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씬 스틸러(Scene Stealer)'.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장면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배우들을 말한다. 이들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연처럼 주목받는 조연배우들이다. 문화뉴스의 [대한민국 탑 아트스틸러]는 대중적인 주류는 아니더라도 각자의 분야에서 큰 인정을 받으며 'My way'를 걷고 있는, 우리 문화예술계를 빛내고 있는 소중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 보컬, 타악과 프로듀싱을 맡고 있는 '그림'의 대표 신창렬.

국악기만을 사용한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국악이 아닌, 기타, 베이스 등 이제는 보편적인 서양 악기들과의 협연을 통해 새롭게 탄생하는 퓨전 국악이 있다. 이처럼 특별한 음악의 선두에서 달려온 창작국악그룹 '그림(The 林)'의 음악은 전에 들은 적 없는 새로운 소리를 선사하면서도, 각 악기의 균형을 놓치지 않는다.

그림의 음악은 국악이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뿌리 뽑는다. 때로는 힐링 음악이라 불릴 만큼 밝고 경쾌한 정서로, 때로는 울음을 터뜨리는 것 같은 절절한 해금 선율로 이들은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한다. 이처럼 그림만의 음악을 통해, 계속해서 창작 국악을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창작국악그룹 그림을 만났다. 보컬, 타악을 맡고 있는 신창렬과 함께 그림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창작국악그룹 '그림(The 林)'에 대해 설명해달라.
ㄴ'그림(The 林)'은 어쿠스틱 기타에 고석진, 타악에 장경희, 해금에 김주리, 베이스에 이우영과 박우진, 관악기에 정진우, 가야금에 정혜심, 타악과 보컬을 맡은 나(신창렬)로 구성돼 있다. 8명의 그림 안에서 '최생우진기', '환상노정기' 등의 음악극과 별도의 음악작업 등 각각의 작업에 따라 유동적으로 프로젝트 팀을 꾸린다. 일반적인 뮤지션이라기 보단 창작콘텐츠 그룹에 가깝다. 또한 음반, 공연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모로뮤직'이라는 레이블까지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번 콘서트 '어쿠스틱 아일랜드'를 진행한 '쿤스' 역시 프로젝트 팀인가.
ㄴ'쿤스'는 신창렬, 고석진, 김주리, 이우영, 장경희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이다. 공연 포스터 이미지에 있는 다섯 명이 그 구성원이다. 처음엔 어쿠스틱 기타, 베이스, 해금, 타악이라는 다섯 명의 편성에 맞는 음악을 위해 꾸려졌지만, 4집 앨범에는 쿤스 외에 다른 그림의 멤버들도 참여하게 됐다. 그래서 쿤스를 따로 구분하기보다 4집 앨범과 공연 모두 그림의 작업으로 보시면 된다.

 

   
 

이번 앨범의 주제는 '섬'이다.
ㄴ예전부터 '바다'와 '섬'이라는 공간에 대한 정서적 관심이 있었고, 여행을 좋아했다. 2013년부터 각자 개인적인 작업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나도 여행을 통해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게 됐다. 처음에 표현하고자 했던 '섬'은 여행하면 떠오르는 감정들과 비슷했다. 그 안에 아름다운 풍경, 여행의 설렘 등을 담아 활기차면서도 사람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워낙 즐겁지만은 않은 시대라서 그런지, 바다가 그렇게 예쁘지만은 않고 섬도 외롭게 느껴지더라.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의 영향을 받다보니 곡이 많이 무거워졌다. '섬'은 아프고 힘든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비유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섬'에 대한 설명처럼, 음악이 좀 더 내밀하고 묵직해졌다.
ㄴ여행을 다니면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의 단상을 대개 글로 남겨뒀다. 이를 바탕으로 곡을 만들다보니 자연스럽게 곡에 가사를 붙이게 됐고, 그 메시지의 성격 때문에 음악에도 자연스럽게 무게감이 생겼다.

이번 앨범에서는 이처럼 삶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이전 그림의 음악이 밝고 위로가 되는 음악이었다면, 이번 앨범의 곡들은 메시지의 진중함을 전달하기 위해 전체적인 느낌도 무거워졌다. 아직 창작음악에서 이 같은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더욱 의의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전보다 그림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뚜렷해졌다.

