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부터 '늘근도둑이야기'까지…영화·드라마·연극 누비는 배우 박철민을 만나다

   
 

[문화뉴스] "언론에서 그렇게 박살을 내주셨는데, 1위를 해서 놀라웠죠. 작품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고 봅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분명 박철민 배우의 말대로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다. 우리가 활자로만 접했던 6.25 전쟁의 흐름을 바꾼 '인천상륙작전'과 기억하지 못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스크린으로 옮겨진 것은 영화가 전하고자 한 '빛'이었고, 철 지난 '반공영화'라는 평단의 악평과 영웅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됐느냐는 의문은 '그림자'였다.
 
박철민 배우도 "별점이 지금까지 출연했던 영화 중에서 충격적이었다. 1개에서 1개 반 정도를 받으며, 1주일 내내 우울하고 힘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언론시사회 이후 나온 악평을 뒤로하고, 지난 7월 27일 '문화가 있는 날' 3파전에서 '인천상륙작전'은 46만 관객을 동원하며,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러한 1위 행진은 주말까지 이어지며, 주말 박스오피스 1위(179만, 누적 262만) 고지를 밟았다.
 
이러한 '인천상륙작전'의 흥행에 대해 박철민 배우는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그를 만난 곳은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대학로 유니플렉스였다. '늘근도둑이야기'는 26년간 공연되어온 시사코미디다. 박철민 배우는 16년 동안 '늘근도둑이야기'에서 활약하며, 관객들에게 통렬한 이야기를 통해 부조리한 세상에 뼈있는 웃음을 던지고자 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1주일에 1~2번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 박철민 배우. 그에게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연극 '늘근도둑이야기'에 오랜 기간 출연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 그리고 개봉을 앞둔 대학로 연극 소재 영화인 '커튼콜'에 대해 들어봤다. "관객들과 웃음을 만들어내는 일을 많이 해,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확인하기 전에, 인사 영상을 소개한다.
 
 

 
'인천상륙작전'이 첫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ㄴ 영화 담당 기자나, 평론가들이 작품에 대한 약점을 많이 지적하셨다. 별점도 지금까지 출연했던 영화 중에서도 충격이었다. 1개에서 1개 반을 받으면서, 1주일 내내 우울했고 힘들었다. 뭐가 잘못됐는지 고민도 했고, 어떻게 대중과 만날까 두렵기도 했고 망설여졌다. 그런데 첫날 46만 관객이 봤다니 지금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번 영화는 큰 영화였다. 보통 작은 영화에선 개런티는 "기부하겠다", "흥행하면 받겠다"고 했는데, 이번엔 제대로 개런티를 받은 작품이어서 걱정했다. 
 
야구로 따지면 1회에 아주 강한 상대를 맞아 대량 실점을 내줬는데, 다시 관객들의 함성으로 일어서서 싸우는 그런 상황이 됐다. 평단과 극과 극이어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해봤다. 좋은 평가를 주신 작품이, 대중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흥행에 참패할 수도 있다. 영화를 깊게 해석하신 전문가분들이 부정적 견해를 보여준 작품이 반대로 대중들에게 나름 대중성을 획득한 경우도 있다. 평도 좋고, 관객도 많이 오는 영화도 있다. 그게 인생사인가 싶었다. 이 영화엔 분명하게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다고 본다. 평단에선 그림자를 많이 지적하셨고, 영화가 갖는 빛의 부분을 관객들이 좋아하신 것 같다.
 
   
▲ '인천상륙작전'에서 박철민은 '장학수' 역의 이정재를 도와 첩보작전에 뛰어드는 '남기성' 역할로 출연한다.
 
