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비교 대규모 전시 20년 만에 처음"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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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MHN 김인규 기자] #1. 추수를 끝내고 겨울을 목전에 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적하다 못해 황량함이 느껴지는 '농촌의 만추'를 소정 변관식은 짙고 거친 먹선으로 담아냈다.

#2.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숲을 훑고 지나는 소리가 '쏴아' 들린다. 무르익은 붓질로 안개 낀 숲과 그 앞을 가로지르는 개울을 '청각적으로' 살려낸 청전 이상범 '고원무림'(高遠霧林)이다.

소정 변관식(1899∼1976)과 청전 이상범(1897∼1972)은 근대 한국화단 두 기둥으로 평가받는다. 둘은 같은 시대를 걸었으며, 1923년 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전통회화 모임인 '동연사’에서 함께 했지만, 걸어간 길은 달랐다.

"전혀 다른 분들이었죠. 작품에서도 보이지 않나요. 청전 작품은 고르고, 소정은 들쭉날쭉하잖아요." 1960년대 반도화랑 근무 시절부터 두 작가를 가까이서 지켜본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은 이들을 각별하게 추억했다. 박 회장이 갤러리현대 50주년 기념전 첫 주인공으로 둘을 내세운 배경이기도 하다.

10일 개막하는 '한국화의 두 거장-청전·소정'은 이웃한 두 전시장에서 이상범과 변관식 각각 40여점씩 선보이는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인주문화재단 등 여러 기관과 개인 소장가로부터 빌린 작품들로 꾸몄다.

본관(현대화랑)에 걸린 청전 작품은 관람객을 안온하게 감싼다. 그는 우리네 산촌 핵심적인 특징만 잡아내, 쌀알을 찍는듯한 미점법(米點法)으로 표현했다. 청전 작품을 멀리서 봐야 그 맛을 더 즐길 수 있는 이유다. 번지듯 스민 담묵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속으로 파묻힐 것만 같다. 청전이 형이 있는 평안도를 여러 차례 드나들면서 거쳐 갔다는 금강산 산수화는 '금강산 화가 = 변관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더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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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천귀로'(曉天歸路)도 유심히 봐야 한다.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는 것이 갤러리현대 설명이다. 작품 오른쪽 하단에는 한자로 '단기 4278년 8월 15일 청전화'라고 쓰여 있다. 단기 4278년은 1945년이다.

송 교수는 "밝아오는 새벽, 즉 광복을 맞이한 기쁨이 표현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청전이 일제강점기 활동으로 훗날 비판받기도 한 점을 상기하면, 74년 만에 세상에 온전히 나온 작품은 더 복잡다단하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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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 전시는 같은 산야도 소정의 분방한 붓을 거치면 달리 태어남을 보여준다.

소정 작품 안에서도 세밀한 필선 위주의 광복 이전 산수와 묵점이 도드라지는 1960년대 산수의 간극이 큰 점은 '들쭉날쭉함', 즉 끊임없는 혁신을 보여준다.

1939년부터 전국을 돌며 실경을 그린 소정은 먹을 말려가며 쌓아가는 적묵법(積墨法)과 마르지 않은 먹 위에 농담이 다른 먹을 치는 파선법(破線法)을 구사했다.

'농촌의 만추'(1957)는 처음에는 청전 작품보다 깔깔하지만, 볼수록 그 깔깔함에 빠져든다. 그해 소정이 파벌 등으로 얼룩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를 공개 비판하면서 재야 미술가로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과 연결지어 작품을 볼 필요가 있다.

'외금강 삼선암 추색'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각각 1959년과 1966년 완성한 금강산 삼선암 산수화는 7년 사이 묵점 사용이 급증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먹은 동양화 근본인데 소정은 정말 성실한 태도로 먹을 차곡차곡 쌓아간 작가"라면서 "그의 작업은 오랜 기간 쌓은 공력과 먹의 다양한 뉘앙스를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첫손에 꼽히는 상업 갤러리가 소외된 한국화를 재조명한다는 데 이번 전시 의미가 있다. 한국화는 국내 평단에서도 시장에서도 외면당한 지 오래다. 지난달 아트바젤홍콩 기간에 열린 소더비 경매 때 치바이스(齊白石) 등 중국 전통회화 전시장에 엄청난 인파가 몰린 점과 비교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갤러리현대는 마로니에북스와 협력해 두 작가 대표작을 수록한 화집도 각각 발간할 계획이다. 전시는 6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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