 

   
 

곡에 담긴 메시지를 표현해내는 두 명의 보컬이 인상적이다.
ㄴ'오름의 시간'과 '바다의 나비'에서 함께하는 하윤주는 우리 고유의 성악인 '정가(正歌)'를 전공했다. 창작음악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표현할 수 있는 정가 보컬리스트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은데, 그녀가 그 중 한 명이다.

그 외의 곡들은 내가 보컬을 맡고 있다. 노래에 맞는 가수를 아직 못 찾았다(웃음). 나는 주로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아왔던지라 주위에서 많이들 놀라지만, 사실 그 전 앨범부터 한두 곡 정도는 노래를 계속 해왔다. 하지만 노래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감정선을 나보다 잘 표현해줄 수 있는 가수를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다.

'바다로 떠난 숲, 섬이 되다'라는 테마도 흥미롭다.
ㄴ'The 林'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림의 출발점은 '숲'이다. 이때의 숲은 전통과 자연을 포괄하는 상징적인 키워드에 가깝다. 자연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담을 수 있는 서사와 전통 장르의 색채를 동시에 표현하고 싶었다. 사실 공연을 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팀명이 필요해서 정해진 이름이기도 하다(웃음).

사실 이러한 숲이 '바다로 떠난 것'은 2013년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공명'이라는 뮤지션과 합작 공연을 할 때부터 시작됐다. 공연을 위해 신곡을 작업하기로 했는데, 마침 공명은 당시 바다를 주제로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두 팀의 정체성이 만난다는 의미에서 '바다숲'이라는 제목으로 곡을 새로 쓰고 공연을 진행했다.

 

   
 

앨범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나.
ㄴ이전의 국악 창작곡은 작곡자에게 거의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작곡자가 곡을 악보로 만들어서 전달하면, 연주자는 그대로 연주하는 식이었다. 워낙에 학구적이거나 실험적인 곡이 많아서 그렇기도 했고.

하지만 음악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연주자들이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곡을 새롭게 구성하거나 즉흥적으로 변주하는 추세로 바뀌어가고 있다. 우리 역시 이러한 방식에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그림은 소규모 구성이기 때문에 서로의 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내가 초기 테마작업으로 곡을 만들어 가면, 합주를 통해 각 악기에 맞는 패턴을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특히 이번에는 초기에 쿤스로 작업을 시작했을 때, 다섯 명의 악기 편성 중에서 선율악기가 해금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해금이 곡의 중심으로 나오게 됐다.

이번 앨범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
ㄴ완성도를 떠나, 여러 가지 면에서 변화를 시도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시는 편이다. 이번 작업이 좋은 사례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많이 격려해주시더라.

 

   
 

4집 '어쿠스틱 아일랜드'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무엇인가.
ㄴ예전부터 좋아하던 백석 시인의 작품을 가사로 곡을 작업한 적이 있다. 그때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김기림 시인의 작품을 접하게 됐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바다와 나비'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너무 좋은 작품이더라. 마침 이번 앨범의 콘셉트와도 딱 맞아떨어져서, 작년 4월부터 이 시를 모티브로 작업을 시작했다. 거문고만을 사용해서 다른 수록곡에 비해 악기도 단촐하고 애착이 가는 곡이다. 1년이 지난 당시에도 세월호 사건이 그다지 먼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이라는 구절은 '삼월달 바다'를 '사월달 바다'로 고치기도 했다.

앞서 '바다와 나비'처럼, 평소에도 다른 분야의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받는 편인가.
ㄴ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예술에도 관심이 많고 거기서 종종 영감을 얻기도 한다. '바다와 나비'뿐만이 아니라, 사진작가 김영갑의 작품을 다룬 '오름의 시간'과 이중섭의 작품에서 착안한 '자화상'이 그 경우다.

제주도하면 대부분 바다를 떠올리지만, 사실 한라산을 제외하면 제주도의 풍경은 거의 오름이 차지하고 있다. 김영갑은 루게릭병의 고통을 이겨내고, 제주의 오름을 필름에 담아낸 사진작가다. 오름 자체가 가진 감성이 대단했고, 김영갑의 일대기를 알면 그의 작품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름의 시간'이라는 곡을 통해 제주 오름의 아름다움과 황홀함을 표현했다.

화가 이중섭의 경우는 그의 작품을 주제로 영상과 음악이 결합된 공연을 진행한 이후로,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화상'을 모티브로 연주곡을 만들고 나중에 가사를 붙였다.