 
오랜만에 액션 연기를 펼쳤다. 촬영 당시 에피소드를 들려달라.
ㄴ 한겨울에 찍었는데, 작품을 보면 내가 뚱뚱하게 나온다. 다들 "보약을 먹고 살이 쪘냐"고 말을 해주셨는데, 내복을 많이 입었다. 인간이 껴입을 수 있는 옷을 최대한 입은 것이다. 사실 원래 나는 추성훈 씨에게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추성훈 씨와의 격투씬이 있다. 영화에선 이정재가 죽인 거로 되어있지만, 다시 살아나서 나와 한판 대결을 벌인다. 몽땅 날아갔는데,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추성훈 씨가 마음이 더 아플 것 같다.
 
액션 장면을 찍다 보니, 내복을 살짝 벗었는데 추웠다. 그런 추위에서 밤을 새워가며, 동이 틀 때까지 작업했다. 이런 영화 만드는 과정을 겪고 평점을 보니 안타까웠고, 고생에 비해 서러웠다. 하지만 이들이 잘못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분들의 시선으로 깊게 해석한 것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아팠다.
 
이정재, 이범수와 같이 연기했지만, 리암 니슨과는 함께 호흡하지 못했다. 아쉽지 않았나?
ㄴ 원래 콘티상 리암 니슨이 엑스레이 작전을 하는 대원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이 이정재와 리암 니슨과 만나는 장면 다음에 있었다. 영화를 찍을 때, 리암 니슨이 캐스팅됐다고 해서 궁금해서 우리와 같이 찍는 장면이 있는가 물어봤다. 있다고 해서 쾌재를 불렀다. 이정재만 대사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연기인생의 추억이자 경험이 될 것 같아 그날만 기다렸다.
 
하지만 촬영 10일 전에, 감독이 엑스레이 대원들이 같이 나오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해 촬영이 취소됐다. 감독님께 살짝 뒤에서 형체만 나오면 안 되냐고 부탁했는데 안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리암 니슨이 오면 "우리가 조연, 단역이지만 한국 배우들의 자존심을 지키자. 절대 촬영장에 오지 말자"고 했다. 애들이 다 좋다고 했다. 리암 니슨 얼굴 보고 싶은 유혹이 있어도 오지 말자고 했다.
 
1주일 내내 리암 니슨이 양수리 촬영장에 계셨는데, 집이랑도 가까웠지만 가지 않았다. 그런데 배우들이 다 가서 사진을 같이 찍은 것이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웃음) 알고 봤더니 리암 니슨이 촬영 다 끝나고 모든 스태프랑 다 사진을 찍어준 것이었다. 심지어 김선아도 그때 가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뭔 자존심인가 싶어서 20일 동안 후회했다. (웃음)
 
   
▲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한 장면.
 
리암 니슨이 지난달 초에 한국을 다시 찾아왔는데, 그때는 안 만났는가?
ㄴ 기자회견 때 작품 촬영 스케쥴 때문에 갈 형편이 되지 않았다. 아쉬웠다. 하지만 리암 니슨과 나는 앞으로 더 큰 작품에서 만날 것이라 기대한다. (웃음)
 
'인천상륙작전'의 가장 큰 관람 포인트는?
ㄴ 첩보영화의 미덕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한국 전쟁영화에선 첩보 장르가 적었다. 한국전쟁을 첩보 형식으로 담아,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다. 이정재가 진짜를 죽이고 가짜로 위장해서 가는 것이나, 이정재와 이범수가 서로 러시아어로 암호와 관련해 싸우는 장면 등이 관객들에게 흡입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기성'이 자신의 아이를 품에 안으며, 대원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부분이었다.
ㄴ 시나리오 읽을 때도 매력적이었다. 진보와 보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분적 사고로 움직일 것으로 생각하고 싸우는데, '기성'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싸운다. 고증에서도 켈로부대엔 쌀을 많이 줬다고 하는데, 자식 4명을 먹여 살리려고 하는 애틋한 부성애가 순간 보여서 매력 있었다. 그 매력을 배가시키는 장면이 막내아들을 보는 장면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이거 참 좋은 장면이라고 봤다. 죽음을 앞둔 특수부대원들이 돌아가면서 생명을 안는 장면은 반어법을 많이 쓴 것 같았다. 죽음이 넘쳐나는 곳에서 막 태어난 생명은 전우의 아이라서 그 눈빛이 남다를 것이라고 본다. 이 장면은 찍을 때도, 만들어진 인위적인 눈물이 아니라 생각하며 상상을 많이 했다. 통곡도 눈물을 참아가며, 희망의 메시지만 전해주고 헤어지려 하는데 글썽거리는 눈물은 어쩔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세트장에선 너무 정신이 없었다. 트럭의 천막 사이를 보여줘야 하니 카메라 각도는 안 나오고, 30분 안에 찍어야 하는데 카메라 워킹도 엉망이었고, 배우도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3분의 1 정도 촬영이 흐르니 애가 울어버렸다. 애가 울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적이 옆에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니, 울면 들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 감정이 좋고, 웃을 때만 오케이가 떨어졌다. 
 
