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아시안게임은 끝났지만 축구는 계속된다…성숙된 응원문화 기대

   
▲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 시상식 이후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이 붉은악마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인사를 하고 있다.

[문화뉴스] "우리나라 축구 진짜 못하던데…" 

축구 팬인 나에게 이 구절은 평범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지겹도록 듣던 말이었다. 특히,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인하여 국민들의 국가대표 축구에 관한 인상은 그야말로 바닥을 기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 대한 우려는 매우 컸다. 특히나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이후 우리 남자 축구는 일명 '아시안게임 흑역사'라는 말과 함께 단 한 차례도 결승 문턱에 오르지 못했다. 여기에 대표 명단이 발표된 후 "과연 우승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나온 터라 걱정도 있었다.

괜히 이러한 걱정에서 선수들이 겁을 먹을 것 같아서 직접 응원을 하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첫 번째 경기는 지난 14일 말레이시아와의 대결이었다. 이 날은 처음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 우리 대표팀의 경기이기도 해서 전체 선수단의 사기와 국민들의 관심이 조금씩 집중되던 경기였다. 그래서 그럴까, 생각보다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은 덕분에 늦장을 부리며 20분 전에 도착한 문학 경기장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덕분에 애국가 연주를 경기장 밖에서 들을 수밖에 없었고, 경기 시작 후 5분이 되어서야 경기장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수비적으로 나온 말레이시아 앞에 우리 선수들은 당황하는 모습도 없지 않아 보였지만 무난하게 3-0으로 승리를 챙겼다.

그리고 2주가 흘렀다. 그 사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거라 기대를 했던 김신욱과 윤일록이 나란히 사우디와의 조별예선 경기에서 나온 부상으로 인하여 사실상 대회에서 뛰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어떻게든 승리를 챙겼다. 조별예선 사우디와 라오스, 16강전 홍콩을 차례차례 격파한 한국의 다음 상대는 아시안게임에선 단 한 번밖에 패한 적이 없는 숙적 일본이었다.

축구 한일전과 야구 결승전이 동시에 문학 경기장에서 열린 만큼, 이 날 만큼은 경기 시작 1시간 30분 전에 미리 도착을 했다. 야구와 축구 표를 사려는 사람으로 줄은 지금까지 매 해 100여 경기를 직관하는 나조차도 처음 볼 정도로 장사진을 펼쳤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위원회 측의 대처가 약간 허술했다는 것이다.

이 날 만큼이라도 미리 인터넷 예매를 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동 티켓 발권기를 많이 배치했어야 했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을 더 투입하여 사람들이 빠르게 티켓을 확인하고 관전 위치로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를 했어야 했는데 이 점은 매우 안타까웠다. 여기에 1등석을 예매했음에도 불구하고 2-3등석 관중이 자리 구분을 해 놓지 않아 1등석에 앉는 상황도 발생했다. 평소 국가대표 경기나, 프로축구 K리그 경기도 나오지 않는 장면이 아시안게임에서 벌어진 셈이다. 덕분에 1등석을 예매한 사람들이 속된말로 '호구'가 되어버린 상황도 있었다.

아무튼 약 4만 여 관중이 들어찬 문학 경기장은 뜨거웠다. 쩌렁쩌렁한 "대~한민국!"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우리는 일본에게 후반 막판 주장 장현수의 페널티킥 결승골로 짜릿한 승리를 챙기며 4강에 올랐다. 준결승도 평일 경기와 상대가 태국인 점을 감안했을 때 많은 관중이 오지 않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3만에 가까운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리고 또 다시 승리를 챙기며 28년 만에 결승 진출이라는 1차 목표를 달성해냈다. 상대는 지난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맞붙은 적이 있고 그 당시엔 공동 우승을 차지했던 북한이었다.

사실 첫 경기인 말레이시아와의 경기를 예매하면서 동시에 결승전 3등석인 응원석을 예매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현장에 올 것이라는 생각은 마음에만 있었지 실감은 나지 않았다. 축구 수 백여 경기를 직관을 했지만, 우리나라의 결승전 경기를 눈으로 볼 날이 얼마나 있겠는가?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열렸던 그 장소이기 때문에 이곳이 한국 축구의 또 다른 성지가 될 지도 궁금했다.

그렇게 입장한 문학 경기장에 지금까지 온 관중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에 들어찼다. 이번 대회 처음으로 붉은악마 응원석 한 가운데에서 경기를 봤다. 뛰고, 박수 치고, 소리 지르고……. 올해 들어서 잊고 있었던 나의 축덕 본능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양팀 모두 몸을 사리지 않는 경기를 펼쳤다. 그래서인지 좀처럼 골은 터지지 않았다. 설상가상 경기장엔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경기장 밖으로 나가지 않고 끝까지 선수들을 향한 힘찬 박수를 외쳤다. 그런 열정적인 응원은 전후반 90분에도 승부가 나지 않은 연장전에도 이어졌다.

   
▲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임창우의 결승골이 나온 후 모든 선수들이 뛰쳐나왔다.

연장 전후반 각각 15분에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축구의 세계에선 '러시안 룰렛'이라는 표현을 쓰는 승부차기가 이어진다. 그 상황이 오면 안 되는 우려 속에서 극적인 임창우의 골이 터졌다. 안타까운 상황들의 연속에서 나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리는 장면이 여러 번 나왔지만 이 때 만큼은 펄쩍 펄쩍 뛰었다. 우리가 28년 만에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금메달을 따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모든 관중들이 기립해 박수를 치고, 서로를 껴안았다. 그 순간만큼은 지금까지 안타까웠던 경기력을 모두 씻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장면이었다.

서울시 외곽 지역까지 가는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관중이 마지막 시상식 장면까지 지켜봤다. 동메달을 딴 이라크 선수들부터 준우승으로 은메달을 목에 건 북한 선수들에게 모든 관중들이 기립 박수를 쳤다. 그리고 금메달을 목에 건 우리 선수들과 함께 같이 애국가를 부르며 태극기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는 순간을 지켜봤다. TV 중계로만 봤던 그 순간을 같이 한다는 그 자체가 매우 행복했고 뭉클했다.

아시안게임은 비록 끝났지만 축구는 계속된다. 국내 축구의 영역을 크게 두 분류로 본다면 2015 아시안컵을 포함한 국가대표 축구팀 그리고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는 우리의 K리그까지…이제 다음 도전들이 앞에 놓여있으니 축구팬들은 계속 '워치독'처럼 지켜보고 응원을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3-4위전 베트남과의 경기 3-0 승리 후 대표팀 심서연(좌), 이영주(우)가 팬들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울러 이번 대회는 남자 축구만 한 것이 아니라 여자 축구도 펼쳐졌다. 여자 축구 대표팀은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강팀 북한과의 일전에서만 아쉽게 패했을 뿐, 나머지 경기에서 무실점 완승을 거두며 아시안게임 대회 2회 연속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런 기록들의 밑거름은 여자 축구 리그인 WK리그의 존재가 있기에 가능했다. WK리그의 발전을 위해서 팬들이 많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쩌면 이것이 한 해 100경기가 넘는 경기를 직관한 '축덕'의 남은 소망인지도 모르겠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press@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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