 

▲ 판소리, 현대음악, 한국화 영상을 통해 환상적인 여행담을 그려낸 '환상노정기'.

 

그림의 음악에는 다양한 악기가 사용된다. 원하는 소리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는 편인가.
ㄴ평소 고유의 특색이 있는 악기들에 대해 찾아보고, 연주법을 공부하는 편이다. 이번 앨범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전통악기 '디제리두'는 대금을 전공한 정진우가 약 1년간 배워서 녹음에 사용했다. '독도대왕'과 같은 곡의 성격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후의 곡들에도 디제리두의 특색을 녹여낼 계획이며, 현재 이 악기를 주제로 신곡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국내와 해외에서 국악공연에 대한 반응에 차이가 있는지.
ㄴ외국에서는 한국 뮤지션이 전통음악을 연주하며 공연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보니 공연에 대한 기대치도 있고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반면 한국에는 '국악은 재미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낯설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국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점점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한편으로 외국에 살고 있는 교민들의 경우는 한국 음악이라는 것 자체에 향수를 가지고 받아들이는 편이다(웃음).

 

   
 

국악 뮤지션으로서 활동하면서 느끼는 애로사항이 있다면.
ㄴ갈수록 전통음악을 전공한 이들이 창작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는 아직 창작에 대한 공부가 되어있지 않거나 역량이 부족한 뮤지션들이 있어, 완성도가 떨어지는 음원이 발매되곤 한다.

한편 국악 장르는 정부의 지원이 비교적 잘 돼있는 편이라, 다른 장르의 뮤지션들은 지원 정책이 음악의 질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더라. 하지만 창작에 대한 책임감과 음악적 발전에 대한 고민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시점이니, 점점 나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새롭게 출발하는 뮤지션들 역시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는 각오로 덤벼야 한다. 우리 역시 선배 뮤지션의 자리에 있는 만큼, 부끄럽지 않은 음악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창단 15주년을 맞았다. 현재 그림은 어떤 위치에 있다고 보는가.
ㄴ사실 하나를 고를 만큼 엄청 잘 된 곡도 없고 수상경력도 많지 않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며 4집 앨범을 발매한 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하고 감사하다. 특히나 이번 앨범에는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작가로써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분명하게 구축돼 있기 때문에, 최소한 창작 국악이 획일적이라는 이야기는 듣지 않을 것 같다.

이제 모든 멤버들이 4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창작 국악에 대한 심사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감히 심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뜨끔하곤 한다(웃음). 국악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림 노래 중에서 한 곡을 추천한다면.
ㄴ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직 온전히 만족할 만한 곡은 없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만큼, 최근 곡에서 현재 그림의 모습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앨범에서는 '오름의 시간'이나 '바다와 나비'를 추천하고 싶다. 가사의 메시지와 멜로디의 감성이 잘 어우러지는 곡들이다.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작업이 있는가.
ㄴ파티음악을 하고 싶다. 클럽음악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즐겁고 발랄한 느낌도 좋지만, 하우스 등의 일렉트로닉 장르와 접목시켜 적당한 무게감을 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렉트로닉 음악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국악과 일렉트로닉이 융합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유럽에서는 레게, 스카 등의 일명 '월드뮤직'이라 불리는 장르에 또 다른 장르가 결합해서 사랑받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음악적 가능성에 대한 시도는 많지만, 아직 완성도가 부족하다. 나는 젊은 뮤지션들의 작업과는 다르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또 다른 색깔의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통해, 보다 넓은 연령층의 관객들이 객석에 앉아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아닌,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 사실 이에 대해 꿈꾼 건 10년이 넘었는데, 아직 공부를 통해 작업 중이다.

최종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ㄴ누구나 감탄할 만한 파격적인 음악을 만들거나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창작을 통해 뭔가를 꾸준히 성취하고 발전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 창작활동을 오래 하고 싶은 바람이 크다. 나이가 들수록 설렘이나 성취욕이 줄어들 텐데, 음악을 통해 이런 감정들을 꾸준히 느끼고 계속 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4집 앨범작업을 통해 또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지 않았나 싶다.

더 나아가, 나뿐만 아니라 그림의 모든 구성원들이 창작활동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서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림으로써 함께 꿈꾸며 성장하고 싶다.

[글] 문화뉴스 김소이 기자 lemipasolla@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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