찍고 나니 안타까웠고, 아쉽고, 억울하기도 했다. 다행히 극장에서 볼 땐 정서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다들 환하게 웃는 장면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가 밝고 환하게 웃는데, 이 땅에 그런 웃음이 남북이 모두 있어야 했는데, 서로 총을 대고 싸우는 갈등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게 너무나 안타깝고 아프다.
 
대중들은 박철민을 코믹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인식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재미난 장면에서 관객들이 웃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들을 웃긴다는 것은 본인에게 어떤 것인가?
ㄴ 우리가 배우를 광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광대의 의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코믹 배우로 집중 받으며, 사랑받기도 하는데, 식상하다는 평을 받고 "개드립 하는 거 아닌가"라는 말을 들을 때는 땅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었고, 다른 데도 가고 싶어고, 연기를 그만두고 싶었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데, 고민도 했다. 연기인생의 빛과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하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약장수'에선 악역도 하기도 했다.
 
16년째 '늘근도둑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커다란 웃음을 줄 수 있는 자부심 때문에 배우를 하는 것 같다. 연극 무대에선 150~200명 정도가 뜨겁게 웃음을 서로 주고받는다. 그 웃음 때문에 박수받기도 한다. 무대에 서 있는 나로는 행복하고 눈물 날 정도로 고맙다. 언제는 이분들에게 오히려 돈을 환불하고, 5,000원씩 더 드려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싶을 정도로 도움을 받아서, 경의를 표하고 싶다. 웃음의 의미를 단정하자면, 웃으면 건강해진다고 한다. 관객들과 웃음을 만들어내는 일을 많이 해,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웃음은 나에게 그런 의미다.
 
   
▲ 박철민이 출연하는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포스터
16년이면 강산이 두 번은 바뀌는 시간인데, 그렇게 오래 '늘근도둑이야기'를 한 매력은?
ㄴ 지금 벌어지는 사건이나 인물의 부정부패 등 사회에 이슈가 되는 것을 압축시키면서 풍자한다. 그러지 말자고 하는 메시지를 대사로 만든다. 대사로 만드는 것이 재미가 없다면 이 작품은 의미가 없다. 이 작품의 미덕은 웃음이다. 세상일을 전해주는 게 우리 임무가 아니라, 웃음으로 그것을 승화시켜서 나누는 것이다. 어떻게 웃음을 끄집어내는가에 대한 고민이 늘 숙제다. 그래서 힘들기도 하다.
 
배우들 세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풍자를 통해 관객들의 웃음보를 어떻게 터뜨릴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데, 준비한 게 터지면 행복하다. 하지만 분위기가 썰렁하면 서로 다시 하지 말자고 질책도 한다. 그렇게 연구하는 과정에서 웃음이 빵 터지는 '핵폭탄'을 만든다. 실패와 좌절을 통해 커다란 웃음으로 도달하는 것이다.
 
