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작품 '섬'은 사람들을 제각기 떨어져 있는 섬으로 비유하고 있다. 여기서 섬은 소외되고 고립된 존재로서의 의미를 가지지만, 이때 섬이 뿌리내리고 있는 바다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검고 깊은 바다처럼, 요즘의 사람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사회는 아프고 시리다. 시리다 못해 쓰리고 콕콕 찌르는 현실 앞에서, 창작국악그룹 그림(The 林)은 예술에 주목한다. 이들은 음악을 통해 삶과 예술의 공존을 추구하고, 검은 바다가 푸르게 변하기를, 그리고 그 따뜻한 바다로 고래가 돌아오기를 노래한다.

 

   
 

그림 단독공연 '어쿠스틱 아일랜드'는 창작국악그룹 그림 창단 15주년 기념 공연으로, 그림의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아방가르드 앙상블 '쿤스'의 연주로 채워졌다. 동명의 정규 4집 앨범 발매 기념이기도 한 이번 공연은 지난 15일과 16일 성수아트홀에서 진행됐다.

창작국악그룹이라는 이름답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악기구성이었다. 해금, 거문고부터 두 개의 타악기 세트와 그 외의 타악기들, 그리고 태평소, 대금, 오스트레일리아 전통 악기인 디저리두 등의 관악기들이 자리했다. 여기에 기타, 베이스, 전자 건반 등의 서양 악기가 어우러져 그림만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노래 각각의 느낌과 특유의 소리를 공연에서도 최대한 구현하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공연은 '바람은 봉봉'을 시작으로, 정규 4집 앨범의 수록곡들로 채워졌다. 대부분의 노래에서 해금이 주요 악기로서 전면에 드러났다. 특히 '오름의 시간'이라는 곡은 격정적으로 오르내리는 해금연주가 전주에서부터 감정을 고조시켰다. 다른 곡들 역시 해금연주 위에 기타, 태평소, 거문고 등의 멜로디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그림만의 풍성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연주곡이 대부분이던 전작과는 달리, 그림의 리더이자 타악기를 담당하는 신창렬이 거의 모든 곡에 보컬로 참여한 것 또한 눈에 띄었다. 담담하지만 뚜렷한 그의 보컬은 사설조가 두드러지는 '어부백수'와 같은 곡에서 빛을 발했다. 그리고 '오름의 시간', '바다와 나비'와 같은 곡에서는 신창렬의 음색에 우리 고유의 성악인 '정가(正歌)'를 전공한 하윤주의 애절한 음색이 어우러져, 곡의 깊이를 더했다.

 

   
 

공연 후반부는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곡들이 장식했다. 여기서부터는 보컬이 없었지만, 그래서 더욱 웅장한 노래들이 이어졌다. '독도대왕'이라는 곡을 연주할 때는 무대 뒷면의 스크린에 과거 일본의 무자비한 독도 바다사자 살육과 불합리한 독도 영토권 주장에 대한 자막 영상을 삽입해,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이어지는 곡 '바다숲'은 2013년 '공명'과 함께 만든 곡으로, 이번 4집 앨범에 스페셜 트랙으로 수록돼 팬들에게 선물로서 다가왔다.

한편, 그림의 멤버인 박우진의 재치 있는 사회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공연의 분위기를 풀어줬다. 조금은 어설프기도 했지만, 애정 어린 감상평과 구체적인 설명이 더해지니 곡이 담고자 했던 메시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4집 앨범 수록곡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는 리플렛은 처음 듣는 곡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4집 앨범의 수록곡이 모두 소개되고 나서는 멜로디언 음색이 돋보이는 '나의 첫 번째 자전거'를 시작으로 2집의 수록곡들이 이어졌다. 특히 2집 수록곡 중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비, 달리다', 밝은 선율이 경쾌한 느낌을 주는 '판 프로젝트 Ⅱ'는 객석의 분위기를 한층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해금을 맡은 김주리가 공연에 대한 감회와 앞으로의 열정을 밝혀,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앵콜 곡 '오름의 시간'을 마지막으로, 공연은 마무리됐다.

 

   
 

그림은 관객들과 재치 있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금세 몰입도 있는 연주를 선보였다. 각각의 곡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이를 만들어내는 멤버들의 합 역시 돋보였다. 꾸준히 음악을 만들어온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느덧 선배 뮤지션이 되었음에도, 이들은 여전히 음악과 관객 앞에서 겸손했다. 공연 중 박우진의 말마따나, 이날 그림의 공연을 처음 보는 관객이 많았던 것은 그림이 더욱 사랑받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최생우진기', '환상노정기'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는 콘텐츠 그룹인 만큼, 그림의 음악 역시 화가 이중섭, 사진작가 김영갑 등에서 영감을 받아 여러 가지 예술 장르와 맞닿아 있다. 다채로운 색깔의 음악을 통해 감정의 단상은 물론 개인의 소외, 영혼의 치유까지 노래하는 그림의 음악세계를 더욱 기대해본다.

 

[글] 문화뉴스 김소이 기자 lemipasolla@mhns.co.kr
[사진] 그림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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