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가는 김성훈 감독…영화같은 시대의 증언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정수(하정우)는 갑작스러운 터널의 붕괴로 차 안에 갇힌다. 무너진 터널 속에서 정수는 어렵게 연락을 하고, 구조 작업이 시작된다. 그리고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도 사고 현장에서 그를 기다리며 일을 돕는다.
 
대경(오달수)을 비롯한 구조대원들은 터널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터널 안에서는 구조대를 기다리는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정수에게 주어진 것은 생수 2병과 딸에게 주려 했던 생크림 케이크뿐. 그는 터널 속에서 구조될 수 있을까.
 
   
 
표정으로 보여주는 재난
2013년 하정우는 '더 테러 라이브'로 여름 시장에 550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렸다. 이후 '군도', '암살', '아가씨' 등의 작품에서 많은 배우와 합을 맞췄던 그는 모처럼 많은 짐을 맡은 배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터널'의 소재가 붕괴, 재난이라는 점은 재미있다 '더 테러 라이브'는 마포대교가 무너졌고, 하정우가 방송국에 갇혔었다. 이번엔 터널이 무너지고 그는 차 안에 갇힌다. 세트에서 대부분 앉아서 촬영한 '더 테러 라이브'처럼 이번 영화도 대부분 세트에 누워서 찍었다는 유사점도 있다. 그의 원샷이 비중이 큰 영화가 이렇게 밀폐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해운대', '타워' 등의 재난 영화는 주인공이 재난을 피해 뛰어다니며 긴박함을 전달했다면, 하정우는 밀폐된 공간에서 그의 얼굴로 재난을 표현하고 영화를 완성한다. '터널'의 한정된 공간 속에서의 긴장감은 그의 얼굴에 드러난 긴박감, 초조함을 통해 고조된다. '마션'의 와트니 박사와 달리 인문계를 졸업한 캐릭터 정수는 생존하기에 한계가 많은 인물이다. 평범한 일반인이 거대한 재난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 혹은 버티는지를 하정우의 얼굴로 보면 자연스레 몰입될 것이다. 늘 그랬듯 그의 연기엔 설득력이 있다.
 
   
 
끝까지 가는 김성훈 감독
김성훈 감독의 전작, '끝까지 간다'는 긴장감을 쉴 새 없이 밀어붙이고, 장르적 재미를 끝가지 고조시킨 영화였다. 그런 그가 재난영화를 맡았다고 했을 때, 쉴새 없이 몰아치는 위기와 긴장감, 그리고 재미를 기대할 수 있다. 감독은 한정된 공간에서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정적인 정수에게 위기를 준다.
 
또한, 터널을 기준으로 안과 밖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재난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며, 다양한 인간의 다양한 갈등을 보여준다. 이렇게 김성훈 감독은 전작의 완성도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감독으로서 하고 싶은 말, 주제의식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도 보여준다.
 
스스로 인터뷰에서 밝혔듯, 김성훈 감독은 이번 작품에 많은 걸 담으려 했다. 많은 것을 담다 보니 '끝까지 간다'에 비해 장르적 재미는 분명 줄었다. 대신에 그것을 덜어낸 자리엔 감독의 작가적 야심이 채워주는 메시지가 있다. 비교적 노골적으로 의도를 표현하고 있기에, 김성훈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명확해 보인다. 그렇게 그는 전작과는 다른 의미에서 끝까지 가고자 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풍자, 은유로 소환하는 대한민국
엄청난 흥행을 보여준 '부산행'은 직설적으로 재난에 대처하지 못한, 그리고 붕괴한 한국의 사회 안전망을 소환했다. '터널'도 재난 상황과 한 명의 생존자를 통해 우리 시대를 불러온다. 언론, 정치인의 노골적인 욕망 앞에서 터널에 갇힌 생명은 그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생명의 존엄성은 수차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이 영화에선 덜 중요한 것이 중요한 취급을 받는 기괴한 상황을 목격할 수 있다.
 
폐쇄된 공간, 무작정 기다리는 생존자, 언론의 탐욕, 정치인의 전시행정. 이들은 '부산행'처럼 하나의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감기', '연가시'가 개봉했을 때만 해도 그 영화 속의 망가진 사회 시스템은 하나의 가정이자 영화적 상상물로 보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 수준이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이후의 영화 속의 붕괴한 대한민국은 과장된 것도, 상상속의 사회도 아니다. 그 사건 이후 영화는 현실의 시스템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가 현실을 재연하고 모방하고 있다는 괴괴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9·11 이후 미국의 영화엔 그 사건의 처참한 흔적이 드러났었다. 파괴의 스펙터클을 구현할 때엔 더 많은 고민을 했고, 안보 소재의 영화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였다. (국가를 적으로 둔 첩보원, 제이슨 본은 미국의 안보법이라는 시스템 내에서 완전히 새롭게 읽힐 수 있다) 큰 사건이었고 당연히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그리고 한국 역시 그 사건 이전과 이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가 현실을 따라간다. 왜 다른 방식으로 풀지 못하냐고 묻는다면 이런 대답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현실이 너무 영화 같았어요.', '상식 내에서 그거보다 더한 순간이 있을 수 있나요?' 이제 현실은 그것만으로도 영화가 된다. 우리는 지금 영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 [양기자의 씨네픽업] '터널'…'더 테러 라이브' 하정우·'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의 의기투합 ⓒ 시네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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