최근 연극계엔 '검열'이라는 화두가 있다. 이 작품 역시 풍자 코미디로 그 선이 아슬아슬함이 있다. 검열 문제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들려 달라.
ㄴ 이상적인 나라일수록 "'인천상륙작전'은 반공영화", "'변호인'은 좌편향됐다"고 말하는 것이 자유로워진다. 예술을 보며, 다양한 생각을 하는 것은 자유로운 일이다. 서로 논쟁을 하고, 보는 시선이 다른 것에 갈등을 일으키면서 사회는 성숙하고 이성적으로 발전한다. 이성은 동물이 없는 인간만의 특징이다. 인간은 판단과 고민을 하며 부끄러워할 줄 안다. 
 
그러므로, 사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연극, 음악, 노래, 영화로 말하는 것은 자유스러워야 한다. 그 의견이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면, 시청자나 관객 등 대중이 판단해서 정화한다. 그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이다. 여기에 정부에선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 연극은 기초예술로, 극장에서 한 번 공연하면 끝이 난다. 영화나 드라마는 복제할 수 있다. 영상매체에서 재능있는 배우들을 소개해주는 원천이 연극이다. 그러니 우리와 이성을 믿고, 마음껏 예술을 할 수 있는 지원을 해줘야 한다.
 
   
▲ 영화 '커튼콜'의 한 장면. 대학로 연극 무대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올해 중 개봉될 예정이다.
 
 
연극을 소재로 한 영화 '커튼콜'을 촬영했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이며, 어떤 역할인가?
ㄴ 대학로 연극무대를 소재로 한 오달수의 '대배우'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것보다 10만 배 재밌다. '에로 연극'을 하는 대학로 삼류극단이 '햄릿 페스티벌'에 나가는 내용이다. 정통연극을 하는 것이 꿈이지만, 이들은 남들이 다 업신여기고 질타하는 '벗는 연극'을 하는 친구들이다. '햄릿'을 준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나는 여기서 애드립을 잘하는 개그맨 출신의 배우였다가, 연기를 포기한 기획자를 한다. 그러다 사람이 없으니 대신 무대에 올라 애드립을 하게 된다.
 
'커튼콜'에 출연하는 전무송 배우가 최근 연극 '햄릿'을 통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ㄴ 아쉽게도 보지 못했는데, 반응이 매우 좋다고는 들었다. 전무송 선생님이 '커튼콜' 작품에서 치매기가 있어서, 대사를 본인 배역이 아닌 '햄릿'을 한다거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하기도 한다. '커튼콜'은 실제 연극처럼 준비했다. 장현성, 전무송, 그리고 대학로 배우 친구들 15명이 15일간 '햄릿'을 연습했다. 역동성 있는 영화를 위해 무대에서 연습하며, 촬영도 했다.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ㄴ 연기는 내 인생에서 무엇이냐는 고민을 끊임없이 한다. 연기에 신나고, 우울해 하다가, 좌절했다가, 후회했다가, 행복하고, 기뻐하는데 '도대체 뭔데?'라는 질문을 한다. 배우가 너무 되고 싶었고, 행복하게 큰 틀에서 하고 있다.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 서서 또 다른 인생을 표현하고, 연기하는 것이 가장 신난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 너무 힘들었을 때에 일찍 만나서 행복하다. 이걸로 밥벌이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그래서 나중에 79살 정도 될 때, 작든 크든 씬의 주인공이 되어 촬영을 마친 후에 생맥주, 소주를 멸치 볶음과 같이 털고 "오늘 박철민 잘했다. 잘 살았네"하고 누웠는데, 영원히 눕는 것이 목표다. 끝까지 하고 싶은데, 죽기 전까지 희로애락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나한테 분노하고, 내 연기를 보고 슬퍼서 오랜만에 깊이 울어본다는 말을 듬뿍 주면서 마지막 날까지 가려 한다. 너무 큰 욕심일까? (웃음)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