘하신다.

ㄴ 박: 산수를 진짜 못한다(웃음).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느끼려고 하고 있다. 관객도 우리 작품을 생각하며 보기도 하겠지만 가장 편한 것은 보고 바로 느끼는 거지 않나. 느끼는 게 정답인 것 같아서 저도 느껴보려고 하고 있다. 말을 느끼고 대사를 느끼고 음악을 느끼고.

   
 

예전 작품을 보면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한 공연을 많이 하셨다. '라흐마니노프' 들어오며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 등이 변한 부분이 있나. 김경수 배우의 경우 '리틀잭'은 가상의 인물이고 달 박사도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있지 않나. 두 배우 모두 음악가 역을 많이 하셨으니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짚어주시면 좋겠다.

ㄴ 박: 올해는 피아노에 관련된 캐릭터를 많이 하고 있다. '살리에르'의 모차르트, '사비타'의 동생, '라흐마니노프'까지. 20대의 저는 그랬다. '어? 비슷해? 그럼 이번엔 다르게 해야지'라고. 그러나 그렇게 접근해도 결국 똑같더라. 연기하는 것은 박유덕이란 사람이기에. 그래서 어느 순간부턴 반대로 캐릭터에 접근할 때 너무 접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저에게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제가 기분 좋을 때랑 아플 때랑 슬플 때랑 피아노 치는 터치감이 다르다. 같은 피아노를 치는 데도 다르다. 그래서 저는 굳이 다르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분명 모차르트나 동생과 비슷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분명히 비슷함 속에 다른 무언가를 관객들이 느끼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세 작품 모두 '안녕'이란 대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안녕'이 셋 다 다른 거다. 다른 작품이든, 다른 장르든 장르와 상황은 다르지만 어떤 씬을 보면 연상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을 제가 바꿀 수는 없기에 다른 감정으로 느끼게 하려고 한다. 이번에 캐릭터 접근할 때도 이전보다 더 편하게 저에게 접근하고 있다. 작품을 보시면 반대일 수도 있지만, 정말 편하게 내려놓고 다가가고 있다. 텍스트 적으로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는데 인생사가 원래 이해 안 되는 일이 많지 않나. 그렇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표현해야 한다. 라는 강박관념이 없이 하고 있다. 예전엔 솔직히 그런 강박관념이 많았다. 모차르트를 표현할 때 '살리에르와 어떻게 다르게 할까?'라고 했다면 지금은 '어땠을까?'라 생각한다. 어떻게 '표현할까?'가 아니라. 연습할 때도 오늘은 다른 생각이 드네 싶으면 호흡을 바꾸거나 하면서. 오히려 편하게 하는 것 같다. '이렇게 가야해!'가 아니라 '이렇게 가볼까? 점프할까? 걸어갈까?' 하면서. 텍스트는 솔직히 어렵다. 그러나 고민하고 머리 싸맬수록 나만 보이더라. 작품 전체가 안 보이고. 이번엔 오히려 점점 더 뒤로 빠져서 작품 전체를 보려고 한다.

ㄴ 김: 저는 일단 '리틀잭'도 그렇고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작품도 그렇고, 지금도 출발점은 같다. 팩트에서 시작해서 작품에서 필요로 하는 것, 작품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잘 보여야 하니까 그런 부분을 상상하고 생각한다. 저는 또 얻어걸리는 것을 좋아한다. 연습해보다가 어 이런 게 있네? 싶은 것들. 제가 상상치 못한 것들. 제가 하는 게 아니어도 파트너나 같은 캐스트가 그런 부분을 보여줄 때 저는 쉽게 동의한다. 다른 사람들도 동의하는 것이 공기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공연을 해도 막공이 올 때까지 작품에 대한 연구를 잘 놓지 않는다. 제가 뭘 더 채울 수 있을까. 아주 깔끔하게 첫 공연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처음에 잡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 계속 채운다기보단 깊이 있게 찾아보려 한다. 그래서 좋은 텍스트를 쓴 작가님과 연출님, 열정적인 라흐마니노프들에게 감사한다. 재영이 같은 경우 떠오르는 생각을 많이 표현하는 친구라 보면서 많이 배운다. 그리고 정말 열정적으로 자기 이야기한(웃음) 유덕이도. 좋은 친구들 보며 많이 배운다. 제가 배우 중 가장 연장자다(웃음). 어쩌다 보니 그런 상황이 왔다. 얼마 전까지 중간 나이였는데…. 그러나 계속 배우고 있다. 보면서 얻어걸리는 스타일이다 보니 열심히 준비하면서도 즉흥적인 연습 상황들이 좋다.

