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서상원, 이영숙, 남명렬 배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뉴스] 불확정성의 원리, 상보성의 원리 등 과학 용어들이 요란하게 쏟아졌다. '과학자의 양심'을 두고 두 천재 물리학자의 이야기가 명배우들의 연기로 선보여진다.

 
14일부터 31일까지 마이클 프레인 원작의 연극 '코펜하겐'이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열린다. 20세기 물리학을 꽃피우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와 '하이젠베르그'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사건을 소재로 했다.
 

 

'과학자의 양심'을 두고 실제 미국과 독일 과학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는 연극 '코펜하겐'은 핵분열, 원자탄의 제조과정 그리고 불확정성의 원리와 상보성의 원리 등 널리 알려진 물리학의 개념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어렵고 난해한 과학이 아닌 생명과학, 로봇공학 등 우리 사회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과학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가 작품의 주제다.
 
연극 '코펜하겐'은 연극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토니상에서 최우수연극상, 최우수연출상, 여자연기자상 등 3개 부분에서 수상을 했다. 국내에서도 초연 당시 한국연극 베스트7 및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올해도 그 기록을 이어가는 배우들의 연기가 펼쳐진다.
 
남명렬이 '닐스 보어'를, 서상원이 '하이젠베르그'를, 이영숙이 '마그리트'를 '원캐스트'로 연기한다. 14일 오후 열린 프레스콜 전막 시연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엔 배우들과 윤우영 연출이 참석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연극 '코펜하겐'을 살펴본다.
 
   
▲ 윤우영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6년 만에 공연을 올리게 된 이유는?
ㄴ 윤우영 : '코펜하겐'은 상당히 어려운 작품이다. 대학로의 요즘 분위기가 상업극이나 코미디가 많다 보니, 이런 진지하고 철학적인 작품을 기다린 관객분들도 의외로 많은 것 같았다. 이런 좋은 작품들이 흥행성과 상관이 없을 수 있지만, 끊임없이 올라가 이런 작품을 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작하게 됐다.
 
6년 만에 다시 '코펜하겐'에 출연한 소감을 들려 달라.
ㄴ 남명렬 : '다시'라고 이야기하지만, 6년이라는 세월은 굉장히 길다. 그땐 검은 머리고, 지금은 흰 머리다. 여기에 다른 두 배역은 교체가 됐다. 다시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이 작품을 새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품 연습을 하고 이 자리까지 와 있다. 하지만 역시 좋은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과학 이론이 많이 나와서, 작품이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가 있다.
ㄴ 남명렬 : 과학을 쉽게 풀어주시는 선생님이나 강의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 조차도 다루지 않는 이론이 많다. 이런 용어들이 어려운 것은 틀림없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먼은 "양자역학을 정확하게 설명할 사람은 지구에 없다"고 단언도 했다. 이론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그 이유는 우리가 고전물리학 세계에 살고 있는데, 원자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고전물리학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다른 모양새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려운 용어들과 과학 이론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었지만, 연출한 윤우영 씨와 함께 어렵게 연습하며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애썼다. 그래서 보시는 분들이 어렵게 생각 안 해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이영숙 배우가 취재진에게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이영숙 : 내가 맡은 '마그리트'는 무대의 중재자 역할도 하면서 동시에 해설자 같은 역할의 배역이다. 대사를 보면, 내가 작품의 사건을 전환하는 부분이 꽤 있다. 그 부분에서 애를 먹은 것도 있다. 그 부분을 중심으로 연습에 참여했다.
 
서상원 :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배우가 전문적인 물리학 세계를 얼마나 알고 있었겠는가? 결국, 여기서 다루는 양자역학이나 소립자 등은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없는 미시적인 관점의 물리학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해하는 게 더 어렵다. 하지만 우리 행동이나 자연의 움직임이 사실 미시적 소립자를 통해 돌아가는데, 그런 것을 파헤쳐서 우주가 어떻게 생성됐는가를 밝히는 것이 양자물리학이다. 그런 것을 하려니 정말 어렵다.
 
하지만 그런 과학적 접근을 할 필요가 없어진 건 대본을 읽고 나서였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일을 누가 알겠는가? 30초 후에 어떤 움직임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인생의 불확실성을 생각하면, 이 작품을 보는 데 어려움이 없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뒤돌아서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생각하는 것이 한계다. 과거를 돌아보며 앞으로 살아가는데 어떤 실수를 하지 않고, 좀 더 나은 가치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를 전달하려 한다.
 
   
▲ 서상원 배우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많은 대사를 외워야 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나?
ㄴ 남명렬 : 최근에 한 게 2010년이니까 6년 전이다. 다시 외울 때, 리마인드하는 것이 다른 두 배우보단 훨씬 나았다. 그런데도 긴 대사를 한 사람이 쭉하는 게 아니라, 주고받으면서 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암기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공연하려면 생으로 외워야 한다.
 
지금보다 6년 전 암기할 때가 생각난다. 그땐 다른 작품도 하나 준비하고 있어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작품을 빨리 암기해야 숙제를 하나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재에 앉아서 계속 외웠는데, 나도 모르게 대사를 외우다가 자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3시, 4시였다. 그렇게 1주일 동안 외우니 대본이 외워졌다.
 
이번엔 달라진 것이 있다. 지난번엔 중간 휴식이 없었다. 처음부터 다 끝까지 했는데, 본래 대본에도 중간 휴식이 있었다. 2008~10년 무렵엔 긴 연극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만약 2시간이 넘어가면 관객이 예매를 안 하겠다는 두려움이 있어서 시간을 짧게 하려는 노력이 기억난다.
 
지금은 뮤지컬을 비롯해 일반 연극도 2시간 30분 넘어가는 연극이 꽤 있다. 관객들도 적응이 된 것 같아 쉬는 시간을 두자고 했다. 여기서 나오는 과학이론이 골치 아픈 용어가 많아서, 관객도 머리를 쉴 시간이 오히려 도움될 것 같았다. 관객들에게 차분하게 설명하는 쪽으로도 연기하려 한다.
 
   
▲ 남명렬 배우가 소감을 전하고 있다.
 
 
관객들에게 바라는 점은?
ㄴ 윤우영 : 10년 전쯤, 서울대학교 공대 아마추어 극단에서 처음 이 작품을 갖고 와서 번역도 하셔서 객원연출로 그 작품을 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4번의 공연을 했다.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작품을 하면서 과학 이론 부분과 철학적 이론 부분을 연계시키면서, 가능하면 좀 더 쉽게 하려는 데에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2010년 공연 때와는 이번에 많이 달라진 건 없지만, 가능하면 좀 더 진지하게 연극적인 부분에 다가서려 했다. 음악 사용이나, 무대 조명이나, 관객에게 친밀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점이 달라졌다. 이런 부분을 관객이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아무리 쉽게 풀어간다 해도 어려워하시는 분들은 많이 어려워하실 것 같다. 서상원 배우 말처럼 인생의 불확실성은 철학적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다. 관객분이 오셔서 이해하고 한 번쯤 생각하며 나가실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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