ㄴ 오: 저도 느끼는 것이 '연기 변신'이라고들 하지만 연기는 그 사람이 가진 고유한 것이라 변신이 안된다. 마음이 변하는 거지. '마음 변신'. 그리고 예전에 본 것 중에 셰익스피어 시대 때 햄릿을 연기한 배우는 다 기록이 남았는데 햄릿을 연출한 사람은 기록이 없다더라. 어떤 배우의 햄릿, 누구의 햄릿인 거지. 셰익스피어의 작품 보면 논리적으로 연결이 안 되는 부분도 많다. 시작한 지 5분 만에 아버지 유령이 등장한다든가(웃음). 그러나 사람들이 왜 동의하냐면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장면 중간 인물들의 독백, 이야기를 보면 그 감정이 진짜라서 그렇다. 욕망, 질투, 시기심 같은 것들. 사람들이 그래서 그것을 보러 간 이유는 배우가 그 상황에서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이 배우의 햄릿은 어떠냐. 라는 것들. 이런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두 배우 모두 그런 말을 했는데 중요한 것은 '라흐'와 '달'을 우리가 직접 만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통했던 마음은 진짜였을 거다. 그 진심만 찾아낸다면 '라흐'냐 '달'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박유덕, 안재영이냐 김경수, 정동화냐 이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때 통했던 마음을 무대 위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아까 연습 때 여러 단계를 이야기했는데 그렇게 되는 이유는 어제 연습했을 때는 진심이 느껴졌던 것 같은데 오늘 해보면 또 다르다. 즐거운 괴로움이랄까(웃음). 마음에 관한 이야기인데 어떻게 무대 위에서 표현할 수 있을까 했는데 뮤지컬에서 흔치 않은 독백을 시도했다.

독백 좋아하시지 않나(일동 웃음). 보통 뮤지컬은 독백을 넘버로 하지 않나.

ㄴ 오: 그런데 뜻밖에 너무 좋더라. 뮤지컬 배우들이 독백하니까 리듬감과 음이 생겨서 노래 같고. 그래서 노래의 기원은 독백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오히려 거꾸로 배우고 있다. 노래가 아니라 말로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노래는 감정과 드라마를 증폭 시킨다면 그런 것 없이 전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잘만 된다면 괜찮을 것 같다.

기존 뮤지컬과 다른 신선한 작품이 될 수 있겠다.

ㄴ 오: 신선하다고 하기까진 너무 기대하시니까 좀 그렇고…(웃음). 어떻게 하면 가장 솔직한 것을 찾을까 하다 보니 독백을 넣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막 자랑하고 싶지 않은 것이 처음이다. 저는 항상 무언가를 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사람인데 이번에는 정말 솔직한 것을 찾으려 노력했다. 웃음도 솔직한 웃음. 저도 그렇지만 배우들도 중간중간 힘들 수 있는 것이 작품이 계속 흘러가는 와중에 그 속에서 마음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하니까. 쉽지 않지만 잘하면 굉장히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 잘 안되면 제가 공개 사과하겠다(웃음).

   
 

진심하니까 '리틀잭'이 생각난다. 얼마 전 스페셜 데이때 김경수 배우가 대사 실수를 했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작품이 콘서트를 하며 이야기하는 형식이라 그런지 대사를 잊었다기보단 정말 줄리에 대한 감정이 차올라서 먹먹해진 느낌이었다.

ㄴ 김: 캐스팅이 트리플이다보니 5일 만에 공연을 했다. 그러다보면 (감이 떨어지나?) 감이 떨어진다기보단 첫공 같은 느낌이 든다. 감정이 라이브해지고. 그래서 그런 것도 있다. 공연의 모든 것이 정말 실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숙지한 대사가 저를 잠시 떠나있어서 속상하긴 했지만, 감정이 솔직하게 가서 공연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나 하필 스페셜 데이에 부족함을 보였기 때문에 관객에게 죄송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울컥했다. 대사가 틀렸다는 것을 나중에 찾아보고 알았다.

ㄴ 오: 감정이 울컥했다면 배우들의 진심이 통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대사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가 즐거우면서도 식은땀이 나는 것 같다. 사람은 보통 막 울거나 화내거나 좋아지지 않는다. 울기 직전까지 가면 그 모습을 보며 슬퍼지고, 좋아지는 모습을 보고 같이 좋아지지 감정이 순식간에 움직이지 않는다. 울기 직전, 화내기 직전, 웃기 직전. '직전'의 경계를 찾다 보니 잘 타고 가면 뭔가 나올 것 같은데 이 부분이 망가지면 '아, 이게 아닌가?' 싶어진다. 이렇게 경계를 타고 가는 점 때문에 '라흐마니노프'가 힘든 